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2화-사건

by 해금이


버퍼링.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클릭했는데 로딩 중일 때 나오는 표시처럼 머릿속에서 동그란 원이 빙글빙글 돌았다.


‘잘린 중요부위가 항문 속에?’


최근 들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엽기카페가 많이 등장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다. 조회수나 회원수를 늘리기 위해 엽기적이고 잔인한 영상들을 무차별적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다. 개 중에는 범죄와 유희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것들이 많아 처벌도 쉽지 않았다. 이 사건도 그런 흐름속에 일어난 강력범죄 중 하나인가?


“이거 어때? 좀 먹어주는 아이템인가?”


우리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하더니, 장 팀장도 방송물이 들었는지, 업계 용어를 쓰며 물어왔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지은 언니가 대답했다.


“어… 그럼요~! 이런 좋은 아이템을 왜 지금 얘기하세요? 사건 개요가 어떻게 되는데요?”

“경기도 변주시에 사는 남성인데 이웃 여성한테 살해당했어. 여자가 자수해서 경찰이 출동해 보니까, 온 몸에 피 칠갑을 해서는 남자 옆에 멍하니 앉아 있더라는 거야.”

“원한 관계였을까요? 아니면 치정?”

“여자가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서 범행동기는 아직 몰라. 현행범으로 잡혔을 당시에 워낙 횡설수설하고 흥분을 많이 해서 진정시키는 데 애 좀 먹었어.”

“범행 수법이 뭐예요?”

“그게 애매해.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여자 혼자 성인 남성을 제압하기는 쉽지 않단 말이야. 그런데 피해 남성 하반신이 벗겨지고 중요부위가 잘린 걸 보면, 두 사람이 관계를 하던 중에 일이 벌어진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범행도구가 발견 안됐어. 절단면이 깔끔한 거 보면 분명 칼을 사용했을 것 같은데 들어맞는 도구가 현장에는 없었어.”

“그건 그렇고, 중요 부위는 어떻게 항문 속에 넣었데요?”

“우리도 그걸 모르겠다니까? 어때? 이 작가, 뭐 떠오르는 거라도 좀 있나?”

“저도 지금은 딱히… 상상력이 좀 필요하긴 하겠네요. 그런데, 범행방법이 엽기적이고 잔인한 거 빼고는 그냥 살인 사건인데요? 뭐 찜찜한 거라도 있어요?”

“그게, 납득이 안 간달까….”


잠시 말끝을 흐리던 장 팀장이 몸을 슬쩍 우리 쪽으로 기울이더니 누가 들을 새라 목소리를 은밀히 깔았다.


“누가 봐도 명백한 타살이잖아. 그런데 유족 반응이 영~ 심드렁해. 기르던 개새끼가 죽어도 이러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심지어, 형이라는 사람이 범인도 잡혔으니까 빨리 사건을 종결시켜 달라는 거야. 부검도 필요 없다고 하는 걸 절차상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해서 겨우 화장도 막은 거고.”

“혈육의 죽음을 재빨리 덮으려고 하는 형이라… 유산 상속 이런 문제인 건가요? 아니면 동생이 문제아였나? 장 팀장님, 부검결과 언제 나와요? 저희 볼 수 있죠? 협조 공문 보낼게요.“

“어허~!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이래!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라고~. 내가 줄 수 있는 소스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제작진 분들이 알아내셔야 하는 거고.”

“아이~! 좀 더 줘 봐요~!”

“안 돼! 아!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두자고. 난 결코 수사 정보 유출한 적 없는 거야. 그냥, 동네 다니다 보면 주워들을 수 있는 사실 몇 가지 말해준 거지. 그럼, 이만.”


지은 언니의 절규에도 장 팀장은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경찰서 내부로 들어가 버렸다. 오늘의 만남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바로 신상 털기의 달인이다. 예전이라면 일일이 전화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지만, 세상은 진일보했고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가 있다. ‘Iloveschool’이나 ‘싸이월드’로 들어가서 검색해보면 찾지 못할 사람이 없다.


내일, 제작진 회의에서 장 팀장으로부터 얻은 아이템을 들이밀려면 어느 정도 사건의 뼈대는 구성해 놓아야 했다. 지은 언니와 나는 경찰서 주변 카페에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결국, 오늘도 집에 들어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경찰서 주차장을 가로지르는데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저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순간, 웬 거지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 면도를 하지 않아 깔깔한 수염, 그럼에도 나름 잘 갖춰 입은 세미 캐쥬얼 정장. 물론 오래 갈아입지 않아 꼬질꼬질해 보였지만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은 언니와 나에 비하면 나름 격식 있어 보였다.


