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만남
-네가 왜 거기에…
-추미영 씨에 관해 알아보러 왔어요. 저번에 누나랑 같이 일하는 분 만나고 나서 반성 많이 했거든요. 제가 취재를 너무 허술하게 했던 것 같더라고요. 아! 부동산 사장님은 잠시 자리 비우셨어요. 집 보여주러 가셨거든요. 저는 사장님이 시간 나실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고요.
-아… 그래?
불편했다. 왜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걸까? 물론, 목표물이 같은 한 우물을 파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거북스러웠다. 실종된 친구의 동생. 얼굴 맞대며 지난 과거를 추억하기에는 불편하고 애매한 관계다. 서둘러, 이 어색한 통화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전화 해야겠다. 수고해.
-누나, 잠깐만요!
얼른,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 했으나, 연준이의 다급한 말투가 먼저였다. 그냥 끊어 버리기에는 상대방이 무시당했다고 느끼기에 딱 좋은 타이밍. 내키지 않지만, 다시 전화기를 귀에 바짝 가져다 댔다.
-어. 왜?
-누나, 밥 한번 먹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헤어지긴 아쉽잖아요.
-아…
살갑게 매달리는 연준이를 거절하기 위해, 수 십 가지 핑계를 떠 올렸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전화로도 내 망설임이 전해졌는지 연준이가 만남의 당위성을 부여하듯 지금 취재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 있다고 했다.
-뭔데?
-만나면 얘기할게요. 누나, 설마 오랜만에 만난 동생한테 밥 사주기 싫어서 그래요?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부동산 사장님 취재하고 바로 누나 있는 방송국으로 넘어 갈게요. 저 많이 먹는 거 아시죠?
문득, 어릴 적, 연두네 집에서 연준이와 함께 자장면, 탕수육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놀다가 무릎이 까진 연준이를 연두와 함께 양쪽에서 부축하며 데려다 주었다. 그 날, 연두네 아빠에게 대접받은 자장면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은 인생 한 끼로 남아있다. 서울 시내 어디를 가도 그 만큼 맛있는 자장면은 맛볼 수 없었다. 그 당시, 얼굴에 자장소스를 묻히며 먹던 어린 연준이가 지금의 연준이와 오버랩 되며 살짝 긴장이 풀렸다.
-그래, 와. 맛있는 거 사 줄게.
-오, 예~!
연준이가 공짜밥에 환호한다. 아이 같은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통화를 종료하고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앞에 거울을 보니,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뻑뻑한 눈을 가라앉히기 위해 세수를 하는데 감은 눈꺼풀 안쪽으로 어린 연준이의 잔상이 떠올랐다. 뒤이어, 자연스레 따라오는 연두의 얼굴. 16년이나 지났지만,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앞에서, 심지어, TV에서도 볼 수 있는 연두의 얼굴은 매번 상흔을 남겼다.
그 날,
내가 연두와 놀았더라면,
연두를 혼내는 아빠에게 대들었다면,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연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면,
연두는 무사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만약들이 16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더불어, 연두의 실종으로 인해 일어난 연두네 가족의 비극 또한 모두 내 탓 같았다.
연두의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간 것도,
그 안에서 연두를 그리워하다 자살한 것도,
연두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그로 인해 연준이가 고아가 되어버린 것도.
그렇기 때문에, 연준이가 애처롭고 불쌍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에게 주도권은 없다. 세수를 마치고 거울을 보자, 비겁한 여자가 보였다. 그 동안, 도망가고 외면하고 합리화하면서 나 자신을 속여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다. 연준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 잡았다.
“절대 안 돼.”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언제 왔는지, 지은 언니가 얼굴이 가까이 들이대며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절대 안 돼! 너 지금 그만 둔다고 하면, 나 죽을 때까지 너 원망할 거야.”
“뭐래~,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지금 딱! 너 같은 얼굴 한 막내 작가들이 어디 한둘이었는 줄 알아? 아니라고 해놓고는 잠수 타더니 나중에 사직서 던지더라.”
“에휴~! 언니, 전 갈 데도 없어요. 제가 가긴 어딜가요.”
“정말이지?”
“네, 대신에 정말 죽을 만큼 힘드니까, 오늘 오후에 한 두 시간만 나갔다 올게요. 약속 있어요.”
