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33화-방송

by 해금이


-재연장면


내레이션- 2006년 8월, 열대야가 가시지 않은 한여름의 서울. 새벽 2시경, 지구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곧 터질 겁니다.


최근, 폭탄을 설치했다는 장난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오던 때였습니다. 경찰은 긴가민가 하면서도 즉시 출동을 결정합니다.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장소는 한밤중 굴착기 소음으로 여러 차례 민원이 들어오던 곳 근처였기 때문입니다.


주택과 상업 건물이 뒤섞인 좁은 골목에 도착한 경찰은 조심스럽게 현장을 살핍니다.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공사 현장. 그런데, 그곳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국회의원 J씨였습니다.


“폭탄이 설치됐다는 전화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의원님은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J 의원이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려 합니다. 의아해하던 경찰이 현장을 자세히 점검하던 중, 굴착기로 파헤쳐진 땅 속에서 의문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한밤중의 폭탄 협박 전화, 땅속의 시신, 그리고 국회의원 J. 과연 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요. 오늘, 《미제, 아무도 모른다》가 그 미스터리의 실체를 추적합니다.




방송이 나간 뒤에 파급력은 대단했다. 경찰은 시신에 대해 바로 수사에 착수했고, 유력한 용의자로 J 의원, 조귀언을 지목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서울시 동대문구 영진빌딩 뒤편에 에어컨 실외기가 밀집된 공터. 비록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에어컨 실외기 덕분에 그 주변은 비교적 건조한 공기가 유지되었다. 그 영향으로 콘크리트 아래 묻힌 시신 일부 조직이 예상보다 잘 보존될 수 있었다. 국과수로 옮겨진 시신은 부검에 들어갔다.


비닐에 여러 겹 둘둘 말려 매장된 시신은 9세에서 10세 사이로 추정되는 여아이며, 1988년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신원 확인 절차는 예상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는 얼마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임길용 씨 덕분으로 실종자 가족의 DNA가 경찰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문의 시신이 평생 딸을 찾기 위해 전국에 현수막을 걸고 다닌 임길용 씨의 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여론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왜 임연두가 살해되고 차가운 땅속에 묻혀야만 했는지,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고, 각 매체들은 단독과 특종을 위해 취재 경쟁에 돌입했다.


한편, 미영이 아줌마의 경이동 자택에서 구조된 아빠는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모든 사실을 우리 프로그램 제작팀에 털어놓았다. 덕분에, 《미제, 아무도 모른다》팀은 아빠의 증언을 토대로 조하대에 대해 단독.특종 보도를 낼 수 있었. 이는 곧, 경이동 중요부위 절단 살인사건과도 연결되었다. 조하대가 왜 그렇게까지 잔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과거사가 낱낱이 까발려졌다.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나 또한 베일에 쌓여 목소리를 변조한 채 피해 생존자로서 증언했다.


결국, 조하대의 추악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렸다는 사실부터, 최근까지도, 그 추악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불우한 환경에 있는 아이를 타켓으로 삼아 짐승같은 짓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까지. 이 사건이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되자, 화진이의 사연도 널리 알려졌다. 방송을 본 익명의 후원자는 화진이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때까지 모든 심리 치료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경이동 살인사건의 범인인 미영이 아줌마에 대한 여론도 180도 바뀌었다. 이는 미제, 아무도 모른다》 팀의 노력도 한 몫 했다. 어릴 적, 아줌마가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과 그로 인해 발생한 정신과적인 문제를 대중에게 알렸다. 그녀의 과거와 조하대의 만행이 동시에 공개되자, 대중은 그녀에게 비난 대신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아줌마를 트라우마를 안은 채, 홀로 고군분투하는 영웅으로 추앙하기까지 했다.


