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추적
하필, 운도 더럽게 없다.
-번호는 알려 드릴 수 있는데, 부동산 사장님 지금 전화 못 받으실걸요? 어제부터 남해로 일주일간 낚시하러 간다고 하시던데? 근데, 거기가 핸드폰이 잘 안 터지는 곳이래요.
요즘 세상에 핸드폰이 안 터지는 곳은 없다. 연준이의 말을 무시하고 스토킹에 가깝도록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진짜 받지 않았다.
결국,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는 하지 못했다. 될 때까지 시도해 보겠다는 나의 끈기가 어떤 때는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독이 되는 경우다. 다른 일을 하면서 수시로 통화를 시도해 봤지만 종국에는 통화 실패로 이어졌고, 시간과 노력만 허비했다는 자괴감에 짜증이 솟구쳤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문을 두드렸다. 변주시 경이동 지구대. 경이 초등학교 주변을 배회하던 추미영은 민지 맘을 비롯해 다른 엄마들의 신고를 여러 차례 받은 이력이 있다. 문득, 얼마 전, 장난 전화 비슷하게 받았던 제보전화가 떠올랐다.
‘그 때도 이 동네였던 것 같은데….’
수첩을 뒤져보니, 역시나, 경기도 변주시 경이동. 촉이 왔다. 당시에도 정신질환이 있는 중년 여성으로 인해 지구대 경찰들이 곤혹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일, 그 때, 내가 받은 제보 전화의 주인공이 추미영이라면?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쫀득해져 혀로 입술을 축였다. 수화기를 들고 상대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경기변주 경찰서 경이 지구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미제, 아무도 모른다. 작가 허진희라고 합니다. 이번에 경이동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관련 여쭤 볼게 있는데 통화 가능하실까요?
-수사 중인 사건으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가 공문 보내드리…
“뚝!”
“뭐야? 사람 말도 안 들어보고!”
갑자기 끊긴 전화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계속 통화 중인지, 아니면 아예 전화선을 뽑아 버렸는지 받지 않았다.
“민중의 지팡이가 뭐 이래? 두고 봐. 가만 안 둬!”
이후, 시간 차를 두고 몇 번의 전화를 더 걸어봤지만 무조건 안 된다는 경찰의 답변만 돌아올 뿐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다음 타겟으로 넘어갔다. 추미영의 정신 건강을 관리해 온 변주시 보건소다. 경이동에 있는 추미영의 집 주소로 우편 배달된 보건소 안내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김민정 사회 복지사와 통화를 했지만, 환자의 의료 정보는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공문을 보내 준다고 했지만, 이빨도 안 들어갔다. 다른 공공 기관들은 보도 목적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슬쩍 정보를 흘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민정 사회 복지사는 너무 FM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원 부동산 사장님과의 통화 실패와 지구대 경찰의 무조건적인 인터뷰 거부에 짜증이 만땅이던 상태에서 보건소 직원까지 딱딱하게 굴자 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이런 내 상태를 눈치 챈, 지은 언니가 수화기를 얼른 낚아챘다. 이후, 나긋나긋하고 애교 있는 목소리로 보건소 직원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나랏일 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세요. 그럼요. 알죠. 얼마나 힘드신지. 네네. 그럼요. 소장님께 허락 받아야죠. 네. 어머나, 그래요? 어머! 어머!
마치 10년 만에 절친을 만난 것처럼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는 지은 언니의 모습에 감탄을 넘어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언니 같은 사람이 작가를 해야지, 나 같은 인간은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스스로의 무능력에 치를 떨고 있는데 지은 언니가 나를 불렀다.
“야, 떡볶이 먹으로 가자.”