“네? 왜 그러세요?”


바로 일을 해야 하는 관계로 급한 마음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내 말투에 미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남자는 서글서글하게 말을 걸었다.


“장 팀장님이랑 아까 무슨 말씀 나누셨어요? 혹시, 경이동 성기 절단 살인 사건 관련해서 얘기 나누신 거예요?”

“누구시죠?”


지은 언니가 경계하듯 바라보며 남자에게 신원을 물었다. 혹시나 타 방송사 작가나 PD라면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간만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아이템을 잡았는데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표독스러운 지은 언니의 표정에 남자는 커다란 실례를 한 듯 자켓 안에서 명함을 꺼내 주며 말했다.


“아이고, 제 소개하는 걸 깜빡했네요. 세기 일보에 임연준입니다. 지금 사회부 경찰팀 돌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건 취재하는데 상부상조 좀 하고 싶어서요. 제가 여기 *마와리 돌고 있는데 아이템이 없어가지고 아주 죽을 맛이거든요. 이전에, 연예인 마약 수사 정보 유출 때문에 문제 생긴 이후로 떨어지는 콩고물이 영 없네요.”


*마와리: 관공서, 경찰서, 기업, 정당, 정치인 사무실 등 기자가 정기적으로 출입하는 취재처를 말하거나 매일 돌면서 뉴스거리를 캐내는 행위.


퉁퉁한 얼굴에 안경을 쓴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운 듯 사정을 설명했다. 명함도 그렇고 몰골도 그렇고 확실히 기자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경쟁자가 될 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상부상조라니. 너무 어리숙한 것 아닌가? 아니면 어리숙한 척하는 것인가?


이 바닥은 상대가 어떤 매체이든 ‘독점’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거짓말과 배신은 밥 먹듯이 할 수 있다. 지은 언니가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거절의 뜻을 표시하자, 남자는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는 듯 서둘러 취재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무임 승차할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그 동안 사건 취재한 내용들 공유하는 대신에 저한테도 정보 좀 주세요. 예~? 아까, 장 팀장님이랑 무슨 얘기하셨어요? 새로 나온 정보들 좀 있습니까?”


특별히 호감형인 것도, 그렇다고 능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딱 봐도, 신입 기자 그 자체. 하지만, 순둥이 막내 같은 남자의 외모와 말투에 차마 매섭게 내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짠내 나는 사람이었다. 사실, 우리도 맨 땅에 헤딩하는 상태였고, 어쩌면, 저 노숙자 같은 기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카페로 가서 얘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자, 그럼, 어서 보따리 풀어봐요.”


오디션 심사위원처럼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 지은 언니가 기자를 향해 말했다. 만일, 내용물이 속 빈 강정이라면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한 분위기였다. 남자는 긴장한 듯 잠시 숨을 참았다가, 내쉬고는 조사한 내용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경기도 변주시 경이동입니다. 피해자는 51세, 조하대. 경이 초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로 싱글 남성입니다. 경이동에 있는 주변 이웃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용하고 숫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문구점을 하다보니까 장사때문에 그랬는지 아이들한테는 참 친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린이 날이면 문구점에서 작은 행사도 하고, 생일이라고 하면 지우개나 연필 같은 작은 선물도 주는 식으로요. 전체적으로, 이웃들 평이 꽤 좋았습니다.”


확실히, 직접 알아봤다면 현장에서 반나절 정도 시간을 써야 할 정도로 구체적인 정보였다. 의도치 않았지만 남자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심, 오늘 저녁은 집에 들어가서 잘 수도 있겠다 쾌재를 부르는데, 지은 언니가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물었다.


“싱글 남성이라면 결혼한 적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아니면 아예 미혼? 기혼이면 지금은 별거 상태인가요? 아니면 이혼? 이웃들 증언이 조용하고 숫기가 없다고 하셨는데 평이 좋다? 조용하고 숫기 없다는 게 평이 좋을 만한 얘기인가요? 정확히 어떤 이웃들이죠? 피해자랑 가깝게 지내는 이웃들한테 정보를 수집하신 거에요? 아니면 오가다 가끔씩 얼굴보는 사람들한테 얻으신 거예요? 혹시 문구점이 월세 인가요? 아니면 자가?”

“아… 거기까지는…”


벌개진 얼굴을 한 기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지은 언니의 시선을 피했다. 당황하는 기자의 모습을 보니, 마치 얼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매뉴얼대로 출연자 섭외 전화를 마치고 다른 일을 하는 중에 지은 언니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출연자 취미가 어떻게 되신데?”

