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렌과 루시엔 - 존 로널드 루엘 톨킨.

by 멧북


<반지의 제왕>으로 알려진 톨킨의 세계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방대하고 심오하다. 오죽하면 그의 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의 세계관은 제1시대부터 제3시대까지 이어진다. 또한 중요한 점이 있다면 제3시대 말기를 다루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제외하면 그가 완성한 작품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가 남긴 글들을 모으고 분석하고 책으로 완성한 사람은 그의 삼남 크리스토퍼 톨킨이다. 그는 한평생을 진지한 자세로 아버지의 세계관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그도 고백하듯이 이러한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 사람이 썼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방대한 양의 복잡한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노력으로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편안하게 톨킨의 글을 읽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는 모든 이야기가 제1시대부터 유기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베렌과 루시엔> 같은 경우에도 제1시대부터 제3시대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단행본의 목차를 보면 가장 원본에 가깝다는 <타누비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신화 스케치로부터의 발췌 대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여러 곳에 있는 파편적인 이야기를 모아서 엮었다는 뜻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러한 구성은 아들 크리스토퍼가 아버지의 글에서 <베렌과 루시엔>에 대한 이야기들만을 추출해서 매끄럽게 이어낸 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결국 처음 읽었던 <타누비엘의 이야기>와 같은 결말과 내용인데, 이상하게 등장인물이 다르고 조금씩 사건과 배경이 다르다.


이러한 부분을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신화 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승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하며 ‘역자의 서문’과 ‘서문’을 읽는다면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누구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이번 <베렌과 루시엔>을 살펴보면 내용과 설정 부분에서 조금씩 다름이 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동일했다.


우선 루시엔의 아버지 싱골이 제시한 ‘실마릴 탈환’이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비웃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즉시 실천하는 모습 그리고 베렌이 실마릴을 쥔 손을 잃고 돌아와 싱골 앞에서 잘린 팔을 보여주는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 싱골이 베렌을 하찮게 여기며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 실마릴을 요구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후 베렌의 용기와 사랑에 헌신하는 자신의 딸 루시엔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변화하는 모습에서 진정에서 우러나는 인정을 느꼈다.


세 번째로 불사의 존재이자 모든 요정과 신의 사랑을 받는 루시엔이 떠돌이에 필멸의 존재인 인간 베렌을 사랑하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고난을 함께 이겨내고 자신의 영생까지 포기하는 모습을 통해 계산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부분은 특히 사람의 급을 나누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려는 경향이 강한 대한민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물론 여전히 나만의 답은 찾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모르고스라는 절대악과 실마릴에 얽힌 비극적인 운명에 온몸으로 맞서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자유의지에 대해 느꼈다. 운명이 정해져있더라도 순응하지 않고 끝없이 저항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자 우리에게 특별하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지켜나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압도적인 상실감과 무덤 위 그녀 이름 밑에 ‘루시엔’을 새기고 싶다는 당신의 소망에 대해 쓰셨다. (중략) 베렌과 루시엔 이야기의 기원인 요크셔주 루스 인근의 헴록꽃들로 가득한 어느 작은 숲속 오솔길로 돌아갔다. 거기서 그녀는 춤을 추었는데, 그것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어긋나 버렸고 홀로 남겨진 나는 무정한 만도스 앞에서 탄원할 수도 없다.’”(p.43~44)


방대한 그의 글 중 그가 가장 사랑하고 으뜸이라고 불렀던 <베렌과 루시엔>은 그와 사랑하는 아내를 투영한 글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추측할 수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몰입하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톨킨의 글에 대해 관심이 없더라도 평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생각 그리고 삶이란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각자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특히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인문, 철학 책에 지친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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