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6화-회의

by 해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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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온 거야?”


내 물음에 답하는 대신, 연준이는 다시 가방을 뒤적였다. 끊임없이 나오는 선물 보따리처럼 연준이의 백팩에서는 또 다른 종이가 한 장 들려 나왔다. 텅 빈 단무지 그릇 옆에 펼쳐진 종이는 추미영의 주민등록초본이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저 이래봬도 기자에요. 동사무소에 아는 사람 하나 없으려고요?”


무엇을 하든 협조 공문을 보내고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온 나로서는 연준이의 방식이 불편했다. 우쭐해하는 연준이를 보며, 불편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연준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보지 않았으면 몰라도, 본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추미영의 주소지 변동 내역을 살펴보다 익숙한 지번을 발견했다.


“어? 여긴…”

“맞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추미영의 과거 주소지를 보니,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집과 멀지 않은 곳이다. 기분이 묘했다. 현재의 살인용의자와 과거에 같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며 살았었다니… 섬찟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그런 내 기분을 짐작이라도 한 듯, 연준이가 말했다.


“누나 기분 이해해요. 저도 이거 보고 나서 기분이 좀 그랬으니까. 근데, 이게 오히려 우리한테는 좋은 거죠. 살아봤으니까 외지인 보다 취재하기도 훨씬 용이할거고.”

“잠깐! 우리한테는? 왜 ‘우리’ 라고 말하지?”

“에이, 이러지 맙시다. 이렇게까지 정보 물어왔는데 입 싹~ 닫기에요?”

“그러니까, 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맞아요. 누나 도움이 필요해요. 솔직히, 누나가 이 동네 더 오래 살았잖아요. 우리 가족이 이사오기전에도 살고 있었고. 아무래도, 저 보다는 누나가 좀 더 유리하죠.”

“야, 우리집도 너네 이사 가고 얼마 안 있다 가게 옮겼어. 미안하지만, 난 아는 게 전혀 없는데?”

“누나는 당연히 아는 게 없겠죠. 하지만, 누나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아실 것 같은데요? 어차피, 그 당시에, 우리는 애들이었어요. 뭔가를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나이고요. 누나 부모님 아니면 남아있는 그 동네 지인들 통해서라도 건너 건너 추미영에 대해 알아볼 수 있지 않겠어요?”


결국, 연준이는 나의 부모님 찬스를 쓰겠다는 말이다. 난감했다. 일단, 내가 몸 담고 있는 제작팀에서 연준이와의 협업에 동의해줄 지 미지수다. 연준이가 쓸만한 정보를 물어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방법이 정당하지 않다. 추후에 문제가 생기면, 제작팀 전체에 민폐를 끼치게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부모님과 만나는 문제다. 현재, 난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다. 직장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일하러 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셨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일의 특성상 생활패턴이 일정치 않고, 밖으로 나도는 일이 많아 불만이 많으셨다. 월급도 쥐꼬리만하고, 고생만 직싸게 하는 직장 따위 때려 치우라는 것이, 요즘, 부모님의 단골 레퍼토리다.


그런 그들에게, 험한 것들을 다루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막내작가는 빌어먹는 거지 보다 신통치 않는 직업이었다. 즉, 부모님에게 프로그램과 관련된 인터뷰를 시도한다는 것은 자살골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각 좀 해보자. 우리 팀 PD가 허락해 줄 지도 알 수 없고, 부모님은 그보다 더 하셔. 인터뷰는 꿈도 꾸지 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시니까.”

“누나 이거 밖에 안 돼요? 어떻게 시도도 안 해보고 안되는 이유만 늘어놔요? 사실, 안 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야, 넌 무슨 말을 해도…”

“제 말이 틀린 거면 일단 물어봐 주기라도 해요. 예? 저 진짜 잘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내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도발 하다가도 마지막에는 아이처럼 매달리며 떼쓰는 모습이 아주 사람을 쥐락펴락한다. 웬만하면 연준이와 얽히기 싫었지만, 마냥 외면할 수도 없었다. 연준이가 가진 비극적인 가족사 때문이다. 하늘 아래,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연준이를 나 아니면 누가 도와줄 수 있겠나 라는 시혜적인 생각도 연준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알았어. 일단, 우리팀이랑 부모님한테 모두 말씀드려볼 게. 그래도, 이건 확실히 알아 둬. 나 막내작가라서 진짜 힘 하나도 없다? 위에서 ‘NO’하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다음 날, 제작팀 회의에서 무심하게 ‘이런 제안이 있었다’ 라고 ‘툭’ 던졌다. 평소, 나의 의견 대부분이 구겨진 휴지조각처럼 폐기되었으므로, 오늘도 그래 주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자연스레 까이기를 바랬던 나의 제안을 이범석 PD가 웬일로 ‘덥석’ 물었다.


