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22화-괴물

by 해금이
에이리언3


아스팔트를 달군 8월의 뜨거운 열기는 저녁이 되어도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에어컨이 흔치 않았던 시절, 소시민들이 열대야를 나기 위해서는 차가운 물로 등목을 하거나, 선풍기 앞에서 진을 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 한 마디는 별 소용이 없었다. 집 안에 있어도 덥고, 밖에 있어도 덥다면 차라리 밖을 택하겠노라 말하며 늦은 밤 동네 거리를 무한정 쏘다녔다. 그런 아이들이 못 미더운 부모들은 아이들도 볼 겸, 당신들의 더위도 식힐 겸 집안의 의자나 돗자리를 가지고 나와 길바닥에서 더위를 피했다.


축제 같았다. 이웃들은 저마다 수박이나 참외, 미숫가루를 가지고 나와 나눠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욕심쟁이 건물주 할아버지도, 한 때 골덴 원피스로 나에게 창피를 주었던 혜영이 엄마도, 늦은 밤 우리 가게 홀에서 엄마와 수다를 떨던 정육점 아줌마도 모두 함께 여름 밤의 축제를 즐겼다.


저녁 8시. 가끔씩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새끼 손톱을 닮은 초승달을 올려다봤다. 종종 가게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에 코가 매웠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 품으로 달려가 안기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 날은 부모님의 얼굴에도 왠지 모르게 설레임이 그득했다. 청운각 때문에 매번 죽상이었던 아빠의 얼굴은 무언가를 기대하듯 들떠 보였다. 아마, 그 기대감의 근원은 가게 앞, 밤에도 번쩍번쩍 빛나는 입간판 때문일 것이다.


떨어져 나가는 손님을 되찾기 위해, 아빠는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전기세 먹는 입간판을 구입했다. 파리만 날리는 식당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행여나, 술 취한 행인이 지나가다 발로 차지는 않을까 아빠는 노심초사하며 입간판을 지켰다. 그 모습은 흡사 새로 산 장난감을 애지중지하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의외의 면을 보여주는 아빠가 친근하게 느껴졌고, 그 날 따라 엄마는 유난히 다정했다. 여름 밤, 이웃들 사이에 오고 가는 음식들과 정겨운 대화속에서 어린 내 마음은 말랑말랑해졌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소심했던 마음이 자신감으로 넘쳐 흘렀다. 나를 지켜주는 부모님이 바로 옆에 있었고, 어른들 모두가 친절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신경을 거스르는 상대가 나타났다. 연두였다. 영진빌딩 주차장 입구 화단에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외면하면 할수록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짜증이 치밀었고 연두가 얄미웠다. 그래서, 보란듯이 혜영이와 더욱 크게 시시덕거리며 놀았다.


겉으로는 혜영이와 까불거렸지만 온 신경은 연두를 향해 있었다. 만일, 연두가 청운각 딸이 아니었다면 괜찮았을까? 연두와 함께 했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보물섬을 나눠 읽으며 킥킥거렸던 일, 코딱지에게 대항하기 위해 공책에 할 말 쓰며 전의를 다지던 순간, 영진빌딩 비밀의 화원에서 했던 소꿉놀이, 한 블록 아래 떨어진 한옥 주택가 골목에서 했던 미로 놀이. 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다.


놀때마다 사사건건 문제가 생기는 혜영이보다 연두와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연두에게 차갑게 굴었던 지난날의 태도가 후회로 다가왔다.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을까? 그날 따라 말랑해진 마음속에 자그마한 틈이 열리는 것 같았다. 솔직히… 연두가 잘못한 건 없었다.


‘연두랑 같이 놀자고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귀청을 찢을 듯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정신이 들어 앞을 보니, 혜영이가 자전거 뒷자석에 앉아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오락실 아저씨가 혜영이를 뒷자석에 태우고 도로변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 오락실 아저씨에게 몰려들어 자기들도 태워달라며 조르고 있었다.


“아저씨, 다음엔 저도 태워주세요.”

“저도요!”


확실히, 재미있어 보였다. 아이들을 뒷좌석에 한 명씩 태우고 빠른 속도로 왔다갔다하니 자연스레 바람이 불어와 선풍기를 쐬는 것 같은 효과가 있었다. 재미도 있고 시원해서 아이들은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꽁무니에 따라붙듯 오락실 아저씨에게 몰려들었다. 그런 아이들이 귀찮고 싫을 법도 한데 아저씨는 개의치 않았다.


