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사업,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이 마냥 즐거웠던 중, 고등학생 때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 때와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당연하게도 관련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당시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었던 내 주위에는 유난히 사업가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날카로운 태도를 취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부의 독점,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 등. 주로 차별자와 착취자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는 나는 그때도 친구들과 생각이 달랐다. 선별적 복지는 낙인 효과 등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재원 분배 차원에서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복지의 최종 목적이 어찌 되었든 복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금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는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뛰어난 사업가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환경에서 종종 다른 학과 사람들과 이 주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대부분 닮고 싶거나 존경하는 사업가들은 미국 또는 유럽인들이 가장 많았고 간혹 일본인들이었다. 반면 우리나라 사업가를 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과 학생들도 섞여 활동하는 동아리 모임에서 술을 마시다가 불쑥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 사업가 중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구냐?”라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나는 “아무도 얘기를 안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들 한 명씩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려는 사람, 다른 길을 택하지만 존경한다는 사람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평소 대학 생활 대부분을 인권, 복지, 사회운동, 노동 등에 대한 얘기만 듣던 나에게는 이런 분위기와 대화 내용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대답하지 못한 사람은 나였다. 이날의 모임은 그리 중요하지도,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전히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사업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날이 후로 신문의 경제면을 읽거나, 특정 기술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볼 때마다 “내가 닮고 싶은 사업가는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람이 삼성을 창립한 이병철 회장이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거대한 부를 얻고 대기업을 만들어낸 그의 능력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를 창립한 정주영 회장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이상하게도 이병철 회장에게 더 관심이 갔다. 틈틈이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그의 부정적인 면모를 알게 되어서 실망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26년. 최근 AI와 관련된 기술과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관련 기사, 칼럼을 읽다가 불현듯 이병철 회장이 떠올랐다. 지금의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그였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몇십 년 전에 미래를 내다본 그의 삶이 궁금해져서 그의 자서전을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자서전을 통해서 사업 아이템이나 경영방법 등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갔는지를 느끼고 배우고 싶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나에게 큰 도움과 울림을 줬다.
그는 어린 시절 숫자를 활용하는 학문에는 강했지만 그 외의 과목들은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삶을 더 큰 세상에서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심지어 그는 말했다. 여러모로 성적을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계속해서 더 크고 높은 세상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복을 강조하며 그의 노력과 선택을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다고 모두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꽤 오랜 시간을 한량으로 살아간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사업에 몰두한 이유는 거창한 목표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어느 날 골패(지금으로 치면 도박)를 하고 늦은 밤 귀가를 했는데 자녀들이 잠든 모습을 보며 갑자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 그가 선택한 것이 ‘사업’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말한다.
“실업자가 십 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십 년이 허송세월인지 아닌지, 그것은 십 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내면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p.21)
그는 어떻게 보면 흠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솔직하게 밝히며 오히려 그런 시간이 본인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그런 삶의 원인을 실의에 빠졌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삶의 실의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실의를 이겨내느냐 굴복하느냐는 개인이 선택해야 되는 문제라고 말해주는 듯싶었다.
사업에 몰입하기로 다짐한 뒤 그는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 실패, 억울함, 고통을 겪는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난 그의 ‘백절불굴’의 자세를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부분은 항상 더 넓은 세상을 바라봤다. 글을 읽다 보면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는 항상 ‘국내 최고’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라는 목표를 세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도 항상 가능한 목표만 세우는 나에게 가르침을 줬다. 생각해 보면 목표가 높아야지 그나마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 관리에 대한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뒤로는 분, 초까지 나누며 일을 했다고 말한다. 특히 6시에 일어나서 10시 이전에 잠드는 생활을 거의 매일 지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잠이 들 때는 모든 걱정, 생각을 멈추고 푹 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깨어있는 시간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보내야 된다고 말한다.
또한 본인은 깨어있는 시간에 공부를 하던지, 일을 하던지, 취미 활동을 하던지 항상 몰입할 것을 찾아 행동했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유는 깨어있는 시간에 너무 많은 틈을 주면 잡다한 생각 예를 들면 후회, 걱정, 망상이 끝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봤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시간일 것이다. 그것은 돈으로 되돌릴 수 없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귀중한 자원을 그동안 주로 걱정과 후회에 소비해왔다. 자신을 돌아보니 후회가 많이 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조금씩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이라는 자원을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이러한 행동이 분명히 그의 말처럼 지나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증명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그의 국가관, 애국, 애사심 등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경영 기술 등 실무적인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지만 나와 같이 자신의 삶 또는 철학, 원칙에 대한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