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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n 12. 2023

서현의 나날.

3화. 질투.(01)

많은 지구인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1층은 여전히 열기가 가득했고 직원들은 다음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청소 담당인 서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하던 중 테이블에 앉아 화장을 고치는 여우 지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은정아. 저기 봐.” 서현은 청소 중인 은정에게 말했다. “어디? 누구를 말하는 거야?” 물품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던 은정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기. 바 앞에 있는 테이블.” 서현은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우 지구인들을 가리켰다. 서현의 손끝을 바라보던 은정은 슬쩍 그들의 모습을 본 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청소를 했다. “나도 저기에 앉아서 서빙이나 응대를 담당하면 좋을 텐데..” 서현은 바닥의 오물을 닦아내면서 그들이 부러운 듯이 말했다. “저분들도 고충이 있겠지. 어쩌면 우리보다 더욱 힘든 상황일 수도 있어.” 여전히 은정은 먼지를 털어내며 그들을 부러워하는 서현에게 말했다.


하지만 서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 리가! 쟤네들은 치장을 하고 음료와 음식을 나르면서 덜떨어진 손님들에게 웃어주면 되는걸?” 서현은 마음 한편으로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을 깎아내렸다. “서현아.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아. 저분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야. 분명히 말이야.”


서현은 본인의 의견에 공감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우 지구인들을 옹호하는 듯한 은정의 모습에 섭섭함과 짜증이 났고 평소보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솔직히 쟤네가 무슨 고생을 하겠냐? 그리고 너 말대로 고충이 있다고 치자. 쟤네는 그만한 보상을 받잖아!” 서현은 분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여전히 은정은 그녀의 말에 답변하지 않고 묵묵히 청소를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더욱 화가 난 서현은 화를 내며 말했다. “생각을 해봐. 베이커리가 운영되고 유지되는데 쟤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기여를 하잖아. 우리가 위생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저들이 손님 응대를 할 수 있겠어? 우리가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니까. 쟤들이 저렇게 치장만 하고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서현은 물걸레를 멈춘 채 자신의 뒤틀린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그런 서현의 모습을 보던 은정은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를 다독였다. “요즘 일이 힘들었구나. 조금 쉬었다가 하자.” 서현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은정의 따뜻함에 어느 정도 분노가 누그러졌다. “그래. 너 말이 맞아. 조금 쉬었다가 시작하자.” 그녀는 조용히 은정 옆에 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우 지구인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했다.


“아까. 그분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이따 오시면 조금 더 반갑게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화장을 고치며 여우 지구인이 말했다. “역시. 베테랑이야. 든든해요.” 서빙 및 응대를 담당하는 여우 지구인들의 매니저 은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여우 지구인들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화장을 고치고 옷을 다듬으며 오후 타임의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후에는 손님들이 적게 왔으면 좋겠어요. 요즘 손님이 너무 늘어나는 것 같아요. 특히 진상들이..” 다른 여우 지구인이 투덜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여우 지구인들도 작게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한순간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자 은서는 이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자. 여러분 투덜 되지 말고! 최대한 힘을 내서 즐겁게 웃으면서 준비해요!” 그녀는 지친 여우 지구인들을 격려하며 말했다. “여러분 여기에서 성과가 좋으면 2층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요. 알고 있죠?” 그녀는 미소를 띤 채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맞아." “응. 2층으로 가야지!”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투덜 거리던 여우 지구인들은 2층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휩싸여 언제 불평을 했냐는 듯이 다들 웃으며 다음 타임을 준비했다.


베이커리의 2층은 두발 지구인들 중에서도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지구인들만 이용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출입하는 지구인들이 워낙 적었고 다른 지구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하는 VIP들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공간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 인류시대부터 세상에 비밀은 존재하지 않았고 종종 그들이 이용하는 2층 공간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여기저기에서 알려지는 정보를 종합하여 만든 이야기를 판매하는 이야기꾼들에 따르면 그곳의 바닥과 천장은 구 인류의 부자들이 많이 사용했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구 인류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인간들의 정교한 조각상들이 있었다. 양쪽 조각상들 가운데 있는 붉은색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면 양옆으로 구 인류의 소실되지 않은 책들이 꽂혀있는 거대한 책장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VIP들은 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고 음미했다.