“자, 이번에는 동네 한 바퀴 돌다 온다.”

“저요!”

“저요!”


오락실 아저씨는 몰려든 아이들 한 명씩, 한 명씩 하나도 빼놓지 않고 뒷좌석에 태운 다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주변의 어른들이 힘들지 않냐며 그만 하라는데도 아저씨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성실하게 아이들을 태워다 날랐다.


“다음은 너다~!”


아이들 대부분이 아저씨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한밤의 드라이브를 즐기고 왔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며 한 번만 더 태워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타고 싶어졌다. 평소라면, 오락실 아저씨를 따라 나서지 않았겠지만 그 날은 달랐다. 부모님이 지켜보고 계시고, 동네 어른 모두가 친절했다. 오락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 뒷좌석에 올라탔다.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는 순간, 아저씨의 허리춤을 꽉 잡았다. 자전거에 가속도가 붙으며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아저씨가 바른 스킨향과 몸에 밴 담배향이 코 끝을 스쳤다. 아저씨가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신이 났다. 어린이 날, 부모님과 함께 갔던 어린이 대공원의 코끼리 열차만큼 신이 났다. 역시, 아저씨는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참을 달리다, 아저씨가 한옥의 주택 골목가로 들어섰다. 가게와 빌딩, 미싱 공장이 들어선 도로변과 다르게, 주택가인 골목은 한적하고 고요했다. 가끔가다, 대문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집 안의 불빛을 제외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골목의 중간쯤 갔을 때, 아저씨가 자전거를 멈추고는 말했다.


“우리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가자. 오래 탔더니 힘들다.”


실제로 아저씨의 등에서는 뒤에 앉은 내가 느껴질만큼 후끈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숨을 헉헉거리는 아저씨를 보니, 차마 바로 집에 가자고 조를 수 없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자전거 뒷좌석에서 내려온 나는 남의 집 대문 앞에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가 자전거의 금속 지지대를 땅바닥에 고정한 후,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섰다.


잠시 쉬는 자세 치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고개가 뒤로 꺾이며 또 다시 달팽이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미끈미끈하고 질척하게 입 안을 휘감은 아저씨의 혀가 한 동안 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러운 아저씨의 행동에 저항할 틈은 없었다. 머리통을 두 손으로 꽉 쥔 성인 남성의 완력을 당해낼 리 없을뿐더러, 평소의 아저씨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오락실에 있을 때는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어둡고 외진 골목에서는 아니었다. 아저씨가 입안 깊숙이 길고 질척한 혀를 낼름거렸을 때, 그림책에서나 보던 그림자 괴물이 나를 덮쳐오는 듯했다. 이내, 사나운 개가 사냥감을 물고 늘어질 때 나오는 흥분한 숨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징그럽고 이상했으며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깎아낸 손톱보다 얇아진 초승달뿐이었다.


오락실에서는 아주 짧은 순간의 뽀뽀였지만, 외진 골목길 안에서는 달랐다. 똬리를 뜨는 뱀처럼 입안 이곳저곳 훑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아저씨가 목구멍 깊숙이 혀를 집어넣는 바람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콜록, 콜록.”


내가 기침을 하던 말던, 아저씨는 분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바지 벨트를 급하게 풀었다. 벨트가 풀리면서 나는 차가운 금속음에 겁이 나면서도 머리가 멍해졌다. 아저씨가 면바지의 지퍼를 내리자 속옷이 드러났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아저씨가 뭘 하려는 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린 나를 앞에 두고 씩씩거리며 길거리에서 옷을 벗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아저씨의 팬티가 발목까지 내려가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배 아랫부분에서 팽팽하게 덜렁거리는 아저씨의 신체 일부가 언젠가 등굣길 연두와 보았던 남자의 신체 일부와 오버랩 되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뻣뻣하게 굳은 채 얼어버렸다. 그 사이, 아저씨가 내 치마 안으로 손을 뻗어 팬티를 잡아챘다. 그제서야, 오락실 아저씨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몸이 기억하는 불쾌한 기억들이 떠오른 것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고 한다. 엄마가 말하길, 돈이 조금이라도 모일라 치면 기침이나 열이 나는 바람에 병원에 돈을 다 갖다 받쳐야 했다고 한다. 그 잔병이라는 것은 내가 더부살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아픈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이 친인척들이라고 좋았을 리 없다.


