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보다 재취업이 어렵다.

by 김바람

일을 놓은 지 10년이 넘었던 시점.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제일 두려웠던 건 '돈'이었다.


주체적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았고

오전에 잠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정도였다.


남편이 워낙 바쁜 탓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쌍둥이 아이들의 육아가 전부였고,

아이만 키우다 보니 세상 나가는 게 두려웠다.


시댁의 문제로 둘이 으쌰으쌰 하며

열심히 살자고 했던 시기가 있었다.


'자기는 회사일만 열심히 해. 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


빚을 갚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날들이었기에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안정을 빨리 찾자고 서로를 응원했었다.


내가 생활비를 보태는 방법은

오전에 잠깐 아이들이 없을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버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이 아르바이트경험이 나에게 소중한 경력의 한 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아이들도 잘 클 것이고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

나도 이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벌고

남편과 나이 들며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남편의 뒷바라지를 잘하면

안정된 노년을 보낼 거라고 확신했다.

나의 노후는 남편이었다.


이혼 후,

안정된 직장의 남편이 그립다.

직장에 포함된 복지도 그립다.


안정된 직장의 남편이 없는 난

아이들과 같이 살아가야 할 돈이 필요하고

나의 노후를 위한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하다.


20살까지 아빠노릇을 양육비로 하기로 한 전남편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아르바이트로는 안된다.


아이들이 중학교를 들어가고 바로 일을 구하러 다녔다.

핸드폰에 앱을 깔고 하루 종일 나와 맞는 직장을 찾았다.

카페도 가입해서 여기저기 찾아봤다.


이력서를 제출한 곳 대부분 연락이 없었고

면접을 본 후 연락이 없는 곳도 많았다.


사회에 나가는 첫걸음이 두려워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제자리에서 계속 미끄러져 가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멀고

할 수 있는 일도 나이제한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무언가라도 시작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다시 걸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일하고 싶은 마음과

'나는 쓸모없는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엇갈렸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내 손에 쥔 핸드폰은 점점 무겁고

세상은 더 멀게 느껴졌다.


"엄마는 옛날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


산책 중, 한탄처럼 흘러나온 내 말에 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툭 한마디를 건넸다.


"나는 엄마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되게 좋아 보여!"


그 말에 순간 멈춰 섰다.

늘 힘들어도 괜찮은 척,

무너져도 웃는 얼굴을 보여주려 애썼던 내 모습이

아이눈엔 진심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지쳐 있던 마음이 잠시 따뜻해졌다.


그날 이후,

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주저앉아 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무언가 하나라도 해보자.

내가 좋아했던 건 뭐였더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하루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책을 펴고, 펜을 들고, 머리를 써보니

낯설고 버겁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매일매일의 공부가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믿으며 버티고 버텼다.


나랑 잘 맞고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결국 길을 찾아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매일아침,

저절로 눈이 떠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가 건넨 그 짧은 한마디였다.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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