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29화-임연준

by 해금이


-어라? 이 남자… 그 미친년 조카잖아? 그 왜~, 미래 문방구 조 사장 죽인 살인범 조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남자가 추미영 씨 조카에요?

-어, 부동산 전세 계약하는 날, 그 미치광이 여자랑 이 남자가 같이 왔어. 이모가 몸이 좀 안 좋으니까, 앞으로 집 관련 문제는 다 자기한테 연락하면 된다고 그랬는데?


머릿속, 흐트러진 퍼즐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미영이 아줌마와 연준이는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다. 최소한, 2년 전, 서울에서 경기도로 미영이 아줌마가 이사 갈 때부터 그 두 사람은 조하대를 타겟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확인 사살을 하듯, 통화를 마친 이 PD가 들어와 말했다.


“허 작가, 세기 일보 인사과에 확인해 봤는데… 신문사를 통틀어 임연준이라는 기자는 없다는데?”


녀석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넋이 나간 채로 수화기를 책상 위에 떨어뜨리니 팀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주시했다. 그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연준이가 공범 같다고? 아니 말 해 줄 수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 애써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죄송해요. 제가 당사자한테 직접 확인해 볼게요.”


누가 들어도 어색한 변명. 이 PD가 미간을 좁히며 다가왔다. 사실대로 말하라는 듯 추궁하는 눈빛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압박감이 더해졌고 이대로라면 자백하듯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 같았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곤란한 상황에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이 PD의 시선을 피하며 잽싸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자마자, 프라이버시 따위 보호받을 수 없는, 엄마의 크고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진희야, 니 아빠가 연락이 안된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가 연락이 안 된다니?

-아무리 술에 취해도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왔는데 어제는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안 들어왔다. 고혈압도 있는 양반이 약도 빼 묵고 우짤라 카는지!

-아빠 친구들한테 연락해 봤어?

-다 해봤다. 전화도 해보고 직접 가봤는데도 없다. 혹시나 몰라서, 경찰서에 신고는 해 놨는데, 성인 실종은 가출일지도 모른담서 당장은 뭐 해줄 게 없다고 그러네?


문득, 어제 밤, 연준이와 아빠가 만리장성에 단 둘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중간에 통화가 종료되었지만, 충격적인 사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느라 두 사람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연준이는 나를 포함해 내 주변사람들을 모두 속이고 기자행세를 해왔다. 거기에 더해, 미영이 아줌마와 잘 알면서도, 그녀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나에게 공동 취재를 제안했다. 연준이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순간, 온 몸의 털이 남김없이 곤두서며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내달렸다.


“허 작가, 집에 무슨 일 있어? 얼굴이 파랗게 질렸어, 괜찮아?”


이 PD가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메인 언니도 일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죄송해요.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가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연준이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불안이 온 몸을 스산하게 감쌌다. 그럴 리 없다고 도리질 쳤지만, 부정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버스에서 내려 만리장성까지 한달음에 달려 도착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와 남동생들이 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모두들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 저기 아빠가 있을 만한 곳에 연락을 돌리는 중이었다.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물었다.


“연락 온 거 있어?”


모두가 고개를 흔들며 불안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50분. 녀석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6시. 1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쯤 연락이 와야 할 텐데, 조금 전까지 시도해 본 통화에도 녀석은 묵묵부답이었다. 10분 남았다. 만약, 10분이 지나도 연준이에게 연락이 없다면, 그때는 모두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경찰에 신고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1분이 1시간 같았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홀 내부를 서성거렸다. 어디라도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만리장성 내부를 새삼 훑어보았다. 붉은색 바탕에 용 문양이 은은하게 들어간 벽지는 마음이 심란할 때, 용이 몇 마리인지 세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곤 했다. 그러나, 기름때에 찌들어 원래의 색이 바래 얼룩덜룩해진 벽지는 용의 형체조차 흐릿하게 만들어 금세 눈길을 거두게 했다.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시선을 두다, 문득, 카운터 위에 놓여있는 낯선 장식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반딱거리는 금속 표면, 미려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뭉툭한 연필 모양의 기둥. 처음 보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


끝에 선혈 자국만 있다면 영락없이 조하대를 살해하는데 이용한 범행 도구다. 물론, 눈 앞에 장식품은 회의자료에서 봤던 범행도구와는 달랐다. 연필 모양 기둥 옆에는 원통형 연필 꽂이가 달려있어 누가 봐도 모던한 느낌을 살린 디자인 소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살해도구가 연상되는 디자인에 발작하듯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뭐야? 이거 어디서 났어!”

“문디 가스나! 아빠가 없어졌는데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앉아 있노!”

“빨리 말해! 이거 어디서 난 거냐고!”

“저게 미쳤나! 저번에 연준이가 선물로 주고 간 거 아이가! 직접 만들었다 켔는데 못 들었나?”


그러고보니, 지난 번 엄마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이는 빈손으로 오기 뭣해서 준비했다며 작은 선물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당시에는 만리장성을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선물이 일종의 힌트였다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이제서야, 녀석이 나에게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들이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연준이가 소품을 직접 만들었다는 엄마의 말에 혜영이네 미장원으로 취재 갈 때의 일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로 용접 일을 했다고 했었나? 반팔 아래로 드러난 녀석의 상흔들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연준이는 조하대를 죽이기 위해 살해도구까지 직접 만든 것이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을 뻔했다. 아빠가 위험하다. 안 되겠다 싶어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정각 오후 6시. 연준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미영이 아줌마 본가로 와요.

