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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n 05. 2023

서현의 나날.

1화. 출근길.

갓 구운 고소한 빵 냄새가 그녀의 코를 간질인다. 그녀는 미세하게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몸을 뒤척였다.


“벌써?”


짙은 고동색 원목으로 만들어진 침대에 누워있던 서현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코에서 느껴지는 고소한 빵 냄새가 이제 그만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다그쳤다. 며칠 전 그녀는 마을의 유일한 안전지대 ‘헤스페리데스 베이커리’에 취직했고 출근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여전히 그녀는 인상을 쓴 채 하품을 하며 아래층의 부엌으로 내려갔다.


“치이익… 뽀글뽀글…”


아래층의 부엌에 가까워질수록 버터의 고소한 향이 코를 간지렀고 끓고 있는 수프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그녀는 쳐져 있던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흥얼거렸고 찡그리고 있던 눈은 웃음을 머금었다.


“버드! 오늘도 고마워!”


그녀는 불 앞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버드의 허리를 감싸며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버드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요리에 집중했다. 버드 앞 화로 위에는 뜨겁게 달궈진 무쇠 프라이팬에서는 “치이익…” 소리가 나며 매끈한 노란색 직사각형의 물체가 점점 녹아내리며 형태를 잃어갔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녹아내리며 고소한 향을 풍기는 버터를 바라보며 버드에게 투정을 부렸다.


“상대가 반가워하면 간단하게라도 답해주면 좋잖아. 버드는 그런 점이 부족해. 노력 좀 해!”


하지만 여전히 버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버터가 녹아버린 프라이팬을 뒤로하고 옆에서 끓고 있는 냄비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 버드를 내버려 둔 채 서현은 다시 흥얼거리며 부엌을 빠져나와 욕실로 발걸음 했다.


거실을 지나 욕실로 향하는 복도의 통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집안을 밝히며 온기를 돌게 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창밖으로 햇빛을 머금은 파릇파릇한 식물들이 반짝이며 주변을 빛나게 만들었다. 순간 멍하니 있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때의 우리는 왜 그랬을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지만 손목시계의 “삐빅! 삐빅!” 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불러왔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씻어야지. 늦겠다.”


그녀는 입고 있던 널찍한 잠옷을 바구니에 벗어던지고 앞에 있는 전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둥글둥글하고 폭신해 보이는 하얀 털이 온몸을 감쌌고 동그란 얼굴에는 앙증맞고 조그마한 삼각형의 코가 보였다.


그녀는 서둘러 샤워기를 틀어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신 뒤 양 인간 전용 보디워시로 구석구석 꼼꼼하게 씻었다.


“역시. 전용 워시를 사용해야 윤기 있게 털을 관리할 수 있어.”


욕실 벽면에 거치 된 타원형의 전신 거울에 비친 윤기나는 털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계속 흥얼거리며 드라이룸이 있는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위잉…”


드라이룸은 큰 소리를 내며 따뜻한 바람으로 온몸이 젖은 그녀의 털을 말렸다. 그녀는 젖은 몸을 말릴 때조차 흥얼거렸지만 드라이룸의 작동 소리에 묻혔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는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덜 마른 윤기나는 털이 눈에 밟혀 기계의 작동이 멈출 때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띠리링. 드라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은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드라이가 끝난 것을 알리는 메시지가 울리자 협소한 독방에 갇혀있다 해방된 사람처럼 문을 빠르게 재치며 밖으로 뛰쳐나와 흥얼거리며 드레스룸을 살폈다.


“오늘은 어떤 옷이 좋을까?”


그녀는 한동안 옷장에 걸려있는 몇 안 되는 옷들을 살펴보며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던 중 부엌에서 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식사를 하실 시간입니다.”


하지만 옷에 집중하는 그녀는 버드의 소리를 무시한 채 최근 구매한 원피스와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 및 후드티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음.. 오늘은 식자재 창고에 갈 일이 없으니 원피스를 입고 기분 전환이나 할까?” 그녀는 웃으며 혼잣말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니야.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 베이커리는 그런 곳이니까. 괜히 원피스를 입고 갔다가 옷만 버릴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며 우물쭈물했다.


