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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휴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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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bbi Jul 19. 2018

08. 연극(2)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무대 위에서 나는 10살의 소녀도 되었다가, 사투리가 걸쭉한 강원도의 한 선생님도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한 인물을 내 나름대로 꾸며나가다보니 결국에는 '나'에게 닿았다. 내가 연기하는 나의 배역에는 내가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이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이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연극은 모순적이게도 나를 벗어나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연극은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됐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부터 쉰이 넘으신 분까지 나이도 직업도 참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개성 넘치는 서른 명의 사람들은 매주 조그만 극장에 모여 연기를 배웠다. 날이 좋으면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술 한 잔 기울이며 각자의 살아온 날들을 나눴다.

공연이 다가올 즈음엔 우리가 직접 의상, 소품부터 시작해서 무대, 음향, 조명까지 기획하고 준비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트에서, 그간 계속해서 고민하고 바꾸기를 반복한 우리의 연극을 선보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감사하게도 관객들은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웃음과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네 번의 공연을 끝내고 6개월을 되돌아보니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비록 연극의 끝과 함께 내 휴학의 전반기도 끝이 났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사람을 얻었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고, 나를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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