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울 거면, 개는 왜 데리고 왔는데?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남편이 집을 나가고 나는 물었다.
남편이 간절히 원해서 데려온 강아지들이었다.
외도하고,
집을 나가고,
아빠의 역할을 포기할 줄 알았다면
절대 가족을 늘리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는 귀여운 강아지들과
직장에서는 설렘 가득한 애인과
가정은 가정대로
불륜은 불륜대로
여기저기서 행복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
남편이 강아지를 좋아하니
나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한 선택 같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이유 없이 들어줬던 아내였다.
잦은 회식,
매일매일의 음주,
친구들과의 여행,
늦은 귀가까지...
난 회사 생활에 필요한 일들이라 생각하며 모두 받아줬다.
내가 남편에게 맞춰주려고 했던 이유는
서로 느끼는 감정과 입장은 달랐겠지만,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 못한 미안함과 그로 인한 자격지심 같은 거였다.
내가 조금 더 싫은 티를 내고 화를 냈으면
외도를 안 했을까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침 일찍 회사 출근하는척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퇴근한 것처럼 집에 온 사실을 알고는
그런 일은 애초에 나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은 안다.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나에게 어렵지 않았다.
경험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친동생처럼 예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됐을 때
그리고 집을 나갔을 때...
강아지 돌보는 것이 귀찮았다.
남편퇴근시간쯤이면 현관 앞을 서성이는 강아지들.
남편이 오지 않자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버리는 작은 몸들.
그 모습조차 보기 싫었다.
남편이 사라지니
강아지들을 향한 내 애정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길 며칠이 지난 후
강아지들도 적응을 했는지
더 이상 문 앞에서 잠들지 않을 때쯤..
아이들이 눈이 오니 밖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자고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내 인생이 무의미한 시점에..
바람은 매섭고, 마음은 더 얼어붙은 날이지만
아이들의 기대 어린 눈빛과
꼬리를 흔들며 문 앞에선 강아지들을 보니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쌓인 눈 위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마음 한쪽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
나오길 잘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울해서 하루 종일 누워 있던 날에도,
의자에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는 날에도
밥 한 끼 먹지 않고 복수의 글을 뒤지던 날에도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나갔다.
어쨌든 나가야 했고
움직여야 했고
숨차게 걸어야 했다.
결국은 산책은 나를 위한 호흡이 되어있었다.
강아지들과의 산책은
내 마음을 억지로 끌어내
햇살 속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 시간 동안은
복수도 억울함도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 산책을 함께했다.
강아지 두 마리의 리드줄을 번갈아 잡으며
내 옆을 묵묵히 걸어 주었다.
내가 멈추면 함께 멈춰주고
내가 울컥하면 말없이 옆에 서주는
이 작은 존재들.
우리는 다섯 식구다.
아들 둘, 강아지 둘, 그리고 나.
내게는 아이들이 있고 강아지들이 있고
그래서 내가 있다.
고맙다. 내 강아지들.
너희가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