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34화-면회

by 해금이


홀로 떠 있는 섬.


연준이의 아지트를 처음 본 나의 소감이다. 단순히, 잠만 자기 위해 머물렀던 서울 시내 고시원과는 다른 녀석의 진짜 공간. 그 곳은 경기 남부의 야산, 그나마 평평한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였다.


8월 말, 한 여름 뙤약볕도 할 풀 꺾일 만하건만, 무심한 해는 회색 빛 컨테이너 지붕 위로 매섭게 내리 꽂혔다. 손 차양을 만들며 컨테이너 입구로 다가갔다. 연준이가 알려준 대로, 출입문 왼쪽에 놓인 두번째 돌멩이 아래를 들추자 열쇠가 하나 나왔다. 열쇠를 잠근 핀 사이에 넣고 오른쪽으로 돌리자, ‘찰칵’ 하고 부드럽게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오래된 경첩이 앓는 소리를 내자 문이 열렸다. 그러자, 히터를 직방으로 맞은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공격하듯 덮쳐왔다. 눈살을 찌푸리고 내부로 발을 들인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


삭막한 정갈함. 그것이 연준이의 공간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마디였다. 방 왼쪽에 매트리스 하나, 가운데 옷장, 그리고 오른쪽의 앉은뱅이 책상이 가구의 전부였다. 자연스레 쌓인 먼지야 그렇다 치고, 바닥에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들을 예감해서 미리 주변을 정리한 것일까? 사람이 사는 공간 같지 않았다.


한 쪽 벽에 밀착된 매트리스의 모서리는 종이접기를 한 것 마냥 매끈하게 접혀 있었다. 그 위에 개켜진 이불은 베개와 함께 각을 맞추고 있었는데, 문득, 장 팀장이 조하대 사건현장을 보고 이 PD에게 전해준 감상평이 떠올랐다.


‘오싹하다.’


재빨리 앞으로 돌진해 옷장 문을 열었다. 색깔별로 배열되어 어깨선을 딱 맞춘 셔츠, 칼같이 다림질되어 주름 하나 없는 바지 그리고 A4 용지가 쌓여 있듯 층을 이루고 있는 러닝 셔츠. 이 모든 것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러움을 자아냈다. 이 현장 자체가 연준이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증거 같아 나도 모르게 옷장 내부를 흐트러뜨렸다. 연준이가 모든 범죄 사실을 자백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범죄 사실 외에 다른 사소한 일로 가십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싫었다.


연준이게는 미안하지만, 내 나름대로 옷장 내부 정리한 다음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이 곳에 방문한 목적을 상기하고 녀석의 앉은뱅이 책상으로 다가갔다. 가운데 서랍을 여니, 그 안에 사진 한 장과 메모지 한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에는 지긋한 인상의 노인 한 명이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른 남성이 두 손 가득 커다란 배추를 들어 보이는 모습은 꼭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농부 같았다. 메모지에는 경기도 북동부에 위치한 마을을 가리키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사진 속의 노인이 사는 곳일까?’


무작정, 사진을 들고 미영이 아줌마를 찾아가 달라는 부탁이 내심 불만스러웠다. 유일한 힌트는 미영이 아줌마가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는 말뿐이다.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는 녀석이 얄미웠지만, 답을 쥐고 있는 것은 녀석이지 내가 아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수밖에.


며칠 후, 가족 이외에 면회는 제한되는 관계로 정육점 아줌마와 함께 치료감호소로 갔다. 몸이 불편한 아줌마는 간만의 외출이 좋다시면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시조카를 보는 일이 속상한 지 연신 한숨을 내 쉬었다.


“에휴~! 불쌍한 우리 미영이~, 어릴 때는 누구보다 밝고, 말도 잘하고 그랬는데…”

“내가 좀 더 신경 쓰고, 들여다 봤어야 했는데…”


혼잣말인지, 누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모를 아줌마의 넋두리가 계속 이어졌지만, 뒤늦은 후회는 공허함만 남기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면회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아줌마와 함께 면회실로 들어갔다.


