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아테나 :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저와 제 신전을 모독했는지 모르시나요? 정말 불경스러운 행동을 자행했습니다.
(중략)
포세이돈 : 아이아스가 카산드라를 신전에서 강제로 끌어낸 건 나도 알아.
(중략)
아테나 : (중략) 그리하여 그들이 신성한 신전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깨우치게 하십시오.(p.13~15)
# 182. 헤카베 : 가련한 여인 헤카베, 일어서라! (중략) 그대 운명 변했지만 꿋꿋이 견뎌라! 새 운명의 길을 받아들여 그걸 따르고 운명의 물결이 치는 대로 흘러가라!(p.16)
# 183. 탈티비오스 : 그래, 자유인으로 태어나 이런 불행을 겪고 머리 위에 노예라는 멍에를 덮어쓰기란 너무나도 참고 견디기 힘든 일이지. 나도 그걸 알아. (중략) 그리스인들에게 해로운 일을 그냥 두고 보았다고 비난받기는 싫어.(p.34)
# 184. 카산드라 : (중략) 어머니, 저 때문에 아가멤논이 죽을 겁니다! 아가멤논의 나라가 무너질 겁니다! 아버지와 제 형제들의 죽음에 꼭 복수하겠어요!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어요. (중략) 이 그리스인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였어요. (중략) 용사로서의 영예로운 죽음은 조국을 위한 자랑스러운 화관입니다. 반면 수치스런 죽음은 조국에 치욕을 안겨 준답니다. 그러니 어머니, 조국의 운명과 제 혼인을 유감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중략) 어머니와 제가 증오하는 모든 이들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을 테니까요.(p.39~43)
# 185. 헤카베 : 신들이시여, 당신 도움을 간절히 청합니다! 돕는 데 인색한 분들이지만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저희가 당신 이름을 부르지 않고 뭘 어쩌겠습니까? (중략) 아, 임종 순간까진,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마라!(p.51~55)
# 186. 코로스장 : 불행한 사람들에게 눈물과 통곡과 구슬픈 만가는 좋은 위안이 됩니다.(p.66)
# 187. 안드로마케 : (중략) 죽음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과 같아요. 죽음과 비참한 삶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죽음이 낫습니다. (중략) 죽으면 불행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니까요. 한때 행복했던 여인이 불행해지면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 때문에 더욱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중략) 말도 못 하고 사리 분별도 없는 짐승도 천성이 인간보다 열등한 짐승도 작은 조랑말과 어린 암말 같은 짐승조차도 한 외양간의 짝과 떨어지면, 그리 쉽게 멍에를 다시 매고 수레를 끌려고 하지 않아요.(p.68~71)
# 188. 헤카베 : (중략) 감당할 수 없는 거센 풍랑이 몰아치면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거센 풍랑에 배를 그냥 둔다고... (중략) 말려드는 끝없는 불행에 기가 막혀 말할 힘도 없어. 불행의 급류와 폭풍이 몰아치니까.(p.73)
# 189. 안드로마케 : (중략) 끔찍한 불행에 또 다른 불행이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구나!
(중략)
탈티비오스 : 아이를 트로이의 성벽에서 떨어뜨려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안드로마케, 그리해야만 합니다. (중략) 당신을 도울 자는 아무도 없어요. 약한 당신에겐 아무런 힘이 없소.
(중략)
안드로마케 : (중략) 이제 모두 허사가 되었구나! 모든 것들이 헛되고도 헛되도다!(p.76~79)
# 190, 헬레네 : (메넬라오스에게) 좋아요. 내 변명이 정당하든 아니든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중략) 비난들에 대한 반론을 펼쳐 보겠습니다.
(중략)
헤카베 : 헬레네, 내 아들 파리스가 보기 드문 미남인 게 사실이다. 네 눈으로 그를 보자마자 아프로디테의 욕정으로 가득 차 네 머리는 빙빙 돌아 버렸어.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 나간 모든 우매한 행동을 아프로디테라고 부르지. (중략) 넌 그리스인들이 너를 위해 돈을 쓰는 데 인색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미련 없이 스파르타를 떠나 여기 온 거야. 여기 트로이에는 황금이 넘쳐흐르고 허영심을 채워 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니까. (중략) 지조 없이 형세가 유리한 쪽에 붙는 품행은 유덕한 여자가 취할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중략) 나는 몇 번이고 너에게 충고했다. 트로이를 떠나라고 말이다. (중략) 헬레네 너는, 내 충고를 좋아하지 않았고 따르지도 않았다. 파리스의 집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중략) 지금 네 모습을 한 번 봐! 걸치고 있는 사치스런 옷을 좀 봐! (중략) 아, 천박하기 그지없는 여자로다!(p.95~106)
# 191. 헤카베 : 한번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랑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니까요.(p.108)
# 192. 헤카베 : 가진 게 영원하리라고 믿고 그걸 기뻐하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다! 운명은 미친 사람처럼 오늘은 이리, 그리고 내일은 저리 옮겨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변덕을 부리니,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p.124~125)
# 193. 헤카베 : 성대한 장례를 치른다고 한들 죽은 자에게 뭔 소용이 있겠소? 성대하건 초라하건 차이가 없어요. 성대한 장례는 살아남은 자의 허영일 뿐이오.(p.129)
# 194. 탈티비오스 : (탈티비오스,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는 그녀를 제지한다.) 그만둬! 불쌍한 바보 늙은이! (중략) 그녀는 그분의 전리품이야!(p.132)
# 181~194. 에필로그.
이야기는 신들의 전쟁이었던 트로이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치열했던 전쟁은 영웅 헥토르부터 프리아모스 왕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 결과 저항할 힘이 없는 여성들과 아이들은 그리스인들의 노예로 끌려갈 운명에 처했다.
프리아모스의 처였던 헤카베는 자신의 남편,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비참한 삶을 살았고 그녀의 폴릭세네는 이미 죽은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제물로 바쳐진다. 다른 딸 카산드라는 겁탈을 당한 뒤 노예로 끌려간다. 며느리였던 안드로마케 또한 노예로 끌려가 후처가 되는 운명이며 그녀와 헥토르의 어린 아들인 아스티아낙스는 후에 그리스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인해 절벽에서 던져져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헬레네와 파리스의 부도덕함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평온했던 삶이 한순간에 철저히 파괴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은 우리의 계획과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삶에 어떤 것을 바라는 것일까?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삶이라도 눈을 감는 순간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삶이란 복잡하고 허망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이상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메데이아>, <히폴리토스>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 시대의 3대 비극 시인 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는 운명, 전쟁, 폭력, 상실, 고통, 상처, 애도 등의 감정이 녹아있다. 또한 이방인이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 진보적인 면모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이런 시대를 초월했던 그의 세상을 보는 시각은 현대에 와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트로이의 여인들>을 읽으며 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로 인한 불평등을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파열음이 발생하며 극단적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전쟁의 고통, 인간다움을 잃은 자들의 최후와 그들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무고한 사람들의 비참함을 표현한 그의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서로 상처를 덜 받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