“삐비빅! 삐비빅! 이러다 지각합니다. 빨리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삐비빅! 삐비빅!”


“아이씨. 몰라!”


부엌에 있는 경고음과 함께 버드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그녀는 짧고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활동하기 편한 후드티를 입고 청바지를 입으며 부엌으로 달렸다.


식탁 위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도톰한 식빵과 육즙이 흥건한 베이컨, 뚜껑이 열린 채 달콤한 향을 풍기는 딸기잼 그리고 꽃무늬 도자기에 담긴 고소한 향을 풍기는 노란빛의 옥수수 수프가 차려져 있었다.


“버드. 언제나 고마워! 맛있게 먹을게!”


배가 고픈 서현은 오른손에 숟가락을 들고 반대쪽 손에는 노릇한 식빵을 잡은 채 말했다. 하지만 버드는 부엌 구석에 가만히 서서 그녀를 지켜볼 뿐이다. 서현은 맛있게 차려진 음식들을 먹으며 오늘 해결해야 될 업무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열심히 해결해야 하는 일을 떠올려봤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고 인상을 찡그리며 “어.. 뭐. 그 때가면 생각나겠지.”라며 그릇에 남아 있는 베이컨을 입에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부엌 구석에서 충전 중인 버드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며 서둘러 베이커리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울창한 숲의 맑은 공기가 그녀를 반겼고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들의 잔해들은 덩굴식물에 휩싸인 채 높은 산과 같이 보였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까지 이어진 오솔길을 걸으며 있는 힘껏 숲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언제나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니까.” 하지만 이내 흉물스럽게 무너져내린 건물들을 보며 어두운 과거를 떠올렸다.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지구는 365일 빛났고 어둠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들은 잠들지 않았으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술과 약에 의존하며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데 열중했다. 결국 인간다움 그리고 타인과의 상생을 잊어버린 구 인류는 지나친 경쟁과 욕심으로 발발한, 단 한 번의 거대한 전쟁으로 자멸했다.


고개를 숙인 채 어리석었던 구인류에 대해 생각을 하며 걷던 그녀의 귀에 지직거리는 기계음과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 그녀의 시야에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돌을 깎아 만든 의자와 나무 표지판이 서 있는 아담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그곳에는 동물과 인간의 특징이 섞여있는 존재, 옛날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존재, 인간의 말을 하는 동물이 뒤섞여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서로를 잡아먹을 듯 싸우더니.. 어휴. 지금처럼 지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구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피해 더 안전한 곳에서 풍요롭게 살겠다며 서로 잔인하게 죽이며 싸웠고 그 과정에서 각종 화학 물질을 이용하여 본인들의 손으로 자연과 생태계 파괴를 앞당겼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파멸했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지구인들은 생존하기 위해 과거의 경멸과 증오를 뒤로하고 공존을 선택했다.


그녀는 힐끗 주변을 살핀 뒤 빈의자에 앉아 손에 들고 있는 소식지를 읽기 시작했다.



[지구인 소식지]


“재건 사업! 붕괴된 우리의 유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습니다!”

“길어진 털을 관리하세요.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털을 안겨드립니다.”

“그렇게 살면 인생 실패자일 뿐입니다. 제가 성공한 인생의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충격! 미모의 여배우! 사실은 지하인으로 밝혀져.”



“하나같이 사기꾼들의 선동이나 한심한 가십뿐이야.” 서현은 심드렁하게 읽고 있던 소식지를 반으로 접어 옆으로 밀어뒀다.


그녀가 읽고 있는 소식지는 다양한 거주지의 소식을 종합하여 지구인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후의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때 일부 지식인들이 재능을 활용하여 만들었다. 그들은 소식지를 통해 현재 이어져오는 기술, 지식,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학구적이고 예술적인 내용은 사라져갔고 지구인들의 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가십적인 내용들이 늘어났다. 한 번의 종말을 맞이하고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덜컹덜컹.. 끼이익..”