그 한 마디에 곧장 엉덩이를 떼고 언니를 따라갔다. 방송국 앞에는 나와 지은 언니의 단골 떡볶이 포장마차가 있다. 새빨간 떡볶이는 미치도록 맵지만, 그만큼 스트레스 해소에 직방이었다. 당장이라도 작가를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 맛에 여지껏 방송국을 그만두지 못했다. 숨도 안 쉬고 떡볶이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얼얼하도록 매운 맛에 머리와 마음속의 잡념들이 한꺼번에 달아났다. 2차로 달달한 아이스 모카 라떼까지 원샷하고 나자 가출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런 다음, 이 모든 원흉인 지은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나 이 바닥에 왜 불렀어요? 여러 모로 작가라는 직업에 안 어울리는데?”
“누군 어울리냐?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거지. 그나저나, 너 아무리 그래도, 협조 요청 기관 직원이랑 싸우면 어쩌자는 거냐? 잘 구슬려야지.”
“난 그게 안 된다고요. 어찌나 깐깐하던지.”
“보건소랑 지구대 건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너는 이전 주소지로 가서 추미영에 대해 알아봐. 네가 살았던 동네니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 쉽겠지.”
“언니도 그렇게 말하네요.”
“왜? 넌 안 그래?”
“아니에요. 그럼, 전 지금 바로 현장으로 가 볼게요.”
탄수화물과 당분으로 업 되었던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 등 뒤에서 지은 언니가 외쳤다.
“네 엉덩이가 무거워서!”
쌩뚱맞은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지은 언니가 설명을 덧붙였다.
“넌 재미있는 애기 하나 발견하면 엉덩이가 무거워지잖아. 만화방에서 있었던 일 기억 않나? 재미있는 소설책이나 만화책 발견하면 배고픈 것도, 목 마른 것도 잊고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이고 책만 읽었잖아. 그래서야. 작가일 소개해 준거. 이 일도 만화방에서 책 읽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일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발 벗고 찾아 가면서 읽는 거야. 그래서, 너라면 잘 해낼 거라고 믿었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발 벗고 찾아 가며 읽는다.’ 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지, 우리 일이 그런 거지. 저 언니가 웬일로 정상처럼 보였다. 물론, 이런 감동의 순간조차 언니는 산통깨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사실, 네 엉덩이가 무거워서 일단 들어오면 잘 안 나갈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어. 너 한번 자리잡으면 귀찮아서 움직이는 거 싫어하잖아.”
이래서 저 언니를 싫어한다. 나를 너무 많이 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핸드폰을 꺼냈다. 주소록에 저장된 수많은 번호 중 연준이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얼마 안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뛰어나온다.
-누나! 어디에요? 전 이미 도착했어요.
-어딜 도착했다는 거야?
-영진 빌딩이요.
영진 빌딩. 내 유년 시절의 추억이 묻힌 곳. 그곳에서 연두.연준이 남매와 만났고 친구가 되었다. 과거의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했던 곳이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세 사람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시는 가기 싫었던 장소, 영진 빌딩.
불편한 장소를 떠올리면 작동하는 심리적인 방어 기제였을까? 한순간 짜증이 치솟아 연준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야! 넌 나랑 약속도 안하고 왜 이렇게 네 맘대로야? 공동 취재 아니야? 그럼 미리 서로 협의를 해야 될 거 아니야!
-아… 누나, 미안해요. 그냥, 누나랑 같이 옛날 동네 취재한다니까 마음이 들떴나봐요. 다음에는 누나랑 미리 얘기할게요. 화 풀어요. 네에~~~?
유하게 나오는 연준이에게 그만 전의가 꺾여버렸다. 오히려, 화 낸 사람만 무안하게 만드는 녀석의 화법에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결국,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냥, 오늘이 재수가 없는 날인 것인지, 내가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유 없는 불안과 짜증으로 심신이 괴로웠다. 그럼에도, 방송일자는 다가오고 있으므로 작가인 나는 일을 해야 했다.
