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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an 14. 2024

시대 예보 핵개인의 시대 - 송길영

미래에는 어떤 시대가 펼쳐질까?



# 01.

이미 세계는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서로 다른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살아왔다. 그 추세는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강화되어 침대에 누워 언제라도 본인이 원할 때 다른 국가의 문화를 접하고 즐길 수 있다.

최근 K-POP 등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어났고 우리는 단어 앞에 'K'를 붙여 공격적으로 홍보한다. 마치 한국 문화가 뛰어나서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K 콘텐츠 (TMI. 나는 K-POP, K-food. 등 제발 'K' 좀 그만 사용했으면 좋겠다.)를 만들고 표현하는 주체가 한국인 또는 아시아인에 한정하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으며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다.

우리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상에 녹아들게 하려면 민족, 국가를 강조하며 지금의 'K' 스타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 또는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K'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가 꼭 한국인, 아시아 인종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 꼭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K'는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K'에 다른 문화들이 녹아들면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말과 같이 From korea가 아닌 Made by Korea가 되어야 된다.

(TMI. 그런데 정말 'K' 좀 빼면 안 될까?) (2023.12.10)

# 02.

"삶의 단위는 이제 국가가 아니라 도시입니다. 뉴요커와 서울러의 정체성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p.48)

어렴풋이 저자가 언급한 IMF 경제 위기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어려서 그랬는지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 고통 등은 잘 알지 못했으나 확실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금 모으기 운동' 이었다. 연일 TV에서 보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중학생 때까지는 금 모으기 운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언론 및 학교에서 역경에 맞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강인하고 뛰어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뒤 세계사와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아마도 내 기억이 맞는다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세계사와 근현대사를 배우고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사회탐구 영역을 윤리, 국사, 세계사, 근현대사를 선택하면서 조금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강인하고 뛰어나다는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은 금 모으기 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나이가 들며 이전보다 많은 경험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국가는 개인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삶은 각자도생이다. 저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각자도생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된다. 일자리가 많은 곳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곳만의 문화 등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다 보면 그 도시가 본인의 정체성이 된다. 본인의 국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디에서 살아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이고 앞으로는 더욱 쉽고 보편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미래에는 지금보다 도시의 역할이 강력해질 것 같다. 고대 문명들과 같이 도시 국가와 비슷한 모습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 (2023.12.11)

# 03.

국가보다는 도시를 도시보다는 개인이 중요해지는 시대에는 열린 마음과 자세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는 개인, 조직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확산되는 다양성에 거부감을 느끼며 수직적 능력주의를 통해 차별을 내세우는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이런 부류는 머지않아 도태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극단적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효율성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형평성 그리고 포용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2023.12.11)

# 04.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권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권위라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면 사회나 인간관계가 경직되고 심각한 차별이 생겨난다. 이는 창조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권위주의가 일상에 뿌리 깊게 내려진 상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은 많은 방해에 막혀 큰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권위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옛날 직장의 앞, 뒤가 꽉 막힌 50대 후반 - 60대. 직장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별로 잘난 것도 없는 데 뭐가 그리 잘났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무례한 말을 쏟아낼까? 20대 중후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났고 하루 종일 마음속으로 욕을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속한 세대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몇 십 년 전의 우리는 오직 성장과 빈곤 탈출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빈곤 탈출, 입신양명이 삶의 전부였다. 국가나 개인이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고 큰 보상을 받으려면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뛰어야 했다. 권력자가 말하면 아무런 생각 없이 무조건 달렸다. 국가 경제가 성장해야 자신의 재산도 늘어날 것이고 민족중흥의 사명을 가진 채 태어났다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탓에 자신을 버리고 또 버리며 살아왔다. 그게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빈곤 탈출에 실패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났다.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집을 마련하고 자가용도 구매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피를 이어 받은 아이도 낳았다. 힘들어도 예전과 비교할 수없이 안정적이었고 행복했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빈곤했던 그 시절로. 이번 고통은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았다. 그 시절의 청년들도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청년이었으면 지금은 몇 살인가? 40대 후반? 50 초, 중반인가?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힘들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든 시기였다.

국가와 가정에 위기가 닥쳐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보고 달려야 했다. 다양성, 개인주의, 소수에 대한 관용,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 여유,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 등등.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런 생각을 할 틈이 있기는 했을까? 아마도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았는데 여전히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 자녀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며,  본인들의 부모님들도 보살펴드려야 된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부양을 받지 못한다. 비극이다. 요즘 들어 하는 생각이지만 그분들도 불쌍하다.

생각이 이상한 길로 빠졌지만 권위 주의를 없애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그분들을 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넘치는 그분들의 열정과 고집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TMI. 그리고 요즘 의외로 20-30대가 권위주의에 빠진 경우를 많이 본다. 오히려 나이가 많으신 분들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게 더 문제이다.)

