나를 키워낸 것들

by 신하연

지구의 공전 속도는 시속 1800킬로미터이다. 내가 배, 자동차, 비행기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지구의 공전 속도보다는 느리다. 로켓의 지구 탈출 속도는 시속 660킬로미터이다. 이건 아마 중력을 탈출할 수 있는 속도인가보다. 중력이 아무리 우리를 땅에 잡아 놓고 있어도, 그 힘이 엄청나다 해도, 그리고 아무리 빠른 속도로 지구가 움직이고 있어도 우리는 느낄 수가 없다. 너무 거대한 힘은 볼 수도 느낄 수도 감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구의 중력과 속도보다 훨씬 작은 것들은 이렇게 느낄 수가 있는데.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범위 내에서만 뭔가를 느끼고 이해한다. 자신의 이해 범위를 초과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감지할 수가 없다. 나조차도 이렇고, 모든 사람은 이러하다. 그러나 느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존재하는 사실이 사실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나 한 사람이 느낀 게 있다면 그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가끔 사람과 소통하고 싶지 않아질 때가 있다. 이 거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서이다. 나는 더 많은 것들이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이 거대한 것들을 떠안고 어떻게 ..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되는 법, 내가 아니게 되는 법,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법. 그런 것들을 배우느라 나의 20대를 보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내 어린 시절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내가 아니지는 않는다. 나의 씨앗이 작고 사랑스러웠다고 해도, 지금 만개한 꽃 같은 나의 모습이 그 씨앗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의 씨앗같던 시절이 그립다고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피어난 싹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싹을 완전히 잘라내고 씨앗이 되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씨앗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지금 나의 모습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나를 인정한다.

나에게는 이 만개한 꽃을 누릴 자격이 있고, 그 모든 건 꽃을 피우려는 나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꽃을 얻어 자유로워졌고 아주 충만하다.

다만 무해한 나의 씨앗에게 미안해질 때면 이렇게 침묵으로 묵념을 한다. 내가 놓고 달려온 모든 것들에게 가한 폭력을 나는 이제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온전히 나의 것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 마저도, 그 아픔 마저도 나라는 사람의 삶이었다.

그러나 가끔 내가 인정하고 나를 이해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느낀 아픔을 헤아릴 수 없을 때면 한없이 미안해진다. 이 미안한 마음이 있는 만큼, 앞으로 달려가는 대신에 조금은 주위를 둘러봐야겠다.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줬는지를 나도 같이 생생하게 느껴봐야겠다. 그렇게 되면 내 지구에, 나 하나의 꽃이 아니라 다른 꽃들도 같이 피어있게 될까. 외로운 꽃이 아니라, 함께 피어있는 꽃무리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까. 어쩌면 그런 아픔을 이해하는 것만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길인 것 같다.

너무 거대한 것들을 안고서 어쩌면 배나 비행기, 자동차의 속도로 같이 걸어주는 것만이 함께하는 길이라면 나는 침묵으로 그렇게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왜 그렇게 하는지 나에게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내 씨앗이 싹트기 위해서는 흙과 물, 햇볕이 필요했으니까. 나의 노력만으로 싹을 틔우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젠 그 흙과 물, 햇볕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다고. 좀 더 아름다운 풍경으로, 좀 더 찬란한 기쁨으로.

나는 어쩌면 그렇게 아프게 피어난 멍들을 주변에 뿌리면서까지 나의 성장만을 위해 달려온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꺾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남들의 속도대로 갔다면 나는 내 잠재력의 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젠 사과하고 싶다. 내가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주고 싶고, 나의 파괴력을 영원히 거두어서 이젠 폭풍이 치지 않게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 그 시절의 나로 인해 고통받은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주고 싶다.

그 길이 어쩌면 나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이 어쩌면 나의 만개한 꽃을 시들어가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찾아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더 중요한 것들은 바람 사이에 있고, 흙 사이에 스며든 물에 있기도 하고, 또 햇볕의 따사로움에 있기도 하니까. 어쩌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깃발을 멀리 날려보내는 게, 나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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