버스에 앉아 가는 도중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초반에는 그런 걸 왜 하냐며 경상도 특유의 매서운 말투로 ‘때려 치라!’ 라고 말했던 엄마도 기자가 연준이라고 하니 급작스럽게 태도를 바꿨다. 엄마 입장에서는 인터뷰 보다 연준이와 재회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또한, 추미영의 주소지를 대며 그녀를 알만한 동네 토박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잠깐의 뜸을 들인 엄마가 적절한 인물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엄마의 협조적인 태도가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은 좋은 거였다. 오전 내내, 사나운 나의 일진이 엄마를 통하니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역시, 혈연.지연은 무시할 수 없는 거였다. 그 동네에 살아봤으니, 취재가 수월할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버스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했더니 어느 새 목적지에 다 달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바로 영진 빌딩이 보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영진빌딩과 마주한 상가주택이 있다. 그 상가 주택 1층은 우리 가족이 예전에 중국 음식점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호프집으로 변한 옛날집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16년이나 흘렀지만, 이 동네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발이 한창인 서울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이 동네만 시간이 멈춘 듯, 과거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상가 내부의 업종만 바뀌었을 뿐, 큰 틀에서 보면 바뀐 것이 거의 없었다.
정류장에서 걸음을 옮겨 영진 빌딩 쪽을 다가갔다. 과거에 영진 슈퍼가 있었던 자리에는 숯불갈비 식당이 들어섰다. 한가한 시간 때인지, 전면 유리창을 통해 파리만 잡고 있는 주인장이 보였다. 왼쪽으로 모퉁이를 끼고 도니, 그 자리에는 오락실 대신 자동차 코팅과 썬팅을 하는 업체가 보였다. 차량 출입을 위함인지, 원래, 빌딩 앞에 있었던 두 칸짜리 낮은 계단은 경사로로 대체된 상태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영진 빌딩 지하 주차장 램프 입구가 보였다. 한 때, 반질반질했던 콘크리트 경계턱의 모서리는 깨지고 갈라져 볼품없어 보였다.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는 중에 건물과 램프 주차장 사이의 공터 안쪽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연준이었다. 지하로 이어지는 램프 안쪽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한강다리에 서서 강물에 뛰어내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안 죽어.”
“어? 누나 왔어요? 근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안 죽는다니?”
“거기서 뛰어내려도 안 죽는다고. 고작, 발이나 삐겠지.”
“하하, 난 또 뭐라고… 그냥 한번 봐 봤어요. 어릴 때는 그렇게 무서웠는데 지금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네요? 천 길 낭떠러지 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약간 높은 정도? 그 때는 왜 그랬죠?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떨어져서 다리나 부러지고…”
“원래 애들은 다 그런 거야. 뭣 모르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그래서, 다치기도 하고.”
“맞는 말인데… 대가가 너무 컸어요. 그날 제가 여기 떨어져서 다리만 안 부러졌어도 우리 누나는 무사했을 거예요. 엄마가 저 데리고 병원 가는 바람에 누나 혼자…”
“그만.”
내가 정색하자, 연준이가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닫았다. 본인 스스로도 머쓱한 지,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에 가슴 근처가 욱씬거렸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지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자책은 끝이 없어. 적당히 해.”
“아! 그래도, 다리 부러져서 좋은 점은 있어요. 저, 그 때 다리 부러지고 후속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았거든요? 덕분에 군대 면제받았잖아요. 자세히 보면, 저 양쪽 다리 길이가 달라요. 뼈가 잘 안 붙어서 성장판에 문제가 생겼다나? 이것 봐요. 왼쪽 어깨가 약간 아래로 내려왔죠?”
“긍정적이네.”
“그렇죠, 저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하하.”
자신의 아픔을 재료삼아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내가 꼬인 걸까? 나쁜 년이라 그럴까? 연준이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의 슬픔을 나누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굳은 얼굴을 하자, 녀석이 눈치를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준이가 자켓 안에서 수첩을 꺼내며 취재 계획을 설명했다.
“일단, 추미영이 예전에 살던 집부터 가요. 사실, 이전에 몇 번 가 보기는 했는데 계속 부재 중이었어요.”
“그래.”
엄마에게 추미영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녀가 동네 어디에 살았는지 정확히 파악해 두고 가야 한다. ‘몇 번째 골목, 파란 지붕, 슈퍼 옆’ 이렇게 특정 지점을 설명해 줘야, 그나마, 엄마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로 퉁 쳐 버리거나 골치 아프니 그만하라고 타박하기 일수다.
