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멧북 Feb 04. 2024

빵 - 오태영

모든 것을 통제하는 부당한 권력에 대하여.

원시인들은 '빵'을 사냥한다. 빵을 얻자 원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 말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치명타를 입혔으니 더 많이 가져가야 된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자신이 빵의 분배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있으니 빵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원시인들은 싸우고 죽이기 시작한다. 결국 살아남은 한 명이 그것을 가져간다.


원시인들이 빵을 얻기 위해 협동하고 노력했지만 그런 것은 잠시일 뿐. 결국 자신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를 죽일 뿐이다. 우리도 원시인들과 다를 바 없다.


공통의 목표가 있을 때는 함께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빵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돈의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잘못일 뿐이다.


자신의 욕심을 통제할 수 없는 우리의 잘못일 뿐이다.


제빵인은 규격화되고 특색 없는 빵이 아닌 맛있고 특색 있는 빵을 만들기 원한다. 하지만 빵 경연제에 통과하지 못한 빵은 팔 수 없고 그것을 진열하는 제과점은 장사를 할 수 없다. 결국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하려면 경연제를 통과해야 된다. 이러한 부당한 현실에 제과점 주인과 제빵인은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살아간다.


어느 시대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원칙을 추구하는 사람은 얼간이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제과점 주인과 제빵인이 계속 우리나라에 살아간다면 삶의 절망만 맛볼 뿐 희망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희곡이 쓰인 80년대나 2024년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이 제과점의 빵을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양성과 맛이 아닌 심사 기준에 어긋나지 않았는가에 집중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이 발견된 빵은 혹평하고 모욕한다. 그러던 중 일부 심사위원이 비공개 심사가 아닌 공개 심사를 하면 어떠냐고 묻는다. 하지만 다수의 심사위원들은 대중을 멍청이라고 깎아내리며 그들의 주장은 형편없으니 따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변화, 차이는 국가를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으니 빵만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다 빵과 전혀 상관없는 대화를 시작하며 글은 끝난다.


'빵'은 1983년 심사위원들의 부당한 권력을 풍자한 희곡이다. (p.79 참고) 물론 1980년대와 지금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다가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인간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씁쓸하면서도 별다른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든다.

짧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글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대 예보 핵개인의 시대 - 송길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