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뱌오 외 지음(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 153. 낯섦화라는 흐름 (중략) 몇 가지 경향을 가리킨다. 첫째, 낯섦은 일상에서 점점 더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 (중략) 이제 낯선 사람에 대한 가장 큰 감각은 오히려 무감각이다. 둘째, 일부 젊은이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낯선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아는 사람과 어떻게 지내느냐다. (중략) 심지어 관계 끊기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하기도 한다. (중략) 결국 낯섦화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낯선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중략) 내 결정, 내 사랑은 진심일까? 사랑할 수 없음은 낯섦화의 한 결과다. (중략) 낯선 사람이 속일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낯선 사람처럼 갑자기 폭발해 믿기 힘든 행동을 할까봐 두려워한다.(p.16~17)
# 154.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 대화의 목적은 (중략) 나는 낯선 사람이다라는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데 있다. (중략) 특히 우리는 일상의 시각을 강조한다. 즉, 생활 경험에 뿌리를 두어 낯섦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설 자리와 실천의 출발점을 찾는 사고방식을 탐색 (중략) 우리는 이를 안생식 사고라고 부른다.
# 155. 모든 것이 투명할 때 추상적 공공성은 종종 내용을 상실한다. 예를 들어 도덕적 고려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인간이 도덕적 문제를 갖는 이유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도덕은 투명한 상황에서 사람들 사이의 의미 있는 교류를 가능케 한다. (중략) 오히려 도덕적 문제가 확률 문제로 바뀌면서 모든 것은 불신, 비진실,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p.28)
# 156. 투명한 세상에서 사람의 운명은 이미 시스템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불확실한 미래는 개인의 불행일 뿐 의미를 갖지 않는다. (중략) 인생의 의미는 벽에 붙은 글귀나 공중에 걸린 표어에 따라 자신의 불투명한 경험을 극복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데 있는 듯 보인다.(p.29)
# 157. 부모, 선생님 그리고 저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인간은 매우 강력하지만 스스로를 극도로 혐오하는 가짜 인간이에요. (중략) 이 강력한 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길 거부합니다. 세속적인 성공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고 느끼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나의 근본 논리는 바로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중략) 나는 자신을 혐오하니까. (중략) 이 혐오는 매우 확장적인데, 본래의 저는 노력하는 모습을 빼면 좋은 게 하나도 없어요. 단순히 업무나 학업뿐만 아니라 외모, 체형, 체중까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껴서 헬스장을 다니고 각종 강좌에 참여하며, 사교 예절을 배우고 말솜씨를 갈고닦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른바 인물 설정이란 본래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겨 새로운 인물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요.(p.34)
# 158. 그들은 인정 받았지만, 관심이 부족했다. 인정은 시스템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의 성과를 평가하고 보상이나 처벌을 결정하는 것이다. 관심은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 고민, 갈등, 그리고 역사를 발견하는 행위다. 이는 시험이나 판단, 보상과 처벌을 수반하지 않는다. 인정은 일방적인 성격을 띤다. (중략) 관심은 쌍방향적이다. (중략) 관심은 단순히 타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뜻하는 데 그치치 않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략) 화려하고 투명한 성과만 있을 뿐 이야기할 만한 경험이 없다면, 그 사람은 관심받지 못할뿐더러 타인에게 제대로 관심을 갖기도 어렵다. 게다가 오랜 세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는 동원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학업과 무관한 온갖 충동을 억누르다보니, 결국 자신에게조차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다.(p.35~36)
# 159. 지금 직면한 문제는 (중략) 인정 자체가 관심의 기초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사랑은 조건부다. (중략) 라는 말은 많은 젊은이가 어릴 때부터 삶을 무겁게 느끼는 주요 원인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중략) 조건이 사랑의 자양분을 부담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중략) 학업이나 직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 했으며, 결혼생활에서는 배우자가 품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에 부합해야 했어요. 마치 모든 사회적 관계에 요구 사항이 있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을 자격마저 잃어버리는 것 같았어요.(p.36)