-너 왜 이래.

-일이 커졌으면 좋겠어요?

-뭐?

-지금 누나가 소란 피워서 좋을 거 없다는 얘기예요. 제가 아저씨를 납치했네 마네 하면서 신고하면 아저씨는 무사하지 못해요. 그냥, 조용히 혼자 오세요.


고저 없는 나지막한 연준이의 음성에서 냉기가 뚝뚝 묻어나왔다. 설마, 아빠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까 싶다가도, 수사 자료에서 읽었던 범행수법을 떠 올리자 간신히 억눌렀던 두려움이 고개를 처 들었다. 통화를 종료하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 회사에 아는 분 통해서 경찰에서 도움 주실 분 있는 지 알아볼게. 그러려면, 내가 직접 가서 얼굴 보고 부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아무래도 경찰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신경을 써 주지 싶다. 얼른 가!”


반색을 하는 엄마와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옅은 기대감에 들뜬 동생들을 뒤로 하고 만리장성을 나왔다. 8월의 맹렬한 폭염 속, 차들이 지나가는 4차선 도로 옆 인도길을 미친듯이 달렸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며 한옥집으로 향했다.


“허억~! 허억~!”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옛날 연두와 함께 왔던 한옥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경찰이 붙여둔 출입금지 테이프가 떨어져 바닥에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숨을 가다듬고 나무로 된 대문을 밀어 젖혔다.


“끼이익~.”


대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빼꼼히 열렸다. 바람이 불지 않아 공기도 멈춘듯한 여름 밤,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 무성한 잡풀이 밝혔다. 왼편으로 정갈하게 서 있던 장독대도, 잘 관리된 정원도 이제는 없었다. 대신, 깨지고 이가 나간 장독대 옆에 녹슨 대야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에 오르기 위해 디딤돌에 발을 올리는 순간, 안방문을 열고 연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어요?”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연준이가 낯설었다. 더 이상 내가 알았던 연준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고 그런 뻔한 설득이 녀석에게 먹힐까? 소용없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이러면 안 된다고 연준이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빠를 구하는 일이다.


“연준아, 나 아무한테도 말 안 해. 우리 아빠 어디 있니?”

“제가 잘 모시고 있어요. 죽이진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 아저씨는 수행하셔야 할 미션이 있어서 꼭 살아 계셔야 하거든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여기 까지만 하자. 너, 충분히 했잖아.”

“네? 충분? 뭐가 충분한데요?”


연준이가 정말 궁금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술을 단단히 오므렸다. 마루 위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는 구도여서 그런지, 학생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선생님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 또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녀석이 납득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섣부르게 솔직히 답했다가는 녀석을 자극할 것 같고, 애매하게 돌려 말했다가는 더 집요하게 파고 들 것 같았다. 어느 쪽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 와중에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하대, 그 변태 새끼 죽인 거요?”


녀석의 자백으로 막연하게 의심하고 있던 것들이 전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려 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묻고 싶었다.


“왜 그랬니?”

“왜 그랬냐요? 당연하잖아요. 아홉 살 자리 여자 아이한테 더러운 짓 하는 인간한테는 딱 알맞은 최후였어요. 누나는 잘 알지 않아요? 연두 누나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지?”


도대체 연준이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녀석은 나와 조하대 사이에 있었던 일까지 알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 메인 언니에게 처음 털어놓았던 끔찍한 과거가 어떻게 녀석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지 의문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미영이 이모요. 미영이 이모가 다 말해줬어요.”

“역시… 미영이 아줌마랑 잘 알고 있었구나. 그럼, 왜 모르는 척, 나한테 아줌마 취재하자고 한 거야? 부동산 계약까지 같이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 같던데.”

“누나가 필요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나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 간판이 필요했달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여러 번 연준이의 말을 곱씹었다. 녀석은 왜 프로그램 간판이 필요할까?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온 세상 천지에 알리기라도 할 생각인가? 나 같으면 조용히 복수하고 해외로 나가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오히려 그 반대. 혼란스러워하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준이는 자기할 말만 지껄였다.


“누나,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값은 그대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요. 누구는 죄 짓고도 발 뻗고 편히 자고, 누구는 매일 괴로워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그런 면에서 누나 아버지는 참 불쌍해요. 연두 누나한테 몹쓸 짓 한 것도 아니고, 누나 죽은 거 못 본 척, 눈 감아 준 것뿐인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셨잖아요. 이제는 벗어 나셔야죠. 그 동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 아빠 지금 어디 있는데!”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빠의 행방을 묻는 나의 질문에 연준이가 약 올리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는 아직 끝내지 못한 미션이 있으시다니까요? 말은 아저씨가 얼마나 힘드셨겠냐고 했지만, 죄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쯤, 아마 피 토하는 심정으로 누나 이름 목놓아 부르고 계실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말했잖아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지은 죄값은 그대로 돌려받아야 한다고요. 우리 아버지가 연두 누나 잃어버리고 평생을 괴롭게 사셨잖아요? 누나 아버지도 그 정도의 고통은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눈 뜨면 보실 수 있게 쪽지 잘 붙여 놓고 나왔죠. 잠깐 있어 봐요.”


녀석이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펼쳐 보였다. A4 용지에 적힌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오늘 밤, 당신 딸은 죽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이전 02화미제,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