거대한 책장에서 풍기는 오래된 잉크 냄새를 맡으며 앞으로 걸으면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며 곡선이 강조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포근함을 안겨주는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고 조금 더 안쪽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음료와 음식을 만드는 바가 보였다. 그 주변으로는 신화 속 신들이 거주하는 낙원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천장에서는 따뜻한 빛이 내렸고 높게 만들어진 폭포에서는 투명하게 빛나는 물이 새하얀 거품을 만들며 낙하했다. 투명한 물은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홀 중앙을 둘러싸며 흘렀다. 중앙 홀 곳곳에 솟아 있는 나무와 만개한 꽃들에는 새하얀 작은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맑은 소리로 울었고 나무와 꽃의 향기롭고 상쾌한 향이 홀을 가득 채웠다. 많은 지구인들이 이용하는 1층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공간이었고 베이커리의 두발 지구인들에게는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었다.


반면 네발 지구인들은 2층에서 근무를 하거나 이용할 가능성조차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2층에서 근무를 하기 위한 기본 조건에 ‘두발 지구인만 지원이 가능하다.’라는 항목에 반발하여 거세게 항의를 하고 시위를 했다.


처음에는 헤스페리데스 베이커리에 대한 작은 규모의 시위였지만, 베이커리가 아닌 일상에서 심한 멸시와 차별을 당했던 네발 지구인들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결국 시위는 베이커리만의 문제를 뛰어넘어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결국 정부에서 시위에 개입했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네발 지구인들은 신체적으로 두발 지구인들보다 뛰어났지만 자력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없었고 각종 무기로 무장한 정부의 두발 지구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당했다. 그렇게 네발 지구인들은 이전보다 더욱 몰락했고 그나마 중심부에서 생활을 했던 자들마저 사라졌다.


이후 정부와 두발 지구인들은 네발 지구인들의 베이커리 이용을 원천 차단하려고 했지만, 창립자 A의 강경한 반대로 인하여 실패했고 조정안으로 지하 1층에 전용 층을 만들어 그곳만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에서 매장되었다.


네발 지구인들을 제외한 평범한 두발 지구인들이 2층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층의 서빙 및 응대를 담당하는 서비스팀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비스팀에서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선 여성이고 다른 지구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와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뛰어난 미적 감각도 필요했다. 이러한 인력들이 2층에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일을 하는 구성원까지 높은 수준의 기준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베이커리의 2층을 이용하는 지구인들은 순결함과 본인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느끼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빙과 응대를 하는 인력이 항상 부족했고 그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결국 그들은 외모와 교양을 갖춘 두발 지구인이라면 구 인류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아도 2층에서 일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타협안을 마련했다. 그런 이유 덕분에 동물 지구인도 그들이 요구하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2층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에 가장 근접한 1층의 직원들은 서비스팀에서 일하는 여성 지구인들이었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하고 본격적으로 오후 타임에 대해 얘기를 할까요?” 은서는 화장을 마친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큰소리로 “네.”라고 말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1층 바 안쪽에 마련된 회의실로 향했다. 청소를 하는 서현은 눈을 돌려 슬쩍 그들의 모습을 보며 청소를 했다.


“은정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조금 전까지 멀리서 들렸던 나긋나긋한 은서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청소를 하던 은정이 그녀에게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서현은 당황스러웠고 마음 깊은 곳에서 뜨겁게 꾸물거리는 무언가가 올라오며 얼굴에 열감이 느껴졌다.


“뭐지? 저 매니저가 저렇게 친절하게 은정이에게 인사를 하지?” 서현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하려 노력했지만 진정되지 않고 더욱 뛰기 시작했다.