멀리서 오래된 버스의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정류장에 있는 지구인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각자의 일에 몰입했다.


“지지직.. 지지직.. 헤스..페..리..데스.. 차량이..”


정류장의 유일한 오래된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여성 목소리의 기계음이 들려왔고 일부 지구인들이 정류장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끼이익!! 텅텅!”


네발 지구인 전용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멈춰 섰고 네발 지구인들은 조금이라도 편안한 자리를 이용하려고 몸싸움을 하며 버스 출입문으로 향했다.


돼지 지구인은 거대한 몸뚱이를 들이밀며 “내가 먼저였어! 꾸웨엑!”이라며 소리쳤다. 돼지 지구인의 거대한 몸뚱이에 밀려난 늑대 지구인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이 돼지 새끼가! 크르릉” 순식간에 정류장의 네발 동물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물어뜯으며 싸울 분위기에 휩싸이자 이를 지켜보던 버스 운전기사가 소리쳤다. “당신들. 도살장에 끌려가고 싶어? 우끼끼.” 네발 지구인들은 전화를 들고 있는 운전 기사의 모습을 본 뒤 떨더름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서로 양보하며 버스에 올랐다.


큰 소란에도 다른 지구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일에 몰입했다. 한차례의 소란이 끝난 뒤 네발 지구인 전용 버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류장에서 멀어졌다.


소란스러운 그들이 떠난 정류장에는 고요함만이 남았다. 서현은 두발 지구인 버스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며 주변의 다른 지구인들을 관찰했다. 다리를 꼰 채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소식지를 유심히 읽는 푹신한 털을 가진 양 지구인은 앙증맞은 입을 벌리며 하품을 했다.


서현은 졸고 있는 양 지구인이 어떤 소식을 읽는지 궁금했지만 복슬복슬한 그녀의 털에 가려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금방 흥미를 잃은 서현은 다시 두리번 걸렸지만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자신들의 관심사에 몰두했다.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하는 그녀는 가슴이 답답했지만 정적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한숨을 쉬며 소식지를 읽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억지로 읽고 있는 소식지에는 온통 따분한 소식뿐이었다. 그녀는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쉬며 읽던 소식지를 반으로 접어 있는 힘껏 정류장 뒤편으로 던졌다.


“사각. 사사삭!”


풀 위에 사뿐히 올려져 있던 소식지가 풀 아래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두발 지구인은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린 채 자리를 피했다.


“아. 더러워. 땅속에서만 살지. 왜 이렇게 지상으로 나오는 거야?”


“야. 지들도 지상에서 살 고 싶은 거지. 그런데 본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저렇게 지상의 쓰레기라도 가져가서 감상하려는 거지.”


“정말? 소름 끼쳐!”


정류장에 남아있는 지구인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지하인들을 험담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최후의 전쟁 이후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들은 서로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보다 어떻게든 계급을 통해 위계질서를 만들려 했다. 이를 통해 자신보다 약하고 가진 것이 없다고 판단되는 대상들을 무시하고 조롱했는데, 특히 본인들이 알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 주를 이뤘다. 이러한 조롱 대상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 바로 지하인이다. 지상인이라면 누구나 그들을 경멸했지만 그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지상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정류장에 남은 다수의 두발 지구인들은 가십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소식지 읽었어? 여배우가 사실은 지하인이었데. 진짜 충격이야.” 옆에서 얘기를 듣던 두발 지구인들도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여 얘기했다. “정말. 깜짝 놀랐어. 어떻게 모두를 속일 수 있지?” “정말 소름이 돋아. 혹시 우리 주변에도 지하인이 있는 것 아니야?” “야! 끔찍한 얘기 하지 마!” 그들은 소식지에서 제공하는 가십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것이 사실인 것 마냥 얘기했다.


