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상흔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 그날 밤, 비밀의 화원에서 가가멜이 나에게 했던 짓거리는 9살 소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번, 연두의 목소리에 도움을 받아 자력으로 도망쳤을 때와는 달랐다. 결국은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지배했으므로 더욱 절망적이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실제 일어난 일은 없다고. 호수 위 달 그림자 쫓는 느낌이라고.' 하지만, 그 날,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돼, 분명,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결국, 억압된 공포와 분노는 몸으로 나타났고, 한밤중에 열경기를 일으킨 나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링거를 달고 해열제를 맞았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시시 때때로 경기를 일으킨 나 때문에 부모님은 여러 번 지옥을 경험했다. 결국,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부모님은 가게 문을 닫고 나를 간호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입원 후에도, 밤만 되면 일어나는 발작에 입에 게거품을 물기를 여러 번,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가가멜의 역겨운 면상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입원했다 퇴원하니 우리 집에 남은 것은 엄청난 빚뿐이었다. 돈이 모일 만하면 잔병치레를 해서 병원에 돈을 갖다 바치게 만들었던 나는 이번에도 집 안을 거덜냈다. 아빠는 이곳저곳에 돈을 빌리러 다니다 못해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사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것 빼고 못할 것이 없는 아빠였다.
퇴원 후, 사채 빚 말고도 우리 집에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딱, 한 달. 나에게는 그저 병원에 머물렀던 시간이었지만 부모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가게 문을 닫은 사이, 동네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다. 점심 때마다 닳고 닳았던 만리장성 문턱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고, 배달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혹시나, 전화기가 고장인가 싶어 들었나 놓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멀쩡한 신호음만 수화기로부터 흘러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가게 앞을 어슬렁거리던 아빠는, 늦은 오후, 미장원에서 몸단장을 마치고 온 혜영이 엄마와 마주쳤다. 가게 출입구 근처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나는 플라스틱 커튼 발 아래로 보이는 아빠의 슬리퍼와 아줌마의 하이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요새 동네가 왜 이렇게 조용해요? 경기가 안 좋아 그런가? 손님도 안 보이고…”
“요즘, 장사 잘 되는 집이 어디 있나요? 다들 그냥저냥 근근이 먹고 사는 거죠. 뭐~! 물론, 안 그런 집도 있긴 하지만…”
“예? 그게 무슨…?”
“응? 뭐요? 내가 뭐라 그랬나?”
“방금, 안 그런 집도 있다고…”
“어머, 제가 그랬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집도 있고 저런 집도 있다’ 뭐 그런 말이죠. 호호.”
“아, 예.”
“그나저나, 진희는 좀 괜찮아요? 저도 그렇고 우리 혜영이도 그렇고 걱정 많이 했어요.”
“예, 걱정해주신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혜영이 엄마는 항상 저런 식이다. 이전에, 혜영이네 가게에서 식사 중 했던 대화도 그렇고 지금 아빠와 아줌마가 나누는 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 중, 상대방에게 냄새만 엄청 풍기고 그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정작 밝히지 않는다. 항상 찜찜한 뒤끝을 남기는 혜영이 엄마의 화법은 대개의 경우 그 끝이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둘의 대화에 정체모를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다.
대화를 엿듣던 나의 얼굴이 파리해지자, 엄마가 얼른 나를 안방으로 데려갔다. 퇴원을 했어도 아직은 환자였다. 혹시라도, 내가 더 경기를 할까 싶어 엄마는 이마에 손을 여러 차례 대보며 불안을 감추지 않았다. 가루약을 입 안에 한 봉지 털어 넣자, 머리가 몽롱해졌다.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으며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반쯤 각성했지만 여전히 몽롱하고 나른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문 너머, 홀에서 들리는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 엄마와 정육점 아줌마였다. 그 날은 웬일로 고향말투가 아닌 서울말을 썼다. 아마도, 아빠가 옆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당장이라도 싸울 듯 괄괄한 고향말 대신 부드러운 서울말을 쓰라고 아빠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정육점 아줌마의 말투도 어느새 서울말씨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요? 사람들이 다들 청운각에서 시켜먹는다고요?”
“그렇다니까. 인간들이 뭐 좋다고 거기만 몰려가는지, 오죽하면, 내일, 가게 확장공사까지 한다네? 누가 그러는데,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더라고.”