대중의 관심과 여론으로 인해, 아줌마의 수사 또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미영이 아줌마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신장, 체중, 근력 면에서도 아줌마가 조하대에 비해 월등히 불리했다. 심지어, 수면제로 피해자를 심신상실 상태에 이르게 했다 하더라도, 30cm나 되는 파이프를 항문 안으로 깊숙이 삽입해 내부 장기를 손상시킬 정도의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고 범인도피등 죄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미영이 아줌마는 치료감호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줌마가 유력한 용의자에서 제외된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이 진짜 범인이라고 자백한 사람의 전화 때문이었다. 전화상으로 범행 날짜, 시간, 방법 등을 소상히 진술한 그는 할 일을 마무리하는 대로 자수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에, 비상이 걸린 경찰은 아빠의 진술로 범인을 특정했고, 연준이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연준이가 말하는 그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경찰은 곧바로 조귀언에 대한 신변보호에 들어갔다. 24시간 보호를 받으며 경찰 수사를 받는 조귀언의 작태는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변호인의 아이디어인지 본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모든 일은 정치적인 보복이며 유망한 정치인을 향한 탄압이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자신은 결백하며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왜 오밤중에 땅을 파헤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답변은 피했다.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한 조귀언의 헛소리에 여론은 싸늘했고 오히려 비판만 더 거세어졌다. 심상치 않은 대중의 반응에 조귀언은 또 다시 무리수를 뒀다.


“지난, 2년간, 저는 매일 새벽마다 걸려오는 의문에 전화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일순간, 판단력을 상실한 저는 상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인 즉, 영진 빌딩 뒤편의 땅을 굴착기로 파라고 지시했던 것은 매일 밤 의문의 전화를 걸어왔던 사람이 시킨 것이고, 시체를 묻은 범인 또한 의문의 상대라고 말하며, 책임을 떠 넘기려는 수법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준이는 한 번도 조귀언에게 말을 한 적이 없고, 최근, 내가 조귀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명시적으로, 그런 지시는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어도 자신의 죄를 실토하지 않는 그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때쯤, 일이 터졌다. 철통감시 경호가 붙은 조귀언을 향해 연준이가 차를 몰고 돌진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부르짖던 연준이다운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조귀언 만큼 악독하지는 못해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마지막에 브레이크를 밟은 연준이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연준이는 모든 범행에 대해 순순히 자백했고, 자신이 임연두의 동생이라고 밝혔다. 오랜 시간 딸을 찾아 헤메다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결국은, 누나를 찾아낸 연준이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매체는 앞다퉈 연준이의 사연을 보도했고 인터뷰를 따 내려 경쟁했다. 그 중에서 연준이가 선택한 매체는 누나일지도 모를 부랑자 신원확인을 위해 경찰서를 출입하다 알게 된 세기일보 기자였다. 연준이네 가족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기사까지 썼던 그 기자는 이번에도 연준이의 이야기를 잘 풀어주었다.


“미영이 이모와는 2년 전 우연히 만났습니다. 어릴 적, 누나가 없어진 동네를 성인이 된 다음에도 종종 찾아갔어요. 그곳에 가면, 왠지,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같이 놀던 영진빌딩 주차장 입구 뒤편에, 이전에는 화단이었던 곳을 둘러보던 중에 이모랑 마주쳤어요. 저는 이모를 못 알아봤는데, 그 분은 저를 알아보시더라고요. 이모에게, 그날, 누나에게 일어난 일을 들었어요. 범인들이 누군지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요. 저 혼자 복수하려고 했는데, 이모가 자기도 돕게 해 달라고 하셨어요. 거절했지만, 안 끼워주면, 경찰에 알리겠다고 하셨어요.”


“범죄의 시발점이 미영이 이모를 만났기 때문이냐고요? 아니요. 절대. 사실, 미영이 이모는 절 말리셨어요. 그러지 말라고. 근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조귀언한테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거든요. 결정적으로 제가 범행을 결심하게 된 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이후예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누나만 찾아다니는 아버지가 싫고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까, 너무 후회되고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든 조씨 형제들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조하대에게 어떻게 접근했냐고요? 쉬웠어요. 어릴 때, 아저씨 오락실 자주 다녔다고 했죠. 조하대도 저를 반가워했어요. 나이 들면 다 그런 가요? 뭐가 그리 반가운지 친근하게 굴더라고요. 뭐 하냐고 묻길래 기자라고 했더니, 정치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좌파니, 빨갱이니 하면서 뭐라고 말하는데 저는 잘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어서 그냥 듣기만 했어요. 이후로, 두 세번 더 만나서 말동무 좀 해줬더니 경계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찾아갈 때마다, 자양강장제 한 박스를 선물로 줬는데 그 인간을 죽인 날에는 수면제가 들어간 자양강장제를 가져갔어요. 아무 의심 없이 받아 마셨어요.”