“이번 열차는 헤..스..” 정류장의 스피커에서 지직 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멀리서 오래된 기계의 덜컹거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가십에 대해 떠들던 두발 지구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몇 분 전 정류장을 떠난 네발 지구인들과 다르게 질서정연했고 야만적인 마찰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삶과 관계없는 가십에 대한 얘기를 끝없이 했다. 그들의 뒤에 서 있는 서현은 한시라도 빨리 베이커리에 도착하여 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가십에만 열을 올리는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덜컹.. 덜컹.. 끼익!..” 어느새 자욱한 먼지와 금방이라도 고장 날 것 같은 굉음을 내며 두발 지구인 전용 버스가 도착했다. 두발 지구인 버스는 네발 지구인 버스와 다르게 소수가 앉아서 갈 수 있는 의자와 입석자를 위한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버스의 의자와 손잡이는 과거 지구의 유일한 지배자였던 두발 지구인들의 적통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올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지 못한 채 바닥에 배를 깔고 아무렇게나 뒹구는 그들과 전혀 다른 존재임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덜컹. 덜컹.”


버스는 모든 두발 지구인들이 탑승하자 다시 요란한 소리와 강한 진동을 만들며 움직였다. 탑승한 두발 지구인들은 부실한 손잡이를 위태롭게 잡은 채 온몸을 덜덜 떨며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부류와 좁지만 여유로운 표정을 한 채 안정적으로 앉아 있는 부류로 나뉘었다. 최후의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음에도 현재 지구인들은 어리석었던 구 인류가 그랬듯이 돈으로 계급을 만들어 차별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아앗!.”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서현은 고통을 참으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다가도 옆에 있는 다른 지구인이 자신의 발을 밟거나 그녀를 어깨로 밀칠 때는 참지 않고 모두가 들리게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이.. 씨!..”


그녀만 욕설을 하는 것이 아니었고 좁은 버스 안에 서 있는 지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지구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고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한차례 인류가 무너져 내렸음에도 그들의 남들보다 우월하고 대접받고 싶어 하는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좁은 버스 안에서 상반된 두발 지구인들은 서로를 욕하고 무시하며 헤스페리데스로 향했다.


“이번 역은 헤스페리데스. 헤스페리데스. 버스가 정차할 때까지 안전하게 자리에 앉아 계십시오. 이번 역은 헤스페리데스..”


버스의 하나뿐인 정차역인 헤스페리데스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 방송은 버스가 정차할 때까지 안전하게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처음부터 대부분의 두발 지구인들은 위태롭게 서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는 버스는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끼이익.. 끼익..” 굉음이 커질수록 버스의 흔들림이 강해졌고 서 있는 지구인들의 비명과 욕설도 커졌다. “쾅!” 버스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 무엇에 부딪힌 듯 급정거했고 서 있던 일부 지구인들은 넘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도와주세요!”


“나 좀 살려줘!”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욕설이 들렸지만 운전수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지구인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내려! 어서 내리란 말이야! 우끼끼!”


서로 뒤 섞인 채 욕설을 하는 서 있던 두발 지구인들은 한시라도 빨리 내리기 위해 넘어진 채 누워있는 지구인들을 밟고 서로를 밀치며 버스에서 내렸다. 의자에 앉아있는 지구인들은 욕설과 비명을 들으며 다양한 표정을 지은 채 소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서현은 소리를 지르며 뒷문으로 향할 때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지구인들의 자세와 표정을 본 뒤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좁은 버스에서 내리는 일에 집중했다. 끙끙거리며 힘겹게 내린 곳에서 올려다 본 버스 창문에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서 이죽거리는 그들이 보였다. 서현의 마음속에서 분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부러움이 솟아났다.


“나는 왜 저런 삶을 살 수 없을까? 매일 고생하고 노력하는데.” 윤기가 돌던 털은 뭉치고 뒤엉켰고 매끈하며 생기가 돌던 얼굴은 푸석하고 어두운 안색이 드리었다.


“삐빅! 삐빅!” 그녀의 오래된 손목시계가 그녀의 침울함을 꾸짖듯 울어댔다.


“아! 지각하겠어!”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며 여전히 소란스러운 버스를 뒤로하고 있는 힘껏 베이커리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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