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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금이 Nov 09. 2020

하얀 숲 008

수사 3

“이서현 씨.정은안 씨하고는 동기라구요?”

“네.”

“같은 학교 나오셨다던데, 그럼 많이 친했겠네요?”

“학교 다닐 때는 인사만 하는 정도였고, 병원 들어와서 많이 친해졌어요.”

“그럼 학교 다닐 때 정은안씨 성격은 어땠어요?”

“네? 성격이요?”

“뭐...쾌활하고 밝다던지, 아니면 우울하고 음침한 타입이라던지, 뭐 그런 거요.”

“글쎄요..저는 잘...”

“잘 생각해봐요. 대강이라도 기억에 남는 이미지 같은 거 없어요?”


4년 전 당신이 타고 있던 버스 앞에 정차된 자동차 번호판을 기억해 내라는 것과 비슷한 질문을 받은 것처럼 서현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갑작스러운 동기의 죽음에 쉬는 날임에도 불려 나온 젊은 아가씨는 낯선 공간과 난생처음 접해본 상황에 충분히 위축되고 주눅 들어 보였다.


“좋습니다. 그럼 평소 정은안 씨가 힘들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하는 말 같은 거 안 했나요?”

“아뇨. 그런 얘긴 못 들었어요.”

“그럼 평소에 둘이 어떤 얘기했어요? 동기고 같은 부서니까 이것저것 대화도 많이 할 것 같은데?”

“그냥...일 배우기 어렵다거나, 스터디하는 거 힘들다거나..그런 이야기들 했어요.”

“정은안 씨 남자 친구 있었나요?”

“네, 있어요. 병원 앞으로 찾아온 걸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남자 친구는 뭐하는 사람이죠?”

“그냥, 회사 다닌다고 들었어요.”

“혹시 남자 친구랑 싸웠다거나 하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까?”

“네, 못 들었어요.”

“음..그럼 주위에 정은안씨한테 적의를 가지거나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없나요?”

“아니요. 은안이가 얼마나 착한데요. 남한테 못된 짓 할 애는 아니에요”

“혹시, 정은안씨 우울증 같은 거 없었나요?”

“아..약을 먹기는 했어요. 까놓고 우울증 약이라고 말하진 않았는데 보니까 우울증 약이더라구요. 처음엔 감기약인 줄 알았는데 너무 오래 먹는다 싶어 보니까 정신과에서 쓰는 약이었어요.”


우울증과 약 이야기가 나오자 이서현은 동기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실감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어제까지 같이 대화하고 근무하던 동기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이 이 젊은 아가씨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처럼 보였다.


“제가 진작에 도와줬어야 하는 건데...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줬으면...많이 도움이 됐을텐데...저도 너무 많이 힘들고, 바빠서..흑..저라도...”

“저..이서현 씨,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게 주변에서 쉽게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죠? 팀장님?”


친한 친구나 가족, 그리고 동료가 자살을 했을 때 남겨진 자들 또한 상당한 우울감이나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최소한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자살자 주변 사람들의 후회와 자책. 이서현은 정은안의 동기이자 친구로서 은안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 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서현이 흘리는 눈물에 당황한 빛이 역력한 구인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티슈를 뭉텅이로 뽑아 이서현에게 가져다 바쳤다. 아무래도 젊은 아가씨를 만나 호감이 동한 상태에서 그녀가 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당황한 것 같았다.


쉽사리 울음을 그칠 것 같지 않은 서현을 옆에 둔 채 이만식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CCTV도 그렇고, 세탁물 주머니 매듭이 안 쪽으로 생긴 것도 그렇고, 변사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사실도 그렇고.. 딱히 타살의 정황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살들을 하는지.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더니 그 조사가 틀리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저번 달만 해도 20대의 한 아가씨가 구직난에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추락사한 자살 현장을 다녀온 그였다.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가 되다가도  죽을 용기로 좀 더 살아보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속적으로 비슷한 나이 때의 아가씨가 유사한 방법으로 사망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은 만식이었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이 자살로 확실시된 것은 아니니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했다.


구인호는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버린 이서현을 겨우 달래서 내려 보낸 후 벌게진 얼굴로 이만식에게 왔다.


“정은안 핸드폰 디지털 포렌식 언제 되지?”

“3주 정도 후에 나온답니다.”

“정은안 가족은 시신 확인했고?”

“네, 아버지가 와서 확인했고 지금 병원 관계자랑 미팅하는 모양입니다.”

“흠..그래..빨리 정리하자고 설득 엄청 하겠지.”

“안 봐도 뻔하죠. 이렇게 큰 병원에서 간호사가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하면 병원 이미지에도 안 좋을 테니까요.”

“통신 기록 조회해서 남자 친구한테도 연락 한 번 해봐.”

“네.”



이만식은 빨리 사건을 마무리해달라는 유영선의 부탁과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때조차 달라붙어 언제 조사가 끝나는지 데드라인을 재촉하던 병원 관계자가 떠올랐다. 그 사람 덕분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대는 그 안경 제비가 이번에는 자식 잃은 부모를 상대로 무슨 말을 해댈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제발, 유혈사태만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만식은 제산제를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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