“좋은데? 임연준? 세기 일보 수습 기자라 그랬나? 나 그쪽에 아는 기자 한 명 있는데 어떤 친구인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요즘 패기 있는 신입 찾기 어려운데 고 놈 참 물건일세. 하하.”

“어제, 장 팀장 만난 건 어떻게 됐어요?”


메인 작가 언니가 이 PD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 PD가 지난 밤 장 팀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연을 듣다 보니, 왜 이 PD가 다른 매체와의 공동 취재를 허락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경찰, 이 새끼들 참 웃겨. 어떻게 피해자 인권보다 가해자 인권이 더 중요하지? 피해자 정보는 알려 줄 수 있는데 가해자 정보는 죽어도 안 된다네? 피해자 정보도 겨우 알아냈어.”


우여곡절 끝에 이 PD가 알아온 정보는 이랬다. 피해자 조하대는 중견기업인 한일 로지스틱스 회장, 조석을의 둘째 아들로 첩의 자식이라고 했다. 어릴 적 친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따라 본가로 들어왔는데, 굴러온 돌을 본처와 첫째 아들이 반길 리 없었다. 사업으로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 대신 조하대는 새어머니, 의붓형과 한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조하대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짐작은 가능했다. 경찰이 유가족인 의붓형을 만났을 때, 그의 반응이 묵히고 묵힌 쓰레기를 치워버린 것처럼 개운해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의붓형은 고인에게 변태새끼라고 욕을 하며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는 악담까지 퍼부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했데요? 조하대씨가 평소 어땠길래요?”


지은 언니가 볼펜 끄트머리를 입 안에서 잘근잘근 씹으며 물었다.

“그거야 이제부터 우리가 알아 봐야지. 그런데, 장 팀장이 그러더라고. 현장에 갔을 때, 조하대 집 내부가 일반적인 독신 남성이 사는 것치고 너무 깨끗했대. 약간, 강박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옷장 내부에 각 잡힌 것처럼 옷들이 네모 반듯하게 놓여있는데 먼지 한 톨 없어서 좀 오싹했다나, 뭐라나…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너무 깔끔 떨어서 주변 사람들 피곤하게 하는. 조하대도 그런 부류라서 형이 그렇게 말한 건가 싶기도 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유족들 취재를 좀 더 해 봐야 되는데 유족들 협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빨리 사건을 덮고 싶어 한다더라고.”

“뻔하네요. 새어머니랑 의붓형한테서 신데렐라 못지 않게 구박받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거 같은데요? 그래서, 강박 증상이 나타난 걸 수도 있고요. 근데, 왜 그렇게 사건을 빨리 덮고 싶어 합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데요?”


조연출 남기현의 질문에 이 PD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고 있는 중에, 이 PD가 못다한 뒷이야기를 풀었다.


“사실은, 조하대 형이 국회의원이야. 3선이나 했던 중진인데, 조귀언이라고 들어봤어?”

“어? 저 그 사람 알아요. 지역 신문에도 몇 번 나왔는데?”


지은 언니가 노트북으로 재빠르게 검색했다. 그러자, 포털 사이트에 뜬 조귀언의 사진과 함께 그와 관련된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떴다.


-공무원 폭행한 ‘새로운 국민당’ 의원, 국제행사 앞두고 ‘망신.

-‘성추행’ 의원 기소 미루는 검찰, 2차 피해 비판.

-음주운전 의원, 검찰 조사기간에 재범, ’새로운 국민당’ 대응안 논의.


“완전 쓰레기잖아? 정치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일은 빠짐없이 골고루 다했네? 그런데도 3선이나 해 먹었다니, 나라를 팔아먹어도 뽑아주는 동네인가봐요?”


메인 작가 언니의 조롱에 이 PD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정치판에 이런 인간이 어디 한 둘이겠어? 그런데, 조귀언, 이 사람 최근 들어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친구 중에 정치부 기자가 있는데, 조귀언이 이번에 새로운 국민당 당대표에 출마할 건가 봐. 아무래도, 큰 일 하기 전에 가족 문제가 불거지면 곤란하니까 이번 사건도 빨리 덮고 싶은 거야. 어때?”

“그런데, 저는 조귀언이 한 말이 내내 걸려요. 아무리 의붓형이고 고인과 관계가 안 좋았다고 해도 ‘변태새끼’,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 라는 표현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막내? 경이동 피해자 주변 사람들 전화로 인터뷰 섭외했지? 그 사람들은 조하대에 대해서 뭐라고 했어?”


메인 작가 언니의 질문에, 인터넷 맘카페 채팅과 영어학원 원장과 통화한 내용들을 근거로 조하대의 평판과 미담을 들려주었다. 특히, 조하대가 고아원에 한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는 파트에서는 이 PD가 무릎을 ‘탁’ 치고는 끼어들어 말했다.