“엥? 웬 일? 네가 약속? 너 친구 없잖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사실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학창 시절 내내, 은따였던 내게 친구는 없다. 나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지은 언니에게 무언가를 숨기기란 불가능하다.
“오후에 임연준 기자 만날 거에요. 사건 관련 이야기할 게 있다고 해서요.”
“그럼, 같이 나갈까?”
“아니요. 개인적인 얘기도 할 겸 겸사겸사 만나는 거에요.”
“그래? 그럼 다녀와.
“네.”
“근데, 진희야.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너 아는 사이라고 우리 쪽 취재 정보 그 기자한테 막 넘기고 그러면 안 된다? 매체가 달라도 보도는 먼저 터트리는 쪽이 더 유리한 거야. 알지?
“언니, 제가 아무리… 그 정도로 물색이 없을라고요.”
그렇게 말하고 나왔건만, 막상 연준이를 마주하니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지난 번 봤을 때도 허름한 행색이었지만 오늘의 연준이는 더 꾀죄죄해 보였다. 그런 몰골로, 며칠은 굶은 듯 자장면을 그릇째 흡입하는 연준이를 보니 없는 모성애도 생겨날 판이다. 아는 사이인데 약간의 사소한 정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다.
“오후 4시인데 아직도 점심을 못 먹은 거야?”
“이 정도면 선방한 거예요. 어떤 날은 그냥 건너 뛰는데요. 뭐.”
“하긴, 너네나 우리나 바쁘면 그렇지. 근데, 넌 자장면 안 질려? 어렸을 때 질리게 먹었을 거 아니야. 난 부모님이 중국집을 해서 그런가? 자장면은 입에도 안 대는데.”
“전혀요. 연두 누나 없어진 이후부터 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 배불리 먹어본 적 없어요. 괜히 죄스럽더라고요. 누나는 어디서 밥 굶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맛있는 거 먹는 거 같아서.”
자작하게 남은 자장 소스에 군만두를 찍어 입안에 넣으며 연준이가 말했다. 마치 날씨 애기 하듯 대수롭지 않은 모습에 듣는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괜한 얘기를 했나 싶어 움츠러드는데, 연준이가 그런 나를 눈치채고 잽싸게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보이며 흔들었다.
“아휴~, 그런 표정 하지 마요. 벌써 오래전 일인데요.”
“오래 전이라… 그래, 오래 전 일이지. 그래도, 아버지 돌아가신 건 최근이잖아. 뉴스 봤어. 교통사고라고? 장례식장에라도 가 봤어야 했는데… 미안해.”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는데요. 그리고, 이런 말 하면 제가 정말 인간 말종 같지만 이제서야 족쇄에서 풀려난 기분이에요. 누나 찾는다고 다 늙으신 아버지가 전국 방방곡곡 고생하며 다니시는 모습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나도 자식인데 어쩌면 그렇게 누나밖에 모르냐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맨날, 누나 찾아 이곳저곳 다니느라 전학도 엄청 다녔고요. 아버지랑은 안 좋은 기억밖에 없어서 오히려 지금은 후련해요. 나 되게 나쁜놈이죠?”
씁쓸하게 웃으며 되묻는 녀석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지난 세월을 견뎌왔을 것이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점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럴까 봐 연준이를 보기 싫었다. 아픈 상처를 헤집어 어두운 심연을 대면하게 만드는 사람. 안 되겠다 싶어 분위기도 전환할 겸 연준이에게 어떻게 기자가 됐는지 물었다.
“원래 기자가 꿈이었어? 어떻게 기자가 될 생각을 한 거야?”
“설마요. 제 꿈은… 흠! 놀리지 마요. 조각가요.”
“조… 조각가? 예술… 뭐 그런 거 하는 사람?”
의외의 대답에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었을 뿐인데 녀석이 발끈하며 말한다.
“거~, 꿈 가지고 뭐라하지 맙시다. 난 누나 꿈 응원했어요. 우리 옛날 동네에 영진슈퍼 기억나죠? 거기에 과자 엄청 쌓인 거 보고 누나가 그랬잖아요. 나중에 커서 슈퍼 주인 될 거라고.”
