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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Nov 18. 2023

결혼, 여름 - 알베르 카뮈

따뜻한 공기와 반짝이는 푸른 바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떠오르는 에세이.



# 01.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힘든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를 가난한 집의 아이라고 생각 못 할 정도로 낙천적이고 밝은 아이였다. 20대 초중반까지도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죽음을 인식하기에 삶을 더욱 갈구한다고.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한다고."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죽음을 인식하기에 삶을 더욱 갈구한다."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한다."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같은 24시간을 보내도 더 열심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밀도 높은 삶을 살아간다. 누구나 죽으니 더욱 열심히, 꾸밈없이 삶을 살아가자. (2023.11.10)


# 02.

살다 보면 무언가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주변의 시선, 사회의 분위기 등에 맞춰 바라보고 판단하며 말한다. 이런 성향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순수하게 행복을 느끼면 안 되는 것일까?


카뮈의 말과 같이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며, 삶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고 싶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삶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힘들더라도 일주일에 하루 아니면 몇 분 만이라도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꾸밈없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고통스러운 삶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2023.11.10)


# 03.

"내 앞에 놓인 현재의 풍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이 또 다른 삶을 여는 것이라는 믿음은 나로서는 마뜩지 않다. 내게 죽음은 닫힌 문이다."(p.34)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된다고 말하는 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비록 냉담자로 살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틈틈이 기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천국, 지옥 그리고 연옥을 믿는 편이고 죽음 뒤에는 새로운 길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럼에도 카뮈의 말이 거북하지 않은 이유는 살아있는 현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사후 세계를 신봉하여 현재 사신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23.11.11)


# 04.

"알제의 풍요와 과잉 속에서 삶은 느닷없고, 엄격하고, 너그러운 거센 열정의 곡선 그려간다. 이곳에서 삶은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심사숙고한다거나 발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p.48)

알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루한 삶을 살아간다.


그곳은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행복하고 평온해 보이는 삶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훌륭한 풍경, 여유가 주어져도 행복과 동시에 나태와 불안이 함께 느껴진다.


씁쓸함이 수반되지 않는 진실은 존재하지 않고 삶을 고양시키는 것들은 부조리를 증대시킨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부조리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부조리에 무릎을 꿇는 순간 인간의 삶은 끝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 이를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2023.11.13)


# 05.

삶은 부조리의 연속이고 언제나 진실은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된다. 오히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치열하게 부조리에 저항하며 살아가야 된다. (2023.11.13)


# 06.

오랑은 세련됨과 교양하고는 거리가 먼 도시이다. 지적 활동을 위한 장소, 모임은 거의 없고 길거리 이곳저곳에서는 과하고 촌스럽게 치장한 뒤 자신의 미흡함과 추함을 뽐내는 사람들뿐이다. 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다. 하지만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순수하고 광대한 자연, 세련되지 않은 인간의 본능을 통해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나는 오랑 같은 곳에서 살기 힘들 것 같다. 아마 끝없이 밀려오는 권태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할 확률이 높다. (2023.11.15)


# 07.

"적어도 인간에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면서 부단히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보다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을 안고 있지만 모순을 거부해야 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응당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의 임무란 자유로운 영혼들의 끝없는 불안을 가라앉힐 몇 가지 처방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너무나도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를 꿈꿀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략) 하지만 인간이 완수하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을 초인적인 과제라 일컫는 것이고, 그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다. 혹여 힘이 사상이나 안락의 얼굴로 우리를 현혹할지라도, 굳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하자. (중략) 이 세계는 불행에 중독되어 그것을 즐기는 듯하다." (p.118~119) (2023.11.16)


# 08.

"인류는 오직 기술만을 필요로 하고,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인류는 기계 속에서 반항하고, 예술과 예술이 의미하는 바를 장애물이나 속박의 선로로 간주한다. 반면에 프로메테우스의 특징은 기계와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육체와 동시에 영혼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인은 영혼이 잠정적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육체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p.124) (2023.11.16)


# 09.

"신화는 그 자체로는 생명력이 없다. 신화는 우리가 형상화해 주기를 기다린다. 세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부름에 응한다면, 신화는 우리에게 자신의 진액을 원형 그대로 내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진액을 보존하여 잠들었던 신화가 죽지 않고 부활하게 하는 것이다."(p.127) (2023.11.16)


# 10.

"우리에겐 이 오랜 끈질김이 신들에게 맞선 반항보다 더 의미가 깊다. 어느 것에서도 벗어나지 않고 어느 것도 물리치지 않으려는 저 경탄스러운 의지가 인간의 고통스러운 마음과 세계의 봄을 늘 화해시켰고, 앞으로도 화해시킬 것이다."(p.128) (2023.11.16)


# 11.

"깊이 사랑하는 여인의 매력을 항목별로 조목조목 읊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숫 없다. 그냥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다."(p.133)


카뮈의 말이 옳다. 깊이 사랑하는 사람의 매력을 항목별로 조목조목 말할 수 없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이유가 얼마나 많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가?


옛날 기억을 떠올려보면 간혹 "자신의 어디가 좋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냥. 다."라고 말했다. 물론 당시 여자친구는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약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만약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여전히 "그냥. 다."라고 말할 것 같다. 조목조목 읊을 수 없다.

사람뿐만 아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할 수 없다. 그냥 좋은 것이다. "그냥 전체"를 말이다. 물론 머리를 쥐어 짜내면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이쯤에서 일체의 아이러니를 거두고 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관해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리라."(p.136) (2023.11.17)


# 12.

"우리들은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하며 숭배한다. 이성적인 것은 모두가 옳고 감정적인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로 인하여 이서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해야 된다는 오만과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한계가 없는 존재라는 오만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을 거부하기 위한 거짓일 뿐이다. 무지에 대한 인정, 광신에 대한 거부, 세계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2023.11.17)


# 13.

"우리가 남에게 어떻게 비치든 어떤 온당치 않은 자리를 차지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누구이고, 마땅히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다는 문제만으로도 삶을 채우고 노력을 쏟기에 충분하다."(p.158)


# 14.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찾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마다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젠가는 모두가 찾아와 불타오를, 숨어있는 태양의 중심에서 좀 더 가까이 맴돌 것이다. (중략) 예술가의 집요한 탐구 속에서 유일하게 그를 도울 수 있는 이들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창조하면서 자신의 열정 속에서 모든 열정의 척도를 찾아내고, 그리하여 판단할 줄 알게 된다."(p.159)


자신의 진실을 찾아 자신만의 고유함을 만들어내는 것.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을 찾는 중'이다.

이 과정은 고단한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데 고단함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예술가들은 훌륭한 결과물을 그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모든 창작자들을 응원하고 싶다. 자신의 진실을 찾고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이로써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되리라. (2023.11.17)




카뮈의 알제리에 대한 애정과 아름다운 풍경 묘사를 읽다 보면 따뜻한 공기와 반짝이는 푸른 바다가 떠오른다. 삶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우리를 괴롭히지만 있는 힘껏 저항하며 삶을 살아가자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싶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고 더 행복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갑자기 서늘해진 겨울의 초입에 삶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안겨준 그에게 감사하다.


책을 보는 순간 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겨오지만 오히려 추운 겨울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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