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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an 06. 2024

곤돌린의 몰락 - J.R.R 톨킨

단순한 이야기 속 재미와 감동 그리고 삶.

# 01.

모르고스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퀜디도 아니었고 텔레리 요정도 아니었다. 요정 중 가장 뛰어난 '놀돌리'였다.

본인들의 뛰어남을 알고 있는 자들은 오만해지기 쉽고 감사함을 잊으며, 더 많은 권력과 부를 탐하게 된다. 이런 유혹을 이겨내는 자들은 극히 드물다.

오만하지 않는 것, 소소한 것에 감사함을 갖는 것, 그것이 가능한 자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오만, 탐욕 덕분에 조금씩 발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파멸하는 그들을 보며 새로운 제도, 가치관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2023.12.29)


# 02.

숨겨져있는 도시 곤돌린을 찾아 나선 투오르와 동행하던 그노메들은 자신들을 살육한 멜코의 본거지가 가까워지자 투오르를 버리고 떠난다. 하지만 브론웨(브론웨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투오르와 함께 간다. 그런 그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춤하는 투오르에게 말한다.


"오 투오르.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테니 그 생각은 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시오. 자. 나는 당신을 버리고 떠나지 않겠소."(p.79)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을 향해 나아갈 때 누군가 한 명이라도 힘이 되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려움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잠시 여정을 멈추거나 실패한다 하여도 브론웨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의 브론웨가 되었으면 하고 나에게도 그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2023.12.30)


# 03.

"멜코의 고블린, 산속의 오크들이오 (중략) 굴 속 지형 때문에 그런 소리가 난 것을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은 긴 시간 동안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그들은 드디어 희미한 빛이 멀리서 가물거리는 지점에 이르렀다."(p. 80-81)


어둠 속에 있으면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들이 멜코 수하들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위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위협이었다. 실제 하지 않은 허구의 위협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끝을 모르는 주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 속에 있을 때, 존재하지 않는 위험과 불안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주저앉는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 사투를 벌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

그렇다면 서서히 희미한 빛이 느껴질 것이고 결국 반짝이는 빛을 맞이할 것이다. (2023.12.30)


# 04.

곤돌린에 도착한 투오르는 곤돌린의 왕 투르곤에게 멜코와의 전투를 준비하라는 울모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투르곤은 거절한다.


"누구도 자기 뜻과 다르게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 이룩한 소중한 노고의 결과를 위엄에 처하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p.88)고 말이다. 투르곤은 목적을 잊어버린 채 자신이 이룩한 성과에 매몰되어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

아직 그의 최후는 모르지만 목적을 잃은 삶은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며 그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2023.12.30)


# 05.

곤돌린에서 뛰어난 교육을 받고 훌륭한 이들과 함께하며 투오르는 점차 이전보다 훌륭한 인간이 된다. 하지만 그 역시 곤돌린의 평화와 안정에 취해 '울모'의 명령을 잊어간다. 곤돈린에 온 목적을 잊은 그는 서서히 투르곤의 입장을 생각하며 잘못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2023.12.31)


# 06.

곤돌린의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투오르는 곤돈린의 왕 투르곤의 딸 이드릴과 결혼하게 된다. 이드릴 또한 곤돌린의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공주였다. 둘이 혼인하는 날 '메글린'이라는 자만 빼고 모두 투오르와 이드릴을 축복해 줬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후에 앙칼라곤을 죽이고 가운데 땅을 구원한 영웅 '에아렌델'이다.

"그런데 아이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의 피부는 반짝이는 흰색이었고, 두 눈은 남쪽 하늘의 파란색을 능가하는 파란색으로 만웨가 입고 있는 복식의 사파이어보다 더 파란색이었다."(p.95)


곤돌린의 모두가 기뻐했지만 '메글린'의 시기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나중에 사고를 칠 것 같다. (2023.12.31)


# 07.

내 예상대로 결국 메글린은 멜코에게 복종하게 된다. 다행히 현명한 이드릴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남편 투오르에게 비밀스럽게 대피로를 만들라고 부탁한다. 그때 투오르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말을 따른다.


"옛말에 뭐라도 계획이 있는 것이 아무 생각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으니, 당신이 말한 대로 따르리라."(p.100)


투오르의 말과 같이 자신이 잘 모르겠으면 신뢰하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도 현명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뒤 멜코의 공포 주문에 홀린 메글린은 이전과 다르게 선량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생활한다. 곤돌린의 주민들은 갑자기 변한 그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이전보다 인성이 괜찮아졌다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의심부터 해야 된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조상님들 말씀처럼 죽을 때가 되었거나.


드디어 멜코는 곤돌린을 침략한다. 곤돌린도 용감하게 맞설 준비를 하지만 책의 제목이 결말을 알려준다.

(TMI. 영웅은 어릴 적부터 재능이 있나 보다. 에아렌델은 전쟁이 발발하여 위험할 때 불안해하다가 작은 사슬 갑옷을 입히자 씩씩해지고 기뻐하며 소리까지 질렀다고 한다.) (2023.12.31)


# 08.

어딜 가나 간신들은 상대방의 약점이나 집착하는 것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멜코의 군대가 곤도르로 향하자 메글린은 투르곤이 도시의 부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점을 알아차리고 이용하여 잘못된 결정을 유도한다. 결국 투르곤은 메글린의 의견을 따른다. 적이 곤도르 성에 온전히 접근하기 전에 기습하여 큰 타격을 줘야 한다는 투오르의 의견은 묵살되고 만다.


    자신이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하나씩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치켜세우며 너는 대단하고 모든 것이 너를 위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멀리해야 된다.  