“서현아. 다 했어? 청소 도구 정리하자.” 머릿속에 온통 은정과 은서에 대한 생각이 가득한 서현은 은정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순간 몸을 떨었다. “서현아 괜찮아? 아까부터 이상했어. 어디 아파?” 옆에 있는 은정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 어. 이상하게 오늘은 피곤하네. 나는 따로 마무리하고 집에 갈게. 다음에 보자.” 서현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응.. 그래. 내일 보자.” 평소와 다른 서현의 모습에 당황한 은정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서현은 은정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를 억누르며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주..변부행 버스를 탑승하실 분들은 편안히 앉아 기다려 주십시오.”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운행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지직거리는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주로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주변부의 지구인들은 출근 때와 다르게 다들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은정이는 서비스팀 매니저를 어떻게 알았을까?”


“뭐지. 정말 뭐야? 나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서현은 버스를 기다리며 몇 시간 전 은서와 인사를 나눈 은정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설마 서비스팀에서 제안을 받았나?” 은정이 서비스팀에 제안을 받았다는 상상을 하자 기쁨이 아닌 질투를 느꼈다. 서현은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본인도 조절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이 마음속에 남았다. “아. 그래서 아까 걔들을 감싸준 건가? 정말 그런 거야?”


“버스가 오고 있습니다. 정류장에 계신 지구인분들은 탑승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정류장 스피커에서 버스의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알림이 지직거리며 흘러나왔다. 은정에 대한 질투심과 섭섭함에 빠져있던 서현은 잠시나마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했다. 같은 거대한 먼지와 굉음을 내며 버스가 다가왔다. 그러자 힘 없이 늘어져있던 지구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먼저 탑승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몸싸움과 고성이 오가는지 정류장 뒤 쪽에 가만히 서있던 서현도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부딪히고 발을 밟혔다. 은정에 대한 질투심과 섭섭함에 화가 나있는 서현은 다른 지구인들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번 정류장은 주변부. 주변부. 모든 승객분들은 버스가 멈출 때까지 안전하게 의자에 앉아 계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정류장은..” 여전히 버스 내부는 소란스러웠고 모든 승객이 또다시 험악하게 인상을 쓴 채 서로를 향해 욕설을 뱉을 준비를 했다.“끼이익..! 쾅! 쾅!” 버스는 굉음을 내며 급정거했고 서 있던 지구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 뒤엉켰다.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 밟고 밟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사람 살려! 저리 가라고! 아이씨..!” 서현도 욕설을 뱉으며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서둘러 내린 정류장에서 바라본 버스는 여전히 인상을 쓴 채 서로 몸 다툼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지구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랐던 서현의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진짜. 짜증 난다. 한심해..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평소와 다르게 은정에 대한 질투를 느낀 그녀는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 했고 깊은 숲에 위치한 주변부의 마을은 반짝이는 중심부와 다르게 짙은 어둠이 내렸다.


“탁. 버드! 나왔어!” 서현은 거실 형광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밝혔다. “오셨습니까? 오늘 저녁식사는 어떤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구석에서 충전 중이던 버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외출복을 입은 채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서현은 버드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했다.


“버드. 오늘 은정이 하고 조금 다퉜어. 내가 잘못한 걸까?”


“저녁 식사는 어떤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가사 전문 로봇인 버드는 서현의 말에 답하지 않고 미리 입력된 시간에 진행해야 하는 일과 대답을 했다. “은정이는 서비스팀에서 일하는 걸까? 하긴. 은정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버드는 어떻게 생각해? 저번에 우리 집에 왔던 은정이 기억나지?” “저녁 식사는 어떤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서현은 버드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했다.


“은정이는.. 사실 나도 서비스팀에서 일하고 싶어. 그런데 나 같이 못생기고 침울한 지구인은 안되겠지.” 서현은 훌쩍이며 말했다. “저녁 식사는 어떤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적막한 거실에는 저녁 식사를 재촉하는 버드의 기계음과 훌쩍이는 서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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