# 175. (매거진 B에서 끝난 번호부터 시작한다.)
모두가 같다는 상상은 또한 낯섦화를 초래한다. 한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주변 어디를 봐도 자신과 비슷한 이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삶의 의미와 귀착점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는 서로를 복제한 존재다.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를 반향적 동일시라 부른다.(p.39)
# 176. 정향적 동일시는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전제에 더 크게 기대고 있다. (중략) 존중과 관심을 갖고 소통 과정에서 서로의 구체적인 경험이 겹치는 지점 및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반향적 동일시는 모든 사람이 똑같다이며, 심지어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관찰의 전제로 삼는다. (중략) 다름을 발견하면 (중략) 방해 또는 이상한 것으로 여기거나 상대가 가식적이라고 생각한다. 반향적 동일시는 인위적으로 구축된 결과물이다. 공리주의적 가정은 그 구축 과정의 한 측면이다.(p.39)
# 177. 안생식 사고는 (중략) 현상을 바꾸려면 특정 행동이나 선택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형성하고 거기서 새로운 행동, 관계, 삶의 의미가 자라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하며, 삶에 대한 전반적인 좋고 나쁨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항상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까? 왜 나는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비교할까? (중략) 등의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안생식 사고는 자기 경험을 의식화하는 것이다.(p.43)
# 178. 안생식 사고는 개방적이고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과 생각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교정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고의 목적은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지 않고, 심지어 명확한 방향조차 없다. 그러나 그 단계마다 경험에 더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중략) 보수와 진취를 결합해야 한다. 보수는 현실 조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형성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취란 이를 바탕으로 현 상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중략)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중략)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진취적 면모가 없다면 그것은 사고가 아니다. 비사고 혹은 사고 거부의 평온한 나날과 소확행은 오늘 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p.44)
# 179. 우리가 현대 교육을 통해 익혀온 사고 습관은 비안생적이다. (중략) 아렌트가 말했듯, 순수한 사유는 종종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며, 결국 모든 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편집증적 이데올로기로 귀결되곤 한다. 안생적 사유 방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첫걸음은 사고를 하나의 실천 과정으로 다루는 일일 것이다.(p.45)
# 180. 안생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한 가지 요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상황의 중요성이다. (중략)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을 먼저 자각하고, 그 상황을 통해 그 안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비롯해 단순하든 고립되었든 그 어떤 사람도 파악하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중략) 상황을 중시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그의 역사적 경험이 응축된 존재로 본다는 뜻이다. (중략) 상황이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결정된 위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p.46~47)
# 195. (트로이의 여인들 이후 번호부터 시작.)
자기 비하를 하는 사람들은 쉽게 몸을 돌려 자신보다 약한 집단을 비하할 수 있는 것 같다. 비하와 자기 비하 모두 특정 상황에 대한 반응이다. 다시 말해, 상황이 중요한 이유는 낯선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일과 안생적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생활의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하며, 이를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상황이 요구된다.(p.49)
# 196. 상황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상황은 모두 일상생활의 구성 단위이며, 이처럼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곧 삶 자체를 재구성하게 된다.(p.50)
# 197. 사고의 상황은 여럿이 함께 사고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고립된 개인이 세계 전체를 마주할 때는 상황의 감각을 찾거나 안생적 사고를 하기 어렵다.(p.51)
# 198. 우리 사고와 감정의 변화는 일상 경험을 성실히 관찰하고 반성함으로써 이뤄져야 하는데 많은 감정 표현과 사상은 외부 환경에 의해 직접 주입되며, 우리는 그것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생활 감각을 잃으면 주변과 자신의 경험을 관찰하며 체험하는 능력을 잃고, 나아가 유기적이고 탄탄한 사고를 잃게 됩니다.(p.57)
# 199. 낯선 사람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까? 사실 원칙은 하나입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죠. (중략)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중략) 한가할 때는 이웃과 함께 술 한잔 하면서 행동으로 진청의 폐쇄식 단지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습니다.(p.61)
# 200. 또 다른 낯선 사람에 대한 사례가 있습니다. (중략) 중국에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곧이어 미국에서도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당시 여론은 중국에 대해 굉장히 비우호적이었지만, 저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략)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중략) 마치 팬데믹이 없는 것처럼 행동 했습니다. (중략)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국가는 국가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중략) 여기서는 선생님과 제가 서로 우호적이면 됩니다. 이런 낯선 사람과의 교류는 정말 사람을 감동시키고, 상상력을 열어젖히며, 관대하게 만듭니다. 비록 때로는 격렬하고 피할 수 없는 충돌도 생기지만 말입니다.(p.63)
# 201. 성실하다는 건 꾸밈이 없다는 뜻입니다. (중략) 성실하다는 건 끊임없이 스스로를 교정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일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막혔고, 그러다가 정말로 장악하는 방법을 찾아내죠, 이 패배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거예요. (중략) 사고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아 생기는 몸부림, 고통, 번뇌가 저는 아주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성실함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있습니다. (중략) 지금 우리 삶은 너무 편리한데 이 편리함은 성실함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편리하면 다양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게 지나치면 야만으로 이어집니다.