“예? 그건 왜?”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신다며? 그럼 뭐라도 하실 꺼 아니야. 그게 뭔지 확인해야지.”


출연자의 취미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으면, 지은 언니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또 질문을 던졌다.


“그럼, 주로 어떤 시간대에 취미생활을 하신데?”

“예? 시간대까지는 안 여쭤봤는데…”

“옆집 여자 사망 시간이 새벽 1시. 락 음악감상이 취미라면 이웃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이런 식이었다. 맨 처음엔 이상하게 사람을 괴롭힌다고 오해했지만, 사소한 것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팩트 체크하는 언니의 방식이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물론, 눈 앞의 남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진짜 기자 맞아요? 어떻게 기본적인 사실 관계 하나 명확하게 못 알아와요?”

“아, 저… 다음에 더 자세히 확인하겠습니다. 아직, 말씀 안 드린 다른 정보들도 있습니다. 일단, 들어보세요.”


매섭게 몰아치는 지은 언니 앞에 앉는 기자는 궁지에 몰린 쥐 같았다. 같은 직장도 아닌 타 매체 사람의 구박을 받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나 또한 내 코가 석자였다. 제발, 오늘만은 퇴근해서 제대로 씻고 싶었다. 최대한 수습기자로부터 캐낼 수 있는 정보는 다 캐내야 했다. 남자는 수첩 몇 장을 더 넘기더니 취재한 내용을 술술 불었다.


“가해자 이름은 추미영. 53세 여성입니다. 2년 전에 변주시 경이동에 이사를 왔고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조하대가 살고 있는 건물 옆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데, 피해자와 오다가다 마주쳤을 확률이 높습니다. 조하대가 운영하는 문구점 옆, 영어학원 원장에 따르면, 평소, 추미영이 조하대 주변을 맴돌았다고 합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요?”


지은 언니가 미간을 찌풀이며 묻자, 찐 감자처럼 생긴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 없게 말했다.


“그게… 원장님도 잘 모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 날, 보니까, 여자가 남자한테 딱 붙어서 따라다녔다는 것 밖에는…”


말끝을 흐리는 기자의 모습에 지은 언니의 못마땅한 속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 파악은 우리 제작진이 동네 몇 번 훑으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딱 봐도 이 수습기자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적당히 남자를 털어야 할 타이밍이다. 내가 나설 차례다.


“기자님, 고생 많으셨겠어요. 덕분에 좋은 정보 많이 얻었네요. 근데, 어떡하죠? 요즘, 경찰서 분위기 아시잖아요. 장 팀장님도 저희한테 별로 해 주신 말씀이 없어서요. 저희도 취재하다가 쓸만한 거 있다 싶으면 임기자님께 연락 드릴께요. 여기 제 연락처에요.”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마무리 수순으로 내 명함을 들이밀었다. 서둘러 자리를 파하려는 나의 의도를 남자가 눈치 챈 것일까? 갑자기, 이상한 수작을 걸어온다.


“저…허진희 작가님? 혹시, 이전에 우리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이상하게 낯이 익어요.”

“예? 아… 뭐, 흔한 얼굴이라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아닌데… 우리 진짜 만난 적 있는데?”


사건 얘기를 할 때와 달리, 확신에 찬 기자의 목소리에 노트북을 가방에 정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작가 생활을 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이 오면, 상대가 서운하지 않게 순발력을 발휘해 잘 넘어가야 한다. 예전에, 부탁을 했던, 부탁을 받았던 혹은 그 둘 다이던, 이 바닥은 인맥이 자산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아, 그래요? 하하.”


남자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또래 여성에게 작업을 걸기 위한 저급한 수작은 확실히 아니다. (지금, 내 몰골이 누가 작업을 걸어올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분명, 어디선가 나를 만난 것임에 틀림없다. 기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방송국에서 만났나? 아니면 다른 사건 취재하다가 마주쳤나?’


억지 웃음을 지으며 최근 혹은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열심히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마에 솟아나는 진땀을 닦아내며 결국 모르겠다고 실토를 하려는데, 남자가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진희 누나! 저예요. 저! 연준이! 기억 안나요? 청운각 뚱땡이 아들!”

“…”


기억났다. 청운각. 중국집 아들, 임연준.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한 사람.


애써 묻어두었던 기억이 ‘청운각’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머릿속에 유년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불편해서 피하고 싶었던, 내 인생의 생채기 같던 시절이 연기처럼 피어올라 속이 뒤틀렸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연준이가 물었다.


“누나 … 반갑지 않아요?”


연준이가 짠하게 나를 본다. 곤란한 질문.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응. 반갑지 않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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