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남편은 또 효자가 되었다.

by 김바람

남자는 결혼을 하면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어 온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시월드 문제를 꼬집는 말일 것이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에게 무관심하거나 독립적이었던 것 같은데 왜 결혼하고 나면 갑자기 , 특히 왜 시어머니에게 유난히 잘하고 세상 으뜸가는 효자가 되는 것일까.


나의 전남편은 확실한 효자다.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효자다.


신혼 초 일주일에 한 번 시댁에 가는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삼일에 한 번씩 가는 아주버님댁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여서 특별히 하는 게 없었다.

술 먹고, 이야기하고, 설거지하고 집에 왔다.

특별히 힘든 것도 없었지만 좋은 것도 없었다.


항상 시어머님은 아들들이 아버님과 너무 잘 놀아 줘서 아들을 정말 잘 낳은 것 같다고

효자중에 효자들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셨다.

부모님께 잘해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는 어색하고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부모님들께 잘하고 형제간 우애도 좋으니 내 남편은 정말 가정적이겠구나라는 긍정적 생각도 느끼게 되었다.

가끔 나보다 형을 더 믿고 따르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간 가족 간의 세월 앞에서는 당연한 거라 수긍하며 나도 좋은 척 즐거운 지내게 되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게 우애 좋은 효자 아들들은 서로의 친구들보다 더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둘만의 비밀이 늘어가더니 이제 숨기지 못한 시점이 오고야 말았다.

결혼을 했으니 내가 월급을 관리하고 통장을 확인하는 게 지금 생각하면 아주버님은 껄끄러웠을 것이다.

모든 가족이 남편의 카드를 쓰고 있는 게 이유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카드대금이야 잘 갚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할 무렵 일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아주버님이 대출을 하셨는데 나 몰래 남편이 보증을 서줬던 일을 시작으로 대출금을 갚지 않아 월급에서 차압된다는 보증 어디 전화와 다시 대출을 해달라는 식구들의 전화...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다들 남편의 신용으로 살았던 것이다.

카드도 보증도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편이 해줬었다.


아이들을 낳은 지 2년도 안된 시점에 모든 일들이 터졌다.

대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남편은 그저 형이 시키는 대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모두 다 거리낌 없이 내놓은 것이다. 그래도 이제 잘못을 깨달았는지... 연을 끊고 싶어 했다.

더 이상 껍데기 효자노릇은 하기 싫다며..


우리는 시댁에서 돈을 받는 거 대신 아이들의 돌반지와 예물들을 모두 팔아 가족들이 쓴 카드를 정리하고

또 다른 빚을 만들어 보증빚을 청산했다. 그리고 우리끼리 으쌰으쌰 힘내며 잘 살자고 했다.

연을 끊은 남편이 힘들어 보였지만 우선순위는 우리 가족이기에 열심히 아이들과 살았다.

하지만 시댁에서도 어떤 연락하나 없어서 남편은 그것도 나름 힘들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버린 시기였다.


그리고 12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남편과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우리 집에 시댁 부모님들이 찾아오셨다.

남편은 어디 있냐며 남편만 찾으셨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던 다음날 나에게 이제 이혼하자고 했다.

이렇게 사는 건 무의미하다고 어차피 바람피운 자기랑 같이 안 살 거 아니냐며 20살까지 양육비로 아이들 아빠노릇은 하겠다고.. 아이들은 보지 않겠다는 말을 빙빙 둘러대며 이혼하자는 말까지 이어졌다.

어머님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자기가 돌봐드려야 한다고...

1년 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남편은 다시 효자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효자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효자아들이 되기로 한 남편을 이제 나도 보내는 게 맞을 것 같아 이혼에 동의하고 합의하였다.


아빠보다 아들이 되기로 한 남편을 나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 시부모님들이 손자들을 안 찾으실까...

보고 싶어하지 않으실까...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한 번도 손자들을 찾지 않으신다.


여전히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지방을 오가며 부모님을 찾아뵙고 생활비도 드리며 그리웠던 가족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처럼 최선을 다해 최고의 아들노릇을 하고 있다.


정말 아들하나는 잘 낳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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