“언니도 먹어봤어요?”
“아니…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라, 손님이 와가지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거야. 이 근처에 중국집이 동생네랑 거기 밖에 더 있어? 한달 동안 문 닫았는데 갈 데가 있어야지.”
“진짜지?”
“어휴, 왜 이렇게 사람 말을 못 믿어? 우리가 남이야?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걱정되서 말해주는 거야. 요 앞, 영진빌딩 직원들 있지? 거기도 청운각에서 시켜먹는데. 하도 배달전화가 많으니까, 며칠 전에는 철가방 하나를 더 뽑았더라고.”
“퍽! 쪼르르. 탁!”
정육점 아줌마의 말을 끝으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소주병 뚜껑을 따고 잔에 술을 따른 다음 테이블에 내려 놓는 일련의 소리. 마지막 소리가 큰 것을 보니 화가 많이 난 거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손님들이 만리장성 말고 청운각으로 가는 것도 내 탓, 부모님이 돈을 못 버는 것도 내 탓. 우리 집 분위기가 안 좋은 것도 내 탓. 다 내 탓 같았다.
죄스러운 마음에 조용히 눈물을 삼키자, 뜨거운 것이 울컥하며 목울대를 건드렸다. 나를 둘러싼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 마음이 짓눌리자,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병원에 가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부모님은 고개를 조아리며 이곳저곳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할 것이다. 나의 절박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난 또 다시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날, 아빠의 인내심은 임계점을 넘은 것 같았다.
엄마와 내가 응급실에서 밤을 보내는 사이, 아빠는 청운각으로 달려가 그 집 간판을 때려 부셨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쇠막대기를 집어 들고, 그 동안 쌓여왔던 울분과 분노를 분출하듯, 연두네 집 간판을 무자비하게 박살냈다. 그런 아빠의 일탈행위를 알게 된 건, 응급실 침대에 누워 반쯤 정신을 차렸을 때였다. 커튼 밖에서 싸울 듯 괄괄했지만 한껏 톤을 낮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화상아! 니, 누가 보기라도 하믄 어쩔라 그라노!
“아무도 못봤다!”
막상 저질렀지만 아빠도 겁이 났던 거다. 겉으로는, 엄마 위에 군림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아빠는 엄마에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자백하고 뒷일과 걱정을 모두 떠넘겼다. 애가 셋이나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아빠는 객기로 가득한 애 어른이었다.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니 앞으로, 그 입 잘 다물어라. 니는 어제 집에서 조용히 술 처먹고 자고 있었던 기다. 알겠나!”
“알았다!”
잔소리하는 엄마와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이 나누는 것 같은 부모님의 대화를 듣자, 절로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간직하지 말아야 할 비밀 하나를 더 떠안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거운 마음은 우울한 기분으로 이어졌고, 난 우울한 아이가 되었다.
퇴원 후,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학교에 갔지만,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멍하니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고, 어느 순간은 갑자기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에 화장실 칸에 들어가 입을 막고 꺼억꺼억 울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혜영이가 아무리 옆에서 까불거리며 분위기를 북돋아도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연두를 보고 싶었지만, 일부러 피했다. 우리 아빠가 너희 가게 간판을 부셔버렸다고 금방이라도 말해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집에 오면, 손님이 없어 싸늘한 홀에 앉아 하루종일 TV를 보았다. 더부살이를 할 때나, 아닐 때나, TV는 가장 고맙고 소중한 친구였다. 날 괴롭히지도 않고, 미안하게 만들지도 않는 무해한 친구.
침잠하는 딸을 보는 부모님의 속은 타 들어갔다. 방구석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TV만 보는 어린 딸을 엄마, 아빠는 못 참아 냈다. 장난감을 사 줄 테니 밖으로 나가자며 내 손목을 잡아 끌었지만, 그 때마다 발작을 하며 괴성을 질러 댔다. 소리를 질러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장롱을 열어 이불과 옷가지를 끄집어 내고 온 집안의 물건을 부수고 던졌다.
나 또한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밖에 나가면 한없이 얌전한 아이였지만, 집에서 누군가 내 발작 스위치를 누르면 상대가 누구든 죽일듯이 악다구니를 부렸다. 나도 다른 식구들도 모두 지쳐갔다.
“이 자리가 터가 안 좋은 기라.”
