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원한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존재로서
우리의 일부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어떤 사람은 외로움의 해답으로 아이를 원한다.
나의 노년을 지켜줄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기억해 줄
단 하나의 존재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어떤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아이에게서 찾기도 한다.
삶이 무너질 때마다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이유가 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단지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관습처럼 아이를 낳고
그제야 진짜 삶의 무게와 의미를 실감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온전한 부모가 될 수 없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이 덜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자식을 낳는 건
'사랑의 연장선'이기도 하지만
'상처의 대물림'이 될 수도 있는 참 복잡하고 무거운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 자식을 통해 치유하고
누군가는 자식을 통해 자기와 화해하며
또 누군가는
그 모든 걸 깨닫기까지 평생을 살아내야 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배워 나가는 중이다.
아빠의 역할을 포기한 사람이 남긴 공백 속에서
나는 두 아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버텨야 한다.
남편의 선택이 아이들을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고,
나 역시 그 상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아이들을 통해
더 단단해졌고,
더 깊어졌으며,
한 인간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식이 짐이 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세상을 견디게 해 준 단 하나의 이유고
무너진 삶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 존재이다.
이 모든 아픔과 혼란 속에서도
아이만을 보며 살아가야 하는
이 현실 속에서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더 나은 나로
더 따뜻한 어른으로
조금씩 완성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하나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
읽어 주셔서,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혼' '불륜'이란 단어들이 기분 좋은 단어들은 아니기에
호기심과 자극만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들은 제 안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이야기 들입니다.
어떤 날은 말로 꺼낼 수 없어 울었고
어떤 날은 이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기억하고 싶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마음 끝에서,
저는 결국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살아내고자 했습니다.
'이혼'이라는 단어 앞에서
'엄마로서 나'와 '한 사람으로서의 나' 사이에서
수없이 무너졌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이게 과연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스스로도 수없이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분들이 제 글에 머물러 주시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는 것을 보며
또 한 번의 용기를 얻습니다.
앞으로도
천천히.
저와 같은 시간을 건너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