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23화-가가멜

by 해금이


“엄마~! 아빠~!”


절박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불렀지만, 나의 외침은 어른들의 화기애애한 대화속에 곧장 묻혀버렸다.


“어르신, 여기 인삼 정과 좀 들어보세요. 저희 형님이 출장 갔다 사 온 건데 몸에 그렇게 좋다 하더라고요.”

“아이고, 이 귀한 걸…”

“그러게요. 이런 건 혼자 드시지 뭘 매번 나눠주고 그래요. 지난 번에도 미제 과자 맛보라고 주시더니.”

“이런 게 이웃 간의 정이죠. 혼자 먹으면 맛이 있나요? 하하.”


건물주 할아버지, 혜영이 엄마, 정육점 아줌마, 부모님 그리고 가가멜까지… 모두 모여 하하, 호호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분명, 가가멜은 한 짓이 있어 어딘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괴물은 어른들 틈에 있었지만 시선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진희야, 자전거 타다가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어디 있나 했는데 친구한테 갔었구나~. 이리 와서 너도 한번 먹어봐라.”


걱정했다는 듯 가볍게 질책까지 더하며 음식을 내미는 가가멜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거기에 더해, 비릿하게 웃는 모습은 온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이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그의 실체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반들반들한 눈동자 속에 감춰진 음흉하고 사악한 속내, 사냥감을 찾기 위해 킁킁 거리는 매부리코, 언제든 먹잇감을 탐하기 위해 입 안에 감춰둔 혀. 가가멜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런 내 모습에, 가가멜은 한쪽 입꼬리를 보일 듯 말 듯 올리고는 태연하게 부모님을 보며 말했다.


“아! 제가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네요, 저희 형님이 회사 직원들하고 단체 회식을 했으면 하시던데, 이번 주 금요일 만리장성 단체 손님 예약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마침, 그날, 예약이 취소된 게 있어서요. 하하.”


거짓말.


취소는커녕, 예약 문의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에 온 이후, 아빠는 가족들과 있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고향 말투를 감추기 위해 어색한 서울말을 썼다. 거짓을 섞은 아빠의 말투에는 드러날 듯 말 듯 비굴함이 섞여 있었다.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 앞에서 비굴하게 웃고 있는 아빠를 보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빠와 대화를 하는 중간중간 가가멜은 사람 좋게 웃으며 나를 힐긋힐긋 보았다. 그 시선은 흡사 ‘이래도 말할 거야?’ 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다가가지도 못하는 나를 확인한 가가멜은 쐐기를 박듯 말을 덧붙였다.


“회사 바로 앞인데, 앞으로, 형님 회사 회식은 만리장성에서 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려볼까요? 이웃사촌 좋다는 게 뭡니까~!”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하하. 언제 점심 때 저희 집으로 오세요. 식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너무 없이 자라면 아이는 눈치가 빤해진다. 그 순간만큼 내가 눈치 없는 아이이길 바란 적이 있었을까? 월세를 올려달라는 건물주, 장사가 되지 않아 없는 살림에 입간판까지 마련한 아빠, 앞으로 손님을 보내줄 테니 입 닥치라는 가가멜의 암묵적 협박. 내가 나설 자리는 없었고 나설 분위기도 아니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나란 존재는 철저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결국, 부모와 떨어져 있어도, 붙어 있어도 나는 보호받을 수 없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결코 부모님에게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았고, 어떤 어른도 믿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보호해 줄 수도, 기댈 수도 없는 존재다. 믿을 것은 오로지 나 자신과 연두뿐이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오락실에 가지 않았다. 종종, 오락실 출입구 앞에서 나를 뚫어지게 보는 가가멜과 마주쳤지만 최대한 무시하며 지나갔다. 금방이라도 그 괴물 같은 인간이 내 손목을 잡고 으슥한 골목길로 끌고 갈 것 같아 오금이 저렸지만 죽을 힘을 다해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가가멜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만리장성과 오락실이 마주 보고 있었기에 집에 틀어박혀 방구석 귀신이 되지 않는 한, 하루에 한 번 이상 가가멜과 마주쳐야 했다. 그럴 때 마다 가가멜은 음흉하게 웃으며 꼭 한 마디씩 했다.


“진희야, 요즘은 왜 오락실 안 오니?”

“진희야, 아저씨가 자전거 태워 줄까?”