“와, 이거 그림 나오겠다. ‘키다리 아저씨’, 고아원 아이의 유일한 후원자가 끔찍한 살해로 생 마감. 하지만 아이의 마음 속엔 영원할 사람.’ 이거 어때? 고아원 찾아가서 후원 받았다는 아이도 인터뷰하자. 그러다 운 좋으면 방송으로 다른 후원자도 찾을 수 있는 거고. 진희 씨, 그 고아원 어디야?”

“아… 그건 몰라요. 고인이 운영하던 문방구 안에 아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는데, 현장에 직접 가서 단서를 찾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PD님, 아이까지 인터뷰를 꼭 해야 될까요? 좋은 일도 아닌데 애가 충격 받으면…”

“에이, 왜 이래? 당연히 애한테는 비밀로 하지. 그냥, 후원하던 아저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부각하자는 데 인터뷰의 의의가 있는 거야.”

“그래도, 눈치로 다 알텐데…”


점점 쪼그라드는 나의 목소리는 이 PD가 회의를 다른 주제로 전환하며 깨끗이 묻혀버렸다. 회의 중, 내 의견이 무시당하거나, 묵살당하는 일은 늘 있었지만, 오늘은 단순히 기분이 상한 걸 떠나 화가 났다. 어쩜, 인간들은 이렇게 한결같을까? 어리고 약한 대상에게는 너무나 무심하고 불친절하다.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자기들 편하자고 혹은 이득이라서 중요한 일을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비겁하고 이기적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최악은 바로 나다.


‘내가 말한다고 되겠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내가 뭐 돼?’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편해. 괜히 불편한 일 만들지 말자.’


주변 사람을 위한 배려인지 겁쟁이로서의 변명인지 모를 말들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위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구역감을 참으며 회의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면에서 시작된 케케묵은 문제는 스스로를 현실에서 동떨어지게 만들었다. 눈 앞에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며 각자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지만, 왠지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관객처럼 팀 내부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야, 막내! 정신 안 차려?”

“네?”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지은 언니가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창 회의 중인데 정신머리를 어디 뒀냐고 질책하는 표정이다.


“죄송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못마땅한 얼굴의 이 PD가 성질을 눌러가며 나를 째려봤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고개만 숙이고 있는데, 다행히 메인 작가 언니가 중재를 해 준다.


“에휴~, PD님. 요즘 우리 막내 고생 많아요. 잘 아시면서. 그리고, 이번에 우리 막내가 해야 할 일이 엄청 막중한 거 아시죠?”


메인 언니의 설득에, 이 PD도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에 막내의 임무가 크지. 진희 씨가 추미영이랑 한 때 같은 동네 주민이었다고? 그럼, 추미영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겠다? 그렇지?”

“아니, 꼭 그렇지도….”

“그럼요, 우리 막내만 믿으세요.”


부인하는 와중에 지은 언니가 갑자기 끼어들어 이 PD에게 아무 문제없다는 듯 말했다. 취재하는 건 나인데 왜 공치사는 지은 언니가 하는 것인지 황당해하는 것도 잠시, 이 PD가 나만 믿겠다며 회의를 종료하고 나가버렸다. 갑자기 큰 일을 떠맡아 버린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언니, 그렇게 확정적으로 말해버리면 어떡해요!”

“야! 너 이 PD가 회의 중에 멍 때리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몰라? 중간에 메인 언니가 잘 싸바싸바해서 다행이지, 안 그럼 너 찍혔어.”

“뭐… 그건….”


할 말이 없었다. 내 인생 내가 꼰 거다. 이제, 추미영의 과거를 추적하기 위해 연준이와의 협업은 필수가 되었다. 땅 꺼지게 한 숨을 쉬는 내게 메인 언니가 짧은 위로와 함께 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언을 건넸다.


“추미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지? 그러면, 이사하면서 정신보건센터에 이관된 자료들이 있을 거야. 보통 타 지역으로 이사하면 직접 전출.전입 절차를 밝아야 하는데, 잊지 않고 센터에 등록했다는 건 추미영이 본인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관리 중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통 이런 경우, 역순으로 추적하면 실마리를 잡기 쉬워. 최근 주소지부터 시작해 봐. 파이팅!”


메인 언니의 응원에 울상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곧바로, 책상으로 가서 지난 번 통화에 실패한 성원 부동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주소지 기준으로 추적한다고 했을 때, 부동산이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부동산이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할 수 없이 연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준이라면, 부동산 사장님의 개인 핸드폰 번호 정도는 확보했을 것이다.


-어, 누나! 팀에서 뭐래요? 허락한데요?


먼저 전화를 건 내 용건을 묻지도 않고 궁금한 것부터 물어본다. 마지못해 그렇다고 대답한 후,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하지만, 녀석이 이미 한 발 늦었다는 듯 안타까운 어조로 말한다.


-누나, 그 분 이제 전화 못 받아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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