원치 않게 떠맡은 아이를 살뜰히 보살펴 줄 사람은 없었다. 늘 관심 밖이었고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당장 무슨 짓을 당해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무탈한 아이. 약자인 내가 만만했을 것이다. 어느 날, 둘째 고모의 집에 맡겨졌을 때, 사촌 오빠는 어린 나의 속옷을 벗기고 장난감처럼 나를 가지고 놀았다. 특히, 오빠가 다락방에 올라가 이상한 신음소리가 나는 비디오를 보고 내려온 날이면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이후, 생긴 생식기의 염증에 고생을 할쯤, 큰 고모네로 집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안전할 줄 알았다.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행운이 올 리 없었다. 약국을 하는 고모부는 질염증에 좋다는 약물을 물에 풀어 매일 밤, 내 생식기를 씻겨주었다. 처음에는 감사하고 고마웠다. 나를 도와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국민학교 입학식을 계기로 부모님에게 돌아간 이후에도, 갖은 장난감을 사와 선물해주는 고모부가 정말 좋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고모 내외가 나와 내 동생 중 한 명을 데라고 계곡으로 여름 휴가를 갔던 날이었다.


고모부는 국민학교 2학년인 나를 씻겨준다며 계곡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얕은 물은 안 된다며 깊은 곳으로 가는 바람에 고모부에게 매달리듯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고모두는 나의 목과 얼굴, 등과 가슴 등을 씻겨주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나를 한 동안 맡아 주셨고,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고모부의 손이 팬티 안으로 들어가 나의 은밀한 곳까지 헤집은 이후에는 그를 더 이상 어른으로 볼 수 없었다. 큰 고모집에서 살 때, 그가 나에게 했던 치료 행위조차 그 진정성에 의심이 들었다.


친척이니까, 좋은 어른이니까 나를 보호해주고 아껴줄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은 진작에 버렸어야 했다. 그러나, 멍청했던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이 선할 거라 믿으며 시궁창에 빠져들고 있었다. 짧은 인생이지만 여러 번 반복되었던 데이터가 보내온 경고를 무시한 결과다. 오락실 아저씨는 한껏 흥분해서는 내 팬티를 벗기려 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밤, 땀에 젖은 팬티는 쉬이 내려가지 않았고, 괴물은 화까지 내며 어린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팬티가 벗겨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저씨에게 이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도 뻥끗할 수 없었다. 나쁜 일을 당하면서도 누군가가 알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본능이 도망가라고 외쳤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희야~! 허진희! 진희야~!”


술래가 한눈을 판 사이 같은 편이 ‘땡’을 해주면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술래가 잡을 새라, 죽을 힘을 다해 어두운 골목 끝 대로변의 가로등을 향해 달렸다.


“딱! 딱! 딱! 딱!”


골목길의 땅바닥과 나의 슬리퍼가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귓전을 때렸다. 소리가 클수록 술래에게 잡히지 않기라도 하듯, 온 힘을 다해 바닥을 때리듯 달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대로변의 가로등 아래 내 이름을 부르짖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다.


“헉! 헉! 헉!”


연두를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헐떡거리느라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다짜고짜 우는 나를 본 연두는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내 등을 토닥여주는 규칙적인 리듬에 안심이 됐다. 숨을 고르고, 연두와 함께 우리집 방향으로 뛰었다. 발바닥이 터질 듯 아파왔지만, 매부리코 괴물, 가가멜이 여전히 나를 찾고 있을 지 몰랐다.


부모님을 만나면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가멜이 어두운 골목에서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평소에도 오락실만 가면 내 입 안에 더러운 혀를 집어넣고 이상한 짓을 했으니 꼭 가가멜을 혼내 주라고.


비장한 각오를 하며 연두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이제 영진 슈퍼만 지나면 우리 가게가 나온다.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니 안심이 되면서 나의 각오가 굳건히 다져졌다. 건물 모서리 귀퉁이 뒤쪽으로 어른들의 화기애애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 부모님의 웃음소리도 있었다.


“엄마~! 아빠~!”


애타는 마음으로 엄마, 아빠를 부르며 달려간 그 곳에는 가가멜도 있었다. 가가멜이….


그 괴물이, 부모님을 마주보며 가증스럽게 웃고 있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이전 08화미제,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