“터? 그래? 터가 안 좋아서 그렇다. 그래서 자꾸 우환이 생기는 기지.”
나와 동생을 재워놓고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부모님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덧 12월. 내년이면 올려줘야 하는 월세에, 사채 빚까지 포함해 그 외 다른 모든 걱정들이 존재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듣지 않으려 해도 예민해진 신경은 감각을 곤두세웠고, 부모님의 걱정거리들이 내 안에 들어와 차곡차곡 쌓여 가슴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신세한탄 겸 넋두리를 듣고 잔 날이면, 검은 개 한 마리가 꿈에 나왔다. 처음엔 작고 귀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집이 커졌다. 물거나 사납게 짖지는 않았지만, 깊고 짙은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왠지 모를 공포감이 엄습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 개가 나보다 커지는 날이 오면, 잡아 먹히고 말 것 같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검은 개로부터.
언젠가, 연두가 오락실 괴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듯, 이번에도 검은 개로부터 날 지켜줄 수 있을지 몰랐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연두네 집에 그렇게 나쁜 짓을 저질러놓고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은 염치없지만,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아직까지, 아빠가 청운각의 간판을 부셨다는 증거도 그 장면을 본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졌지만, 어쩌면 진실이 영원히 묻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말하기 힘든 진실은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묻어두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내가 부모님의 장사를 위해 가가멜과의 일을 밝히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청운각으로 가서 연두를 만났다. 오랜만에 봐서 어색했지만, 연두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이내 안도로 바뀌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올려다본 청운각의 간판은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 보였고, 입구 앞에는 대기 줄이 빼곡했다.
“여기 너무 사람 많지? 우리 영진 빌딩 가서 놀자.”
“…”
영진 빌딩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끔찍했던 밤이 떠올랐다.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입을 꾹 다물자, 연두가 내 안색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는 듯 다시 말했다.
“음… 영진 빌딩 지겨우니까 오늘은 다른 곳으로 탐험하러 갈까? 저 아래, 한 번도 안 가본 한옥 골목으로. 그 골목에서 미로 찾기 하는 거야. 어때?”
“좋아.”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우리는 신대륙을 찾아 탐험을 떠나는 모험가가 되었다. 무너져 내릴 듯 우중충한 잿빛 하늘이었지만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두와 함께 있으면 그 순간은 봄날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자동차 소음과 미싱 소리, 철근을 자르는 굉음이 들리는 동네를 뒤로 한 채, 한옥 골목 안쪽 깊숙히 들어갔다.
반들반들한 갈색 나무기둥이 양쪽으로 쭉 늘어선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빨강머리 앤’에서 앤과 다이애나가 우정의 맹세를 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와 연두는 특별한 의식을 치르듯 한 걸음, 한 걸음 골목 안쪽 길을 걸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우리집 주변에 늘 보이는 쓰레기도, 언제 치일 지 모를 정도로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었다. 말끔하게 잘 닦인 보도 양 옆으로 늘어선 한옥집은 정갈하고 아늑했다. 한 집, 한 집을 지날 때마다 반듯하게 걸린 명패를 보니, 제대로 된 집 같았다.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부모님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을 연두가 대신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옆을 보니, 단발머리 연두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듯 ‘픽’하고 웃고 말았다. 그 피식거림을 시작으로 한 동안 나를 동여매던 긴장이 스르르 풀어졌다.
“나도.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
“그래? 그럼, 너는 여기 이 집. 난 여기 이 집. 우리 매일 아침에 같이 학교 갔다가 같이 집에 오면 되겠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괴물이 집 앞에 없고, 매일 연두와 얼굴 맞대며 살 수 있는 집. 그런 집에서 산다면 아플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연두와 발 맞추어 걷는 잠깐의 시간 동안 상상속의 기쁨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 덧, 다다른 골목의 막바지. 골목 끝에 위치한 한옥집에서 대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지 궁금했다. 분명, 좋은 곳에 살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들일 것 같았다.
“끼이이익~.”
한 번 더 앓는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다. 뒤이어, 누군가 조심스레 집 밖으로 나왔다. 몰래 도망치듯 살금살금 움직이는 모습이 도둑같기도 했다. 실제로, 도둑이면 어떡하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연두와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여차하면 도망갈 마음의 준비까지 했다. 대문을 빠져나온 사람이 몸을 돌리며 우리 두 사람과 얼굴이 마주쳤다.
“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