입추가 지났지만 땀이 뻘뻘 흐르는 밖과 달리, 치료감호소 내부는 동굴 안에 들어온 것처럼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소독약 냄새가 과해 코가 마비된다고 느낄 때쯤, 유리벽 너머로 미영이 아줌마가 주춤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미영아! 어쩌다가 이렇게 예볐냐~!”


숙모가 찾아왔지만, 멍한 표정에 말이 없는 미영이 아줌마는 탁한 눈동자로 넋이 빠진 듯 먼 곳만 바라보았다. 그런 시조카가 더욱 안쓰러웠는지, 정육점 아줌마는 아예 대놓고 눈물바람이었다.


“니 엄마가 너 이러는 거 보시면은 얼마나 속상 하시겄냐~! 에이고~. 킁! 그래, 차라리 형님이 정신을 놔 버린 게 다행이다.”


정육점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하든, 미영이 아줌마는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마르고 왜소한 체격에 창백한 낯빛. 그 외 다른 건강 문제라도 있는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짙어진 병색. 아홉 살 때,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던 나를 죽을 힘을 다해 지켜준 사람이 이렇게 작고 약한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상태를 보니 오늘은 때가 아닌 듯했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어, 유리벽 너머로 조심스레 아줌마를 불러보았다.


“아줌마.”

“진…희?”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던 미영이 아줌마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워낙,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날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줌마는 여전히 날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만리..장성, 진희. 연두.. 친구.”


힘겹지만 또박또박 내 이름을 말하고, 오랜 시간 잊힌 내 친구의 이름까지 말해주는 미영이 아줌마. 그런 아줌마를 보니, 옛날, 연두의 손을 잡고 걸었던 한옥 골목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괴물에게 잡아 먹힐 뻔한 나를 구해주고, 그런 내가 괜찮은 지 곁눈질로 살피던 미영이 아줌마.


아줌마 또한 과거의 상처로 고통스러웠기에, 다른 아이들도 같은 전철을 반복할까 싶어 숱한 오해를 받으면서도 조하대를 감시해 왔다. 그저 모른척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무사히 그녀 앞에 설 수 있었다. 먹먹해지는 마음에 울컥한 기분을 애써 숨기며 말을 걸었다.


“네, 맞아요. 오랜만이에요. 아줌마.”

“이제… 안 아파?”

“네, 괜찮아요. 아줌마는요?”

“나도… 안 아파.


우리 둘은, 한 동안, 말보다 많은 것을 담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괜찮으면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아줌마의 눈빛은, 그 자체 만으로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따뜻해서, 금세, 눈가가 시큰해졌다. 잠시 후, 아줌마가 연두 얘기를 꺼냈다.


“연두는…?”

“연두는 연준이가 찾아서 아빠한테 잘 보내줬어요.”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아줌마의 얼굴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 놓은 것 같았다. 무감동한 얼굴에 잠깐 동안 온기가 맴돌았다. 좀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려 했지만, 교정직원이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이제, 정리해 주십시오.”


시간을 보니, 어느 새, 1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연준이가 미영이 아줌마에게 보여주라고 한 사진을 유리벽에 붙이며 말했다.


“혹시, 이 사람 아세요?”


하지만, 미영이 아줌마가 사진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교정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면회실을 떠났다. 낭패였다. 일반 수용자들과 다르게 치료감호소 내의 수용자들은 건강상태에 따라 면회 가능 여부가 천차만별이었다. 더구나, 가족 이외의 면회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오늘이 아니면 가까운 시일내에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곤혹스러워하는 나를 본 정육점 아줌마가 그 사진이 뭐길래 그러느냐고 물었다.


“저도 몰라요. 그냥, 미영이 아줌마한테 보여주고 확인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육점 아줌마가 내 손에 들린 사진을 휙 낚아챘다. 몸집과 다르게 손놀림은 상당히 빠른 분이었다. 노안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뜬 아줌마가 사진을 눈 앞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몇 번이나 뚫어지게 보았다.


“이 육실할 인간이 왜…?”


사진을 쥔 아줌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평소의 다정다감한 얼굴이 굳어지더니 푸근한 목소리에 날이 섰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 정육점 아줌마에게 물었다.


“이분 아세요?”


대답 없는 아줌마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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