추미영의 예전 주소지로 가는 골목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 갈 만큼의 폭이었다. 요즘처럼, 가구당 차 한 대가 필수인 세상에 구도심의 골목길은 불법 주차로 인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골목길 입구부터 몸을 옆으로 돌려 들어가거나, 두 사람이 일렬로 걸어야 할 정도였다.
‘원래 여기가 이랬었나?’
흐릿하지만, 어릴 적, 종종 이 골목길을 지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골목길 전체가 한옥집만으로 나란히 붙어있던 고즈넉한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빌라와 상가 건물이 질서 없이 들어서 한옥과 이웃하는 괴상한 모양새다. 불현듯, 강제로 생체 실험을 당해 혼종이 되어버린 애완견을 재회한 것 같았다. 추억의 장소가 훼손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여기에요.”
연준이가 가리킨 집 앞에 도착했다. 한 쪽에는 다세대 빌라, 다른 한 쪽에는 공장 그리고 맞은편에는 상가 건물을 끼고 있는 한옥집이 추미영의 옛 주소지였다. 오래되어 보이긴 했지만, 중간중간 수리.보수를 했는지 외관은 깔끔했다. 연준이가 초인종을 눌러 주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혹시, 이웃 사람들한테 이 집 주인에 대해서 물어본 적 있어?”
“네. 그런데, 한옥집 주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보시다시피, 왼편과 맞은편은 공장이랑 상가 건물이라 상주하는 사람들이 없고, 다세대 빌라는 늦은 저녁에 귀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한옥집에 누가 사는 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요. 상가건물도 보세요. 일반적인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업종도 아니에요.”
맞은편, 건물 창가에는 흰색 바탕에 노골적인 원색으로 ‘왁끼 전문, 샤링작업 전문’ 같은 글씨가 붙어있었다. 주로 행사복 등을 제작·대여하는 곳으로 보였다. 또한, 왼쪽 공장 건물은 철판이나 강판을 유통.가공하는 업체였다. 수시로 소음이 들리는데 어떻게 이런 주택가에 공장이 들어설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연준이의 말이 맞다면, 이 곳에서 더 이상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요즘처럼,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일은 흔하다. 무작정, 부딪히기보다 정보를 가지고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일단, 추미영의 옛 주소지에 직접 와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와! 잘 먹겠습니다.”
다음 장소는 우리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 ‘만리장성’ 이다. 추미영의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식당에 도착하니, 딱 저녁 식사 때였다. 엄마와의 인터뷰가 방문 목적이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연준이에게 밥 한끼라도 먹여야 한다며 부산을 떨더니, 주방에서 요리를 엄청 내왔다.
“정말 맛있네요. 쩝쩝.”
“이것도 무라.”
중국집 딸로 산 지 근 20년 넘도록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산해진미가 테이블을 채웠다.
“이번에 새로 들인 주방장이 손맛이 좋다.”
“아빠는 어디 가고?”
“이제, 니 아빠 주방에 안 드갈라 칸다. 시간만 나면, 술 처먹고 화투 치러 돌아다니고… 에휴~, 어디 하루 이틀이가~!
“그래~, 하루 이틀 아니지.”
“진희, 니도 얼른 무라.”
“그래~, 줄 때 먹어야지.”
평소 내가 받는 밥상과 클라스가 다른 지금의 밥상에 빈정이 상했다. 불퉁한 기분에 꾸역꾸역 한 끼를 때우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표면상, 기자인 연준이만 취재를 하는 것으로 협의했기에, 난 그저 멀뚱히 앉아 있는 척만 했다. 연준이는 현재 가지고 있는 추미영에 관한 티끌만한 정보를 긁어모아 나열하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당시에 30대 중반이었고 정신 질환이 있어요. 영진 빌딩 뒤쪽에 한옥 골목에서 살았는데, 혹시, 아실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