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 2月 11日 수요일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매일같이 부단히 어떤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곳은 울창한 건물 숲을 따라 이어진 길이기도.
또 드높고 험준한 달의 언덕을 넘어야 하는 길이기도 했다.
소녀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울창한 건물 숲을 지나갈 때면
'나는 분명 영리하고 날쌘 토끼일 테야.
그러니 그 누구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고 있을 것이지.'
그리고 무시무시한 어둠으로 가득한
달의 언덕으로 향할 때면
'나는 분명 덩치가 크고 용감한 호랑이일 테야.
그러니 그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할 게지.'
그렇게 소녀는 매우 의기양양해졌다.
그리고 달의 언덕을 무사히 넘어설 때쯤일까.
언덕 밑 작은 숲 속에서
청량하고 신비로운 옹달샘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는 데.
소녀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반가운 마음에 냉큼 그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얼마나 멋진지 확인해 볼까나?
아마 굉장할 테지!
이전과는 달리 근사할 거야. 아니,
기왕이면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그러나 소녀가 옹달샘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내밀어 보았을 때,
소녀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곧 실망을 감추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잖아."
그렇다. 옹달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소녀가 바랐던 영리하고 날쌘 토끼도,
덩치 크고 용감한 호랭이의 모습도 아니었다.
다만 아름답기는커녕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했고,
왜소하고 작은 몸집에 보잘것없는 작은 계집아이 하나 둥 떠올라 보여졌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런 모습일 순 없어.
이래서는 당최 내 꿈에 다달을 수 없잖아!
나는... 이룰 수 없을 거야.
나는... 안 될 거야..."
실은 나도 소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새벽 문득 떠오른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무작정 덤벼들어 열심히 해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반드시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의미를 잔뜩 상기시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압박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작정 쉼 없이 달리기만 하면 처음에 이루고자 했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허무의 상실만 남았다.
지금 내 모습은 어때?
괜찮아? 마음에 들어?
대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 노력이 고작 이 정도냐며 가장 나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러니 어느 산 중턱쯤에서야 잔뜩 회의감이 드는 것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페이스 조절임을.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익혀 알고 있던 것들을 좀 더 앞장서고자 깨달음을 거부했다.
그러네. 나는 빨리 도착하고 싶었던 거였네.
물론 어떤 일에서는 생각보다 빠른 성과를 거둘 수도 있겠으나, 인생에서 그리 쉬이 이루어지는 게 얼마나 되던가.
오히려 안일하게 두고 그저 편히 여긴 것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애달아 애절해하면 되려 조바심을 불러일으켜 불안에 잠식될지도 몰라.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마음은 잃게 될지도.
요즘 그런 마음이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새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멈춰버린 것만 같아 불안해질 때가 많았다. 그러므로 내 속도와 생활에 맞춘 균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첫걸음임을 깨닫게 되었다.
허나 아무래도 나는 첫걸음은 아닌 것 같다.
산 중턱까지는 아니어도, 내려오기에는 아쉬운 애매모호한 위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말이다, 한숨으로 이어지는 지난날을 후회하기보단. 옹달샘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지난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조금 다른 방식을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해본 것들 중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남기고, 무모하기만 하여 쓸모없던 일은 버리는 과정으로.
물론 새로운 출발만큼 근사하거나 설레지는 않겠지만. 매일의 삶을 매번 리셋해 버리고야 말면, 갓난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이니.
조금 지루하고 멋지지 않더라도
고쳐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을 이어가고자
마음먹던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