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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Oct 10. 2024

블루보틀 - MAGAZINE BISSUE NO.76

철학을 지키면서 계속 변화하는 브랜드.



# 01.


"거기 콘센트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되고, 가격만 비싼데 왜 가냐?"

오래전 프랜차이즈 카페 중 유독 커피빈을 좋아했던 내가 자주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커피빈을 좋아했다.


당시 "온전히 커피 맛과 향에 집중하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주장하는 커피빈이 마음에 들었다. 잠시 카페에 들려 품질이 괜찮은 커피를 마시며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아했다. 잠시 동안이라도 느긋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얼마 없었던 듯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도 불편하고 와이파이도 안되고 콘센트도 없으면서 가격만 비싸다는 비판을 이어갔다.


과거의 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커피빈이 본인들의 주장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찰나의 여유와 공백을 즐기지 못하고 빨리빨리만 외치는 사람들에게 반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손님이 감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씩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매장이 늘어났고 지금은 와이파이가 없는 매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지금은 과거의 커피빈은 '커피의 맛과 향에 집중하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설치하지 않는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때의 커피빈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 02.


어느 날 블루보틀이 성수동에 매장을 열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에 대한 사람들의 불평을 들었을 때 과거 커피빈이 떠올랐다.


"콘센트도 없고 와이파이 안되고 비싸기만 하고 허세 부리기 좋은 곳."


반가운 마음에 성수동에 가보려고 했지만, 한동안 방문객이 많아 입장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듣고 방문을 미뤘다.


결국 나중에 광화문에 매장이 생겼을 때 방문했다. 처음 방문한 블루보틀은 친절한 바리스타의 환대에 기분이 좋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푸어오버 방식의 커피를 주문할 때 원두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고 즐거웠다. 당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친절하게 원두에 대해 설명해 준 곳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어오버 방식으로 내려진 커피는 물과 같이 깨끗한 느낌과 은은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산미 그리고 아주 조금 고소함이 느껴졌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커피의 맛과 향이었다.


이후 광화문, 을지로입구 쪽에 방문하면 꼭 들려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블루보틀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존의 카페들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환대 그리고 미니멀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마감의 인테리어를 통해 일본의 '오모테나시'와 '여백과 덜어냄의 미학'을 느끼는 듯싶었다.


"블루보틀의 철학은 제임스 프리먼이 일본 여행에서 얻은 경험에서 비롯했다. 도쿄 시부야에 자리한 30년 역사의 찻집 차테이 하토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p.100)


블루보틀의 창립자 프리먼은 일본의 킷사텐 문화에 감명받고 이를 블루보틀에 녹여낸 것이다. 이번 잡지를 읽으며 "내가 일본 문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네."라는 생각을 했다.


프리먼은 맛과 품질이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더불어 매장이 위치한 지역과 어울리는 공간을 만드는 것과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과 지역주민들의 관계도 중요시한다.


커피는 것은 단순하게 맛과 향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 바리스타와 고객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더해져야 진정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블루보틀은 맛의 일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에 대해 체계적이고 철저한 교육을 진행하며 매장의 인테리어는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블루보틀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환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교육한다.


"바리스타에게 훈련시키는 것은 단순히 커피를 추출해 예쁜 음료를 마드는 기술이 아닙니다. 저희 회사에도 바리스타 경연 대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한 번도 그쪽에 끌린 적이 없습니다. (중략) 저는 커피 추출을 퍼포먼스라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중략) 퍼포먼스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것이니까요."(p.105 제임스 프리먼 인터뷰 중)


프리먼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내가 블루보틀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블루보틀을 좋아할 듯싶다.



# 03.


많은 사람들은 블루보틀의 성공을 브랜딩과 멋진 MD 상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블루보틀의 지난 행보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루보틀은 '제3의 물결'이라 불렸던 스페셜티 커피의 대표주자로서 뛰어나고 독창적인 커피로 유명해진 브랜드이다. 지금은 커피 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뛰어난 개인 카페들이 많이 생겼지만 스페셜티 커피 분야에서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통해 블루보틀이 커피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맛있는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리고 신선한 원두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맛있는 커피를 접하는 일로 브랜드의 가치를 확장한 블루보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블루보틀의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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