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를 알게 된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

by 김바람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따라 남편의 핸드폰에 눈이 갔고 대화 내용을 지우지 못한 남편의 실수 덕분에 의심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캠핑장 바닷가 바로 앞에서 아이들과 물놀이하는 남편의 즐거워하는 모습과 정리 못한 대화내용이 담긴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던 그날 이후.


나에게는 절대 없을 것 같았던 '이혼' '불륜'이라는 단어들을 검색하며 여러 카페에 가입을 하고 글들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증거를 모으는 방법.

위치추적을 하는 방법.

상간녀 소송을 하는 방법과 같은

내가 모르는 세계의 낯선 글들이 내 감정을 파고들면서 현실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걸 증명하고 지켜내야 하는 싸움의 언어들을 하루 종일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고 싫었다.


글들을 보면 볼수록 내가 오해하는 거라고, 내가 잘못 본 거라고, 내 남편이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제발 증거가 없길 바랐고 사실이 아니길 빌고 빌었다.


매일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울고,

아이들이 잠든 후에 또 울고...

세수하다 울고 ,

음식 하다 울고.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남편 앞에서 웃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남편이 바람을 숨기는 과정은 너무 단순했다.

향수냄새를 싫어하던 사람이 선물 받은 향수를 아침마다 뿌리고

집에 오기 전 대화내용을 정리하고

키워드 알림을 설정하고

사진첩에는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주는 회사 주차장 사진이 늘어가고...


어리석게도 다 내가 모를 거라고.

오래오래 만날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새로운 설렘에 회사 가는 게 즐거웠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4개월 후...

새벽에 엎드려 나 몰래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본 피가 거꾸로 솟은 그날.


남편에게 사실을 물었지만

어느 드라마의 대본처럼,

때마침 나와줘야 하는 예상 가능한 변명과 함께

준비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직장 동료야."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을 뿐이야."


말을 할수록

입을 열수록

진실보다는 핑계가 쏟아졌고

그 말들 사이로 나는 조금씩 무너졌다.


진짜 듣고 싶었던 건 '사실'이 아니라 단 한 줄의 '진심'이었다.


나 혼자 몇 달을 끙끙 앓으며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삼켰는지

남편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순간

우리가 끝났다는 걸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아니 되돌리지 않는다.


남편에게 나가라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으름장을 놓은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음날 남편은 바로 원룸을 얻었고 짐을 챙겨 집을 나갔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내연녀에게 연락했다.

그녀의 카톡을 보는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날 뿐이었다.

아이들 사진, 여자의 남편과 다정히 손잡고 가족사진을 찍은 활짝 웃는 내연녀 프로필이 보였다.


유. 부. 녀.


카톡을 보내 내 남편을 아냐고 물어봤고 난 와이프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 저는 그 사람 와이프예요. 할 말 없으세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 대화를 이어나가죠.'

' 무슨 일로 연락하셨는지 말씀하세요.'

'미혼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감이 안 오시면 사진 한 장 보내드릴게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아침마다 우리 차에서 알콩달콩 회사 지하주차장...

너무 깊게 생각 마시고 머리 굴리지 말고요..

만나죠, 얼굴 보고 이야기하죠.'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때문에요.'

'둘 사이 맞죠?'

'유난히 친한 사이는 맞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집을 나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만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된 것도 모른다고 했다.

유난히 친한 사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오고 괘씸했다.


그 뒤로도 난 만남을 계속 추진했지만 그 여자는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서웠는지 다시는 남편과 안 만난다고,

절대 만날 일 없다며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했다.

제발..자기 회사와 남편한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죄송하다며 죽을 때까지 반성하며 산다고...


이렇게 간도 작은애가 이런 큰일을 벌여 두 가족을 망가뜨리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해냈는지..

그 뻔뻔함이 더 놀랍다.


남편을 나가라고 하고 내연녀에게 연락하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다.


이혼을 준비하고 소송을 준비하고 상간소장을 보내고...

이런 것들도 무슨 소용 일까.


그 모든 절차들이

내 마음을 납득시켜주지는 않았다.


법은 잘잘못을 가려주지만 상처를 위로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원한 건 이혼도, 위자료도, 처벌도 아니었나 보다.


무너진 마음은 판결문 한 장으로 회복되지 않고

배신당한 믿음은 도장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상간소장을 보낸다고 해서

그날 밤 내가 울며 잠든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어떤 절차보다도

나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남편은 잃었지만 아빠의 자리는 지킬 수 있게...


결국엔 3년 동안 아빠의 자리만 지켜준 것 같아서 미안함도 남지만

내가 붙잡은 건 수많은 증거와 판결문이 아니라

매일 아침 나를 깨우는 아이들의 작은 손, 그 손에 깃든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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