(p.69-70)
# 202. 분류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략) 먼저 아주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그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중략) 표준화된 분류 방법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분류 자체는 각자 스스로가 생활을 관찰하면서 얻은 이해에서 나와야합니다. (중략) 분류는 중요하지만, 그 주된 목적은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사회 전체나 숲, 풍경을 평면화해서 한눈에 보는 지도로 만드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p.74)
# 203. 부근을 언급하는 것은, 그 안에 모두 군자와 숙녀만 있는 작은 이상향을 만들자는 뜻이 아니에요. (중략) 짜증 나게 하는 일과 사람도 많지만 그런 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배우는 것, 그들의 존재를 직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겠죠. 왜 내가 그 사람한테 짜증을 느끼지?라고 반성하면서도 자신도 열 수 있게 되는 거예요.(p.79)
# 204. 쿨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집어드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일상 속 많은 판단에는 단순한 옳고 그림이 없어요. 누구나 각자의 판단을 내리죠.(p.82)
# 205. 지금 젊은이들은 정말 어리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견문이 넓고, 일 처리도 분별력 있게 합니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해 지금 젊은이들은 심리적 불안을 해소할 곳이 없다는 게 조금 걱정됩니다. 이건 꽤 큰 문제입니다.(p.84)
# 206. 첫 번째 모순은 이들의 생활의 상황과 관련 있습니다. (중략) 비록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했지만, 폭은 좁고 정보의 누에고치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낯선 사람과 교류하거나 흥정하고 문제를 처리한 경험은 거의 없죠. (중략) 그들은 갑자기 과잉보호를 받고, 오프라인 생활의 질감을 경험하지 못한 온실 속 생존 상태에서, 매우 불ㄹ안정하거나 심지어 분열된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두 번째 모순은 생활양식 아래에 실제 생활이 없다는 점입니다. (중략) 생활 자체가 중요한 콘텐츠가 되어버렸습니다. (중략) 자유롭게 펼쳐지고, 흐름에 맡기는 생활은 거의 없습니다. (중략) 원래의 상상과 다른 것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해지고, 참을 수 없어집니다. (중략) 세 번째 모순도 있습니다. (중략) 오늘날 젊은이들은 사고 능력이 아주 강합니다. (중략) 하지만 모순의 다른 측면은, 우리가 여태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활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중략) 우울증 유병률이 대거 증가한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각하거나 감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조직하는 좋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p.85~87)
# 207. 온라인 플랫폼은 도구일 뿐이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친구 관계가 좁아질 수 있습니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중략) 현실 생활에서 질감 있게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더 낙관적이고 너그러워질 수 있을 거예요.(p.89)
# 208. 개인적으로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는 게 기분 좋더라고요. (중략) 가끔 우리 시선은 낯선 이의 시선과 마주칩니다. 피하지 말고 한번 미소 지어보세요. 상대도 미소로 답한다면, 이는 아주 작은 행복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p.94)
# 209. 오늘날 (중략) 우리는 동시에 의미의 과잉과 결핍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판단적이며 상징적이고 단정적인, 구호처럼 추상적인 의미는 극도로 과잉된 상태입니다. 반면 펼쳐지는 의미, 평범한 속에서 흥미를 발견하고 반복 속에서 호기심을 느끼며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점점 더 그 일을 사랑하게 만드는 의미는 결핍되어 있습니다.(p.95)
# 210. 인간의 고통은 지나친 한가함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많아지며 풀리지 않습니다. 생각을 적게 하고 자주 움직인다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중략) 마음이 불안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일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합니다.(p.96)
# 211. 핵심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있습니다.(p.97)
# 212. 어떤 이들은 우선적으로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관계 속에 있지만, 관계를 위해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p.114)
# 213. 우리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 말이죠. (중략) 주변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치지만, 먼 곳에 있는 많은 것에는 깊이 몰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상 속의 관계로 먼 곳의 일들을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중략)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생생할수록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중략)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일정한 의미에서 자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 중략) 일종의 인식 방식, 즉 인식 능력을 의미합니다.(p.116)
# 214. 많은 사람은 소통은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나, 실제로 자신과 경비원이 평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경비원을 경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p.131)
# 215. 두려움과 무서움을 구분하고 싶습니다. 무서움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습니다. (중략) 두려움은 종종 특정한 대상이 없어 (중략) 일종의 느낌이나 정서입니다.(p.132)
# 216.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우선 그를 한 인간으로 보고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중략) 절대로 그 역할에 그를 맞춰서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중략) 걱정이나 무서움은 (중략) 구체적이고 사건 중심적입니다. (중략) 두려움은 (중략) 전반적인 생존 감각이며, 넓게 만연해 있는 느낌입니다. (중략)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지만 쉽게 화를 내고,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두려움은 쉽게 느끼지만 화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p.139)
# 217. 