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연두가 사라졌다.
뽀얀 피부에 단말머리를 한 연두는, 어느 날, 갑자기 동네에서 증발해 버렸다. 고작 9살 자리 여자 아이가 어디로 갔을까? 누가 억지로 데려갔을까? 사고라도 당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을까?
항상 배시시 웃으며 팔짱을 감아오던 연두는 호돌이 반팔 티셔츠를 사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연두의 최애 캐릭터다. 오죽하면, 엄동설한에도 그 반팔 티셔츠를 긴 팔 상의 위에 껴 입곤 했다.
마지막으로 연두를 본 것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한바탕 벌어진 후라, 무거운 공기가 집 안을 가득 메운 날이었다. 아쉽게도 계란은 없었다. 식은 밥에 간장, 참기름을 넣고 어떻게든 잘 비벼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다.
“진희야, 놀자.”
연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이 급해졌다. 서두르면 1분 안에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리 연두와 놀고 싶은 마음에 밥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넣으며 식탁에서 급히 일어났다. 너무 서둘러서 였을까? 철제의자 다리가 시멘트 바닥에 끌리며 거슬리는 소음을 일으켰다. 동시에 아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욕설.
“니미, 젠장~!”
부부싸움의 여파로 저기압인 아빠가 소주잔을 방바닥에 던지고는 뭔가를 작심한 듯 일어나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알루미늄 문짝이 여 닫히는 아주 찰나의 순간, 문틈 사이로 살짝 비친 연두의 얼굴. 친구는 그 날도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느희 집은 예의, 범절도 안 가르치디? 남의 집에 올 때는 밥 먹는 시간은 피해야 할 것 아니야! 하긴~! 그 애비에 그 딸이겠지!”
연두를 향한 아빠의 고성과 잔소리에 가슴께가 꽉 조여지며 배가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훈계를 가장한 술주정과 조롱은 멈추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런 아빠를 뜯어말렸을 엄마조차 상황을 방관하며 방구석에 머리를 기대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엄마에게조차 도움을 구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막상 화가 난 아빠 앞에 나서는 게 무서웠다. 머뭇거리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 밖에서 아빠의 비난을 혼자 감당하고 있을 연두가 안쓰럽고 불쌍했다. 그럼에도, 아빠의 목소리가 폭발 직전의 활화산 같았기에 문 손잡이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니! 쯧쯧! 역시나 글러먹었어!”
겁쟁이처럼 몸을 웅크린 채 바깥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차가운 밤바람이 온 몸을 휘감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빠의 허리춤 뒤쪽으로 연두가 보였다.
오랫동안 추운 곳에 서 있었는지 빨갛다 못해 부르튼 볼, 웅크린 어깨가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아빠의 비겁한 화풀이에 연두가 훌쩍일 때마다 서러운 입김이 희뿌옇게 흩어졌다. 당장이라도 연두의 손을 잡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이미 술에 취해 불콰한 얼굴을 한 아빠가 내 손목을 잡아채 집 안으로 끌고 갔다.
“다 늦은 밤에 계집애들이 겁도 없이 놀기는 뭘 놀아?”
문이 닫히기 직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연두의 얼굴이 뇌리에 사진처럼 박혔다.
1989년 12월 24일,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연두는 실종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