“맞아, 그랬지. 아직도 그 동네에 영진슈퍼 있으려나?”
“진즉에 없어졌죠. 주인이 몇 번 바뀌었는데, 대형마트 들어서면서 결국은 문 닫더라고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동네 살아?”
옛날 얘기를 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종알거리던 연준이의 얼굴이 일순간 진지하게 변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연준이가 매고 온 백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야?”
“열어 봐요.”
봉투 겉면에는 발신인이 ‘경이보건소 지역사회센터’ 수신인으로 추미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추미영이라면 경이동 성기 절단 사건의 가해자다.
“너 설마! 우편물 절도한 거야?”
“쉿!”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라 식당 내부에 사람은 없었지만 목소리가 워낙 컸기에 연준이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주위를 살폈다.
“작게 말해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게! 누가 들으면 안 될 짓을 왜 해!”
“방법이 없으니까 그랬죠. 부동산 사장님은 물어봐도 딱히 아시는 것도 없고! 가해자는 묵비권 행사만 한다니까 알아낼 방법도 없고! 경찰은 함구령 떨어졌고! 저도 먹고는 살아야 될 거 아니냐고요. 그나마, 우편물 함에 빽빽이 들어찬 거 중에 딱 하나면 가져온 겁니다.”
“가져온 게 아니라 훔쳐 온 거겠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내용물을 보시라고요.”
연준이에게 눈을 흘기며 이미 뜯긴 봉투의 내용물을 꺼냈다. 펼쳐보는 순간, 연준이와 공범이 되는 거지만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미끼가 너무 달콤했다. 결국, 접혀진 종이를 펴고 활자를 읽어 내려갔다.
제목: 정신건강 상담 및 치료 연계 안내
귀하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등록된 정신보건 대상자 관리에 따라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귀하는 2005년 3월 15일부로 본 보건소에 등록된 정신보건 대상자로서, 정기적인 상담 및 치료 연계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본 보건소에서는 귀하의 증상 경과 확인 및 지속적인 치료 유지를 위해 다음 일시에 상담을 권유드리고자 합니다.
상담 일시: 2006년 7월 10일 (화) 오전 10시
장소: 변주시 보건소 3층 정신보건상담실
담당자: 김민정 사회복지사 (내선 203)
상담 시 현재 복용 중인 약물이나 병원 진료기록이 있다면 지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상담은 귀하의 건강한 일상 복귀와 지역사회 내 안전한 생활을 위한 중요한 절차이오니, 반드시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불참 시 추후 일정에 따라 가정방문 또는 병원 연계가 진행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항상 귀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2006년 6월 30일
변주시 보건소장 (직인생략)
“추미영… 정신 질환이 있어?”
“맞아요. 그래서 제가 추미영 보호자인 척, 상담 예정일에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고 전화를 해봤거든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이번이 마지막이고 다음번에는 진짜 가정 방문을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간, 상담이나 치료 프로그램에 많이 빠진 걸로 보여요. 짐작해 보건대, 상태가 많이 악화됐을 거고, 이것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즉,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행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앓고 있는 질병이 뭔데?”
“보호자라고 사칭했는데 그것까지 어떻게 물어봐요? 그건 나중에 따로 알아 봐야죠.”
뜻밖의 수확이다. 추미영에 대한 취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고민중이었는데 연준이가 좋은 길잡이를 제시해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문이었다. 스스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힘들게 알아낸 정보를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나와 공유할 필요는 없다. 지난 번에는 나와 지은 언니가 장 팀장에게 얻은 새로운 정보가 있을까 싶어 접근 했겠지만, 정작, 연준이는 빈손으로 우리와 헤어졌다. 바보가 아닌 이상, 또 다시 나를 찾아올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이 바닥의 냉정한 생리를 잘 모른다면, 여기서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연준아. 미안한데…. 네가 아무리 이래도, 너랑 취재 정보 공유할 수 없어. 난 더구나 막내작가라 아무 힘도 없고. 고맙지만, 이제 정보 넘겨주지 말고 너 혼자 취재해.”
“하하, 누나, 제가 아무리 수습이라지만 그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지 않아요. 제가 누나를 이유없이 찾아 왔겠어요?”
순간, 내가 알던 연준이가 아닌 낯선 얼굴이 드러났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