일부 학자는 두려움이 일종의 맴버십처럼 작동 (중략) 특정 사회 계층에 도달하거나 그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만이 두려움을 표현할 자격을 가지며, (중략) 서로 두려움을 공유하고 전달 (중략) 반복적으로 강화 (중략)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 (중략) 반면 하층 사람들은 대개 두려움을 표현할 자격이 없거나, (중략) 표현하다라도 (중략)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중략) 진짜 걱정은 각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입니다.(p.140~141)
# 218. 자기 성찰과 감정 인식도 매우 중요하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해보거나 작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설령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먼저 실행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심으로 임하고 그 일이 마음속 어떤 감각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면 진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일이 생겨납니다.(p.323)
# 219.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것은, 독립된 자아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을 기반으로 해 자신을 기존의 얽매인 관계에서 분리해내는 것입니다. (중략)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입니다.(p.330)
# 220. 끊임없는 평가 속에서 자기 자신조차 낯선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연기하고 스스로를 증명하며 외부 평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332)
# 221. 너무 많은 추측과 상상을 하다보면 오히려 긴장하고, 그 사람과 마주쳤을 때 몸이 떨릴 수도 있습니다. (중략) 한 가지 교훈은 평소에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제 교류할 때는 가능한 한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읽는 일 (중략) 일종의 감각으로 익히는 것이죠. (중략) 그 과정에서 약간의 좌절이나 대화가 잘 안 이어지는 문제가 생겨도 괜찮습니다. 그것 역시 학습 과정이니까요.(p.337)
# 222. 주의력은 우리 자신의 것이므로 완전히 남에 의해 통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이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정의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p.342)
# 223. 사람을 끌리게 하는 것은 한눈에 보이는 특정한 품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여주는 어떤 내적 힘이나 자유로움 같은 것입니다. (중략) 타인의 매력과 힘은 사실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매력을 이해하는 방식이 점점 상호 자극적이지 못하고, 그저 이 사람은 나의 롤모델이니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p.345)
# 224. 오직 용기 있게 자신을 열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는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죠. 결국 모든 것은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p.346)
# 225. 젊은 세대에게 나는 어떤 삶을 원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중략) 더 날카롭고 시급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물음을 탐색하기 위해 대중은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감각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경험을 묘사하고 감정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합니다. (중략) 실어 혹은 무어 상태에 놓인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중략) 공식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개인의 경험 사이에 커다란 단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소셜미디어의 댓글 문화를 관찰 (중략)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판단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대체로 평면적일 뿐 아니라, 정서상 과잉 반응적 성향을 띤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p.370~372)
# 226. 자기 생활이 놓인 사회적 관계망을 새롭게 성찰하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역량을 강화하길, 그런 실천의 장을 경험하시길 기대합니다.(p.388)
# 146~226. 에필로그.
오래전 우리들은 인터넷이 활성화되면 그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연결되고 그를 통해 지식, 감정이 오가며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며 삶이 풍족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기대와 같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감하는 능력은 점점 쇠퇴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인터넷 환경 발전을 뛰어넘어 오프라인의 삶보다 온라인의 삶에 더 몰입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더욱이 몇 년전 큰 고통을 겪었던 팬데믹과 최근에는 AI의 발전으로인하여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때문에 우연히 마주해야 할 낯선 세계와의 접점이 차단되었다. 그로인해 우리는 더욱 서로 단절된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게 무슨 문제일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실존하는 세상을 등지고 본인이 원하는 실존하지 않는 세상에 갇혀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말과 같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꼭 겪어야 하는 고통과 마찰이 거의 없이 만들어진 이러한 환경은 오히려 우리의 허무, 나태, 불안, 긴장, 우울을 야기하며 그 끝은 인간다움을 잃고 삶의 목적을 잃은 채 천천히 죽어가는 것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 교감했던 과거의 행위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빠르게 변하고 이미 낯선 사람과 현실에서 관계를 맺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다수인 세상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부근을 만들기 위해 거창한 목적, 목표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에 본인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노력이란 상대방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 진지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미리 계층, 직업, 외모 등으로 사람을 분류하지 않고 현재 상황에 존재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점이다.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고통을 지속하며 이겨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성숙한 개인과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AI의 발전으로 인간 사이의 교류와 눈앞의 현실이 사라져 가는 시대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