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지 않았던 나의 결혼생활.
아이를 만나는 일도 순탄치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기다렸고
쉽게 되리라 생각했던 임신소식은 없었다.
나는 아이가 생기지 않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은 날이 있다.
"나 오늘 그날이야"
하는 멋쩍은 말에
남편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미안함과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남편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알기에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둘에게는 매달매달이 고통이었다.
우리는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고 결과는 안 좋았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었고 일반적이지 않았다.
의사는 노력해 보자고 했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인공수정부터 하기를 원했다.
기다리다 지쳐 서로 눈치 보는 것보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뭐라도 하고 싶었다.
희망을 가진 첫 번째 인공수정이 실패했고
난 유명하다는 시험관전문 병원을 찾아가 의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시작하니 마음이 더 급해지고 조바심이 났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아마 과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무작정 시작하겠다고 했던 것 같다.
아기를 갖기 위해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난자를 채취하고..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나는 과정은 별로 없지만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티브이에 시험관 한 엄마들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오고
감정 이입이 돼서 그 힘든 시기의 나로 돌아간다.
시험관 이식 이후...
그날부터 배가 불러오기 시작해 밥도 못 먹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날이 많았다.
목구멍까지 무엇인가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속이 꽉 찬 것처럼 답답한 증상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배가 딱딱하게 불러오기 시작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고통에 미칠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복수가 찬 것이라고 했다.
난자 채취를 많이 해서 그곳에 복수가 차고 있다고..
바로 바늘로 찔러서 복수를 빼니 살 것 같았다.
한번 빼면 끝날 줄 았았던 이 고통은
집에 돌아오면 다시 복수가 차기 시작했고
참다 참다 아프면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 병원을 찾아 복수를 뺐다.
그래도 점점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어느 날부터는 복수 차는 일은 없었다.
그 후 병원에서 임신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쌍둥이들이 내 배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주위에 임신소식을 알렸고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보물들이었다.
양육비로만 아빠노릇을 대신할 만큼의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은 내가 생명을 걸고 맞이한 존재들이고
내 인생전체를 기꺼이 바쳐도 아깝지 않을 귀한 존재이다.
그 작은 심장들이 내 안에서 자라던 시간은
매일매일이 기적이었고
매일매일이 감사였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날도
초음파화면 속에서 쌍둥이들이 움직이는 걸 볼 때면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들이 내게 온 것만으로도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서 더 분했다.
그래서 더 서러웠다.
나 혼자만 상처 입고,
나 혼자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나는 남편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죄책감은
내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 만든 그림자일 것이다.
더는 억울해하지 않고.
더는 기대지 않고,
더는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는
그 사람 없이도 충분히 더 잘살아 내는 것.
더 단단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내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것.
그게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고
그 사람과 완전히 다는 길을 가는
진짜 이별이니까...
절대 다시는 찾지 말아라.
너는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 아빠자리를 내려놓았다.
아이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너의 몫이다.
그러니 부디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절대 늙어서,
외로움에 지쳐서,
신변에 이상이 생겨서,
혈육의 정이 그리워서
그 어떤 이유로도
그 어떤 순간에도
아이들을 찾지 마라.
아이들은 이미
너와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아빠라는 단어 없이도
버티는 법을 배우고
일어서는 법을 익히고 있다.
아이들의 시간은 너 없이도 흘러가고 있다.
아이들이 겪는 모든 성장의 순간마다
너의 빈자리는
묵묵히 감당해 낸 나와 함께 채워지고 있다.
이제 와서 어떤 연민도
미안하다는 어쭙잖은 말 한마디로도
그 시간을 채울 수 없다.
아이들을 다시 찾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건 너의 그리움일 뿐
아이들의 몫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또다시 다치지 않도록
오늘도 아이들의 울타리가 된다.
아빠라는 이름을 스스로 내려놓은 당신이
그 문을 다시 두드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