이전에는 사근사근하고 점잖다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이제는 역겹고 불쾌했다. 듣기만해도 뒷목으로 송충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혼자 있을 때, 일부러 더 그러는 것 같아, 하교할 때는 꼭 연두에게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일부러 우리 집에 들렸다 연두의 집으로 가는 길은 한참을 돌아야 했지만 연두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날 저녁,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 법도 했지만 연두는 묻지 않고 그저 옆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그런 친구였다. 연두는.


그럼에도, 연두가 항상 내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모두 각자의 생활이 있었고 연두도 그랬다. 그래서, 가게가 손님으로 만석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나가야 되면, 꼭 누군가와 같이 있으려 했다. 그 대상이 혜영이든, 돌봐야 하는 동생이든 심지어 나를 때렸던 코딱지라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혼자 있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내 주변에 사람이 있는 지, 없는 지 확인하며 불안하게 집 주변에서 놀던 시기가 있었다. 그 모든 행동들은 순전히 가가멜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나의 경계심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무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몇 달간 이어졌고 여름이 지나 쌀쌀한 가을이 왔다.


더 이상 가가멜의 레이더 안에 내가 속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쯤, 사건은 벌어졌다. 그 날은 연두와 함께 비밀의 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연두는 최근에 아빠가 사 주셨다는 주방놀이 세트 장난감을 가지고 왔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접시와 다양한 주방 도구들이 들어있는 장난감들은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하고 예뻤다. 그 동안, 이가 빠진 사기 그릇으로 하던 소박한 놀이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그 사건이 있기 전이었다면, 연두가 가지고 온 장난감을 보며 혜영이에게 느꼈을 법한 시기, 질투를 했을 것이다. 연두네 아빠가 손님을 뺐어 가서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연두에게 사준 장난감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집어 던졌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연두와 한참을 알콩달콩 놀았다. 그러다, 어디선가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어엉엉엉.”


누구보다 빨리 고개를 쳐든 연두가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나 또한 연두를 따라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주차장 입구 공터에 연준이가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엎어진 모양인데 무릎이 많이 쓸린 듯 새빨간 피가 송글송글 베어 나오고 있었다. 잠시 눈살을 찌풀인 연두가 연준이를 부축했다. 나 또한 연두를 도와 연준이를 데라고 청운각으로 향했다.


동생이지만 과체중인 연준이를 부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겨우, 연두네 집에 데려다 주니, 가을이라 쌀쌀한데도 등으로 한줄기 땀이 주르륵 흘렀다. 청운각의 문을 열고 우리 셋이 들어가자, 연두 아버지가 우리를 맞았다.


“아이고, 또 다쳤어? 이리 와.”


분명, 엄청 많이 혼날 거라 생각했는데 연두 아버지의 말투는 의외로 침착하고 다정했다. 옅은 미소까지 띄운 얼굴에는 말썽을 일으켜도 아들이 한없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익숙한 듯 약상자를 가져와 연준이의 무릎을 능숙하게 치료해주는 모습이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


만일, 내가 연준이었다면 혹은 연두였더라도 무조건 부모님께 혼났을 것이다. 전자라면 왜 얌전히 놀지 않느냐고 혼났을 것이고, 후자라면 동생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고 혼났을 것이다. 저런 부모님을 가진 연두가 부러웠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모범적이고 따뜻한 부모님을 실제로 본 것 같았다.


연준이가 치료받는 모습을 멀뚱이 보고 있는데, 연두 엄마가 고생했다며 크림빵과 우유를 내왔다. 마침, 배가 고팠기에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런 내 모습에, 연두 부모님은 멋쩍게 웃으시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진희라 그랬지? 자장면 먹고 갈래?”


처음 방문한 집이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쭈뼜거리고 있는데, 연두가 옆구리를 찌르며 같이 먹자고 신호를 주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니, 조금전까지 질질 짜고 있던 연준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나는 탕수육도 먹을거야.”


그렇게 처음 먹어 본 청운각의 자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솔직히, 우리 집 춘장은 탄내가 강해 먹다 보면 남기게 된다. 반면, 청운각의 자장면은 달콤하면서 자꾸 당기는 맛이 있어 젓가락질 몇 번에 면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거기에다, 탕수육 또한 신기했다. 소스에 버무려진 튀김 고기는 눅눅해지기 마련인데, 여전히 바삭함을 유지했고 씹을수록 고소함을 더했다. 왜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지나쳐 청운각으로 가는 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배웅까지 받으며 연두네 집을 나왔지만 왠지 기분은 씁쓸했다. 끝이 뻔한 결말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빠는 조만간 가게를 접어야 할 것이다. 이후의 수순은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생이별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더부살이를 전전하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것이다.