# 05.

저자가 최근 충주시 공무원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공감했다. 더 이상 자리가 아니라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부터 충주를 홍보하기 위해 충주시 공무원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른 정부기관의 영상들과 다르게 유머와 충주시에 대한 정보가 잘 섞인 영상은 충주 시민이 아닌 전국의 국민들이 즐겨보기 시작했다. 담당 공무원의 인지도가 올라가자 사람들은 이직, 승진 등의 자리에 대한 주장을 많이 쏟아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제가 충주를 되게 좋아한다. 애향심이 있다. (중략) 그런 면에서 보람이 크다. (중략) 이 대답에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은 직책보다 사람을 직급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p.95)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직급, 승진, 상승으로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는 현재 특별한 기술 없이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한 결과 관리자급 자리에 오른 분들이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한 모습을 보면 정말 그렇다.

저자의 말과 같이 나의 성장과 공동체의 공감, 다시 말해 사회적 기여가 동반되는 일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개인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2023.12.13)

# 06.

AI는 답이 정해져있는 일을 하고 인간은 답이 없는 일을 고민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작가의 말에 공감하다가도 "시간이 더 지나면 답이 없는 일도 AI가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의 미래 모습이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평범한 사람들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 (2024.01.08)

# 07.

미래에는 지능화보다 연결성이 중요하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결과물을 찾아내고 연결하여 종합하는 일이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본인이 원하는 자료를 찾으려면 관련 기본 지식은 알고 있어야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은 옛날 방식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2024.01.08)




책에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 말한다.

전문 용어와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고 일반 기업에서도 선배의 개념이 사라지며 기존의 관리자라는 개념도 점차 사라지고 기업의 조직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 말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급격하게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말한 여러 가지 주장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에 취약한 어르신들의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른 국가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나이로 젊고 늙음을 따지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은 건강한 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아무리 운동을 하고 건강을 관리한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다.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리고, 걷기가 힘들어지고, 점점 맛을 느끼지 못하면 변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노화 현상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 삶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숙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르신이 '진취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가끔 아주 특이한 어르신들의 사례를 발굴하여 다큐 또는 영화를 만들어 많은 이들의 감동과 존경을 이끌어내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월드리그의 끝은 다시 로컬이 될지도'라는 부분의 동네 학원 과외 선생님 사례,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업무처리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양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동질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례, 미래에는 자신만의 서사가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 그리고 '천륜은 사라져도 연대는 남는다.'라는 부분에서 오프라인 관계를 넘어 다양한 방법으로 취향과 마음이 맞는 동반자들과 살아갈 것이라는 말. "우리나라는 인생의 모든 것이 비교 가능한 숫자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시각이 문제"라는 말. "앞으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 마지막으로 서로가 품앗이하듯 소비해 주는 작은 장터가 형성될 것이며, 특히 온라인상에서 이런 형태의 느슨한 자주적 공동체가 나올 것 같다는 주장. 결국 모두가 근근이 먹고사는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 예측까지.

특히 "자신만의 서사가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2018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기 부끄러워 혼자 작성하던 독후감을 2019년 12월부터 블로그를 통해 작성하고 공개한 것을 바탕으로 21년쯤 카카오 스토리 작가에 도전하여 등록되었으며, 22년쯤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인스타그램, 창작의 날씨, 알라딘 투비컨티뉴드 등 조금씩 플랫폼을 늘려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늘려갈 생각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아닌 영미권 또는 일본과 관련된 플랫폼에 도전해 보고 싶은데 도저히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영어와 일어를 못하니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흐음.. 여기저기 뒤적거리며 고민하고 있다.

글 역시 조금씩 범위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짧고 줄거리 요약식의 독후감을 작성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거리 요약보다는 온전한 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까지 그러고 있다.(책을 많이 읽기보다는 적게 읽더라도 완독을 하며 한 권을 읽더라도 내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는데 집중한다. 나에게 책은 단순히 지식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일기를 쓰고 공개하고 있으며 어떤 사건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는 에세이도 끄적이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소설 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독후감, 일기, 에세이, 소설 쓰기. 이 모든 글에는 내 생각과 감정이 들어가 있다. 심지어 말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비롯하여 배배 꼬인 생각과 감정까지 녹아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서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은 유명인이 아닌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관심이 없지만 그럼에도 계속 쓰고 있다. 지금도 나만의 글은 나의 삶을 지탱해 준다. 힘들어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게 다독여주며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준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이 녹아있는 이 글들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이 서사를 이용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얻고 싶다. 그것이 현재 나의 바람이다. 물론 아직 그러지 못해서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고 지금은 이전보다 더 크고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당연히 몇 개월 뒤에 글로 기록할 것이기에 이 또한 내 서사에 추가될 것이다.

나중에 블로그와 각종 플랫폼을 보면 '나'라는 사람의 삶과 생각, 감정이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아. 물론 타인이 몰라줘도 괜찮다. 나. 자신에게만 전달된다 하여도 행복할 것이다.

저자의 말과 같이 "자신만의 서사가 매우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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