결국 모든 병력이 성에서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아무런 타격 없이 도착한 멜코의 군대를 상대하기에는 힘들었고 서서히 성의 여러 구역들이 점령당한다. (2023.12.31)


# 09.

치열한 전쟁 중 투오르가 집을 비운 사이 메글린은 에아렌델과 이드릴을 납치한다. 그는 이드릴 앞에서 에아렌델을 죽인 뒤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면서도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드릴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용감한 모습으로 저항하는 에아렌델 때문에 고생하는 찰나 투오르가 그를 쫓아와 처단한다.


메글린은 성벽에서 내동댕이쳐져 몸뚱어리가 아몬 과레스에 세 번이나 부딪친 뒤 불구덩이 한가운데 처박힌다.


아주 속이 다 후련하다! (2023.12.31)


# 10.

곤돌린 북문 앞 전투 묘사가 일품이다.

유치하지 않고, 과하지 않으며, 역동적이다. (2023.12.31)


# 11.

"샘물의 영주 엑셀리온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막 채찍을 휘두르는 찰나의 고스모그에게 정면으로 덤벼들었고, 끝에 못이 달린 자신의 투구를 놈의 사악한 심장 속으로 깊숙하게 찔러 넣은 다음 자신의 두 다리로 적의 허벅지를 휘감았다. 발로그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요정과 악마는 함께 왕의 분수 그 아주 깊은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중략) 이렇게 샘물의 영주는 불꽃같은 전투를 치르고 차디찬 물속에서 생을 마감했다."(p.129)


발로그의 대장이자 멜코의 사령관인 고스모그의 최후를 직접 읽으며 한동안 상상의 세계로 빠졌다. 영화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마지막에 출현하는 발로그는 그들 사이에서는 특출난 존재는 아니었다 [곤돌린의 몰락]에서 출현하는 많은 발로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3시대에서는 굉장한 괴물로 묘사된다. 그 괴물의 대장이 고스모그이다.


고귀한 엑셀리온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고스모그와 함께 죽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자신을 구해준 투오르가 그 괴물에게 공격당해 나가떨어지자 부상당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고스모그에게 달려들어 함께 죽는다. 이후 한동안 사령관을 잃은 괴물들은 당황하여 기세가 꺾인다. 그의 죽음은 숭고했다.


만약 고스모그와 엑셀리온의 대결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좋을 텐데. 불가능하겠지? (2024.01.01)


# 12.

"이드릴이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혜로운 자가 눈이 멀 때는 참으로 슬픈 법이오. 하지만 투오르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완고할 때도 슬픈 법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용맹한 오류였소."(p.135)


지혜로운 사람도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히면 파멸하고 만다. 확고한 신념이 삶과 일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일상에서 지나치게 강한 신념을 가지면 삶이 피곤해진다. 삶은 서로 타협하고 조절하며 공통점을 찾아가며 살아가야된다고 생각하는데 지나친 신념을 가진 사람과는 그 균형을 찾기가 참 힘들다. 상상만해도 숨이 막힌다.


물론 투오르가 말했듯이 악에 대항하기 위해 올바른 신념을 바탕으로 완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고 멋진 삶이다. (2024.01.01)


# 13.

"어머니 이드릴, 어머니는 피곤하세요. 그리고 곤도슬림 중에 갑옷 입은 용사는 아무도 말을 타지 않아요. 살간트 영감을 제외하고는요! 이 말에 어머니는 슬픈 가운데서도 웃음을 지었다."(p.142)


에아렌델 귀엽다. (2024.01.01)


# 14.

"순간 글로르핀델은 왼손으로 단검을 찾아 들고, (중략) 자신의 얼굴 옆에 있는 발로그의 배 속으로 칼을 깊이 찔러 넣었다. 악마는 비명을 지르며 바위에서 뒤로 쓰러졌고, 쓰러지면서 챙 달린 투구 속에 있는 글로르핀델의 황금빛 머리채를 낚아채어 요정과 발로그는 함께 심연 속으로 추락하였다. (중략) 노란 꽃들이 그곳을 찾아왔고, 그 거친 땅의 돌무덤 둘레에 지금도 꽃을 피운다. 그렇지만 황금꽃 일족은 그 무덤을 세우면서 통곡하였고, 그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터였다."(p.149-150)


곤돌린의 몰락으로 엑셀리온을 비롯한 많은 요정들과 또 다른 영웅 황금꽃 가문의 수장 글로르핀델도 자신을 희생했다.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은 끔찍한 고통과 비극을 낳는다. 자신의 고향이 사라지면 비참해진다. 생각이 많아진다. (2024.01.01)



[반지의 제왕]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예전에 [실마릴리온]을 읽을 때 해당 자료와 해설을 참고하며 읽던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곤돌린의 몰락]은 [실마릴리온]과 다르게 즐겁고 편안하게 읽었다. 아마도 내용 자체가 짧고 간단하기 때문일 것이다.(아니면 [실마릴리온]을 열심히 읽었던 과거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고통, 오만한 자의 최후, 뒤틀린 욕망을 가진 자의 파멸, 절망 속에서도 삶과 명예 그리고 선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 고난을 이겨내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리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등. 이 글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선물해 준다.


비록 곤돌린은 몰락했지만 이후에 결국 선이 승리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이 좋다.


"그들을 길러낸 어둠은 흉내만 낼 줄 알지, 만들어 낼 줄은 모르거든.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만들지 못하는 거야. 어둠은 오르크에게 생명을 준 게 아니라 망치고 일그러 뜨려 놓았을 뿐이지."(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 아르테 / p.297-298)


어둠(악)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없다. 언제나 목적은 선해 야만 한다.


추운 날씨에 본격적으로 톨킨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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