울적한 기분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영진 빌딩 앞이었다. 가을이라 점점 낮이 짧아져서 사위는 어둑했다. 그러다 문득, 비밀의 화원에 두고 온 주방놀이 세트가 생각났다. 새것이라 누가 가져갈지도 몰랐다. 급한 마음에 주차장 램프 옆 공터를 통해 비밀의 화원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떠날 때 그대로 장난감이 놓여있었다. 차곡차곡 챙겨 놨다가 내일 연두에게 돌려줄 요량으로 비닐봉지 안에 장난감을 담았다. 얼추 다 챙긴 후 일어나려는데 미세한 위화감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덧니를 드러내고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안녕, 진희야?”


가가멜이었다.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철렁하며 아랫배로 묵직하게 떨어졌다. 재빨리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지만, 불행히도, 주변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비닐봉지를 쥔 손바닥 안으로 축축하게 땀이 베어 나왔다. 가가멜을 노려보며 인상을 썼지만 오히려 그런 내가 더 귀엽다는 듯 괴물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씩 웃어 보였다. 이어,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진희야, 왜 요즘 오락실 안 와? 아저씨 서운하게.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오늘은 아저씨랑 같이 놀자.”

“안 돼요. 아빠가… 오락 그만하고 공부하래요.”


겨우 짜낸 말을 조그맣게 내뱉자, 가가멜이 오른쪽 광대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바지 버클을 풀며 바지 지퍼를 ‘찍’하고 끌어내렸다. 경고음이 머릿속을 울렸지만, 마땅히 빠져나갈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공터와 주택 쪽 통로는 가가멜이 막고 있고 화단 쪽 통로는 나무 등의 장애물이 많아 곧바로 잡힐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사이 가가멜은 또 다시 팬티를 발목까지 끌어내렸다.


“진희야, 이제 아저씨 꺼 봤으니까 네 것도 보여줘야지? 그래야 공평하지.”


검붉은 살덩이가 위, 아래로 까닥거리는 모습이 엽기적이고 징그러웠다. 속이 뒤집어지면서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자위에 맺힌 물기가 뺨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가가멜은 음험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가가멜의 하반신과 내 얼굴이 맞닿기 바로 직전,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깍! 깍! 깍!”


소리의 진원지는 주차장 램프의 화단 쪽이었다. 까마귀 우는 소리인가 했는데 순식간에 ‘나미 아줌마’가 뛰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여전히 머리는 산발이었고, 잠옷인지 평상복인지 알 수 없는 헐렁한 차림새였다. 나미 아줌마는 둥지를 침범한 적에게서 새끼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미새처럼 절규하듯 가가멜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목숨을 내놓을 듯 덤비는 아줌마를 가가멜이 당해낼 리 없었다. 가가멜은 재빨리 바지를 추켜올리고는 줄행랑을 쳤다.


가가멜이 퇴장한 후, 아줌마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걸렸다. 아줌마가 괜찮냐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나도 모르게 흠짓 몸을 떨었다. 나의 반응에 아줌마 또한 조심스러운 듯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처입은 개처럼 나를 힐끔거렸다.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눈물이 차올랐다. 숨이 가파지며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이어졌다. 서럽게 울어대는 나를 보며, 나미 아줌마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했다. 달밤에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에 동네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보았다, 그 중에는 엄마도 있었다. 하도 안 들어와서 이제 찾으러 나가려던 참이었다는 엄마는 꾀제재한 꼬라지로 울고 있는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정육점 아줌마의 조카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덜 좀 그만 놀래키고 다니소. 한 두 번도 아이고 뭐 하자는 깁니꺼! 앞으로, 이 근처 얼쩡거리기만 하이소! 내 가만 안 있을 낍니더!


앙칼진 엄마의 말투에 나미 아줌마는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꽁무니를 뺐다. 아줌마에게는 미안했지만,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진실을 말하면, 크게 혼날 것 같았고, 큰 분란에 휩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참으면 이번 일은 무사히 지나갈 것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무 말없이 엄마와 집으로 갔다.


괴물과 마주보고 있는 만리장성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이전 09화미제,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