“범행 도구요? 네, 제가 직접 만든 거 맞습니다. 제가 공업 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누나 찾아 다니느라 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어요. 대학 진학보다는 빨리 취업해서 제 앞가림이나 하길 바라셨죠. 근데, 기자님, 그거 아세요? 저도 대학가고 싶었어요. 하루 종일 귀가 먹먹해지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파이프 찍어내는 것보다, 저만의 얘기로 가득찬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비록, 재질은 차가운 금속이지만,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금속 공예 작품이요.”


“공범이 있냐고요? 아니오, 없습니다. 조귀언이 전화로 여자 목소리도 들었다고요? 글쎄요. 누가 이런 미친 짓을 도와주겠습니까? 어떤 여자가 새벽, 4시 44분에 매번 공중전화에서 전화 거는 일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요. 조귀언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보죠.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던가요?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아마, 매일 전화가 걸려온 것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서 환청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 통의 전화, 한 구의 시신, 그리고 국회의원 J’ 라는 소제목으로 나갔던 지난 방송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은 우리 팀은 즉시 후속방송 준비에 들어갔다. 《미제, 아무도 모른다》 팀은 국회의원 J, 즉, 조귀언과 연관된 일이라면 먼지 한 톨 놓치지 않고 파고 들어갔다. 그러자, 갖가지 불이익과 두려움 때문에 숨죽이고 있던 여성들이 하나, 둘 전면에 나서며 존재를 드러냈다. 모두가 과거에 조귀언에게 당했던 성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국회의원 J가 얼마나 인간 말종인지 증언해 주었다. 이후, 피해 여성들은 조귀언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고, 조귀언은 또 다른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던 조귀언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후보 자신 사퇴를 선언해야 했다. 더욱 최악인 것은, 새로운 국민당 내부에서 더 이상 폭탄을 끌어안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조귀언을 제명한 것이다. 소속도 없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된 조귀언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언론의 집중포화, '새로운 국민당'으로부터의 제명처리, 경찰 수사. 사람은 궁지에 몰릴수록 실수를 하는 법인데 그라고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공소시표 지났잖아! 왜 다들 지난 일 가지고 지랄인데!!”

“의원님, 목소리를 좀 낮추시는게…”

“쳇! 두고 봐. 인간 조귀언이 이대로 무너질 것 같아? 지금 당장은 욕할 수 있지. 그러나, 내일, 모레,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져. 1년 후면 무소속으로 나가도 또 찍어 준다고!”


보좌관과 나눈 대화가 부주의하게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 달았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영화 제목처럼 조귀언의 추락은 바닥이 없었다. 후속 방송이 나간 후에는 아예 두문불출하며 공개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헤드라인이 포털 사이트를 도배했다.


-조귀언 의원,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

-조귀언, 유서 남기고 숨진 채 발견…’성폭력 피소’ 종결 전망.


조귀언의 사망 소식이 1면에 실린 신문을 가지고 연준이를 찾아갔다. 미결수 수용복을 입은 연준이의 얼굴은 많이 까칠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편해 보였다. 신문을 펼쳐 보이며 그에게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연준이는 뉴스를 보고 잠깐 놀란 듯했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기뻐할 줄 알았더니?”

“그냥, 이제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뭐야? 그 안에 있더니 득도라도 한 거야? 에이, 재미없네.”

“춤이라도 춰야 돼요?”

“뭐, 그런 건 아닌데, 반응이 너무 시큰둥해서.”


내가 맥 빠진 표정을 짓자, 연준이가 피식 웃으며 수용복과 어울리지 않은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너무 풋풋해서 가슴이 저려왔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연준이가 조심스레 사과의 말을 전했다.


“누나, 미안해요.”


연준이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찌 보면, 진정한 피해자는 연준인데, 결과적으로, 연준이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고 말았다. 파리한 얼굴로 갇혀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괜찮다고 말해 주려던 차에, 연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었어요.”

“뭐가?”

“원래, 조하대의 타겟이 누나였다는 말이요.”

“…”

“그냥 제 계획을 말하면 안 도와줄 것 같았어요. 미영이 이모처럼 절 말렸겠죠. 그래서, 거짓말했어요. 연두 누나가 누나 대신… 죽은 거였다고. 그러니까, 혹시라도, 죄책감 느끼고 있으면 그러지 말라고요.”


화가 나야 마땅한데 그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연두가 실종된 이후부터, 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던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 나도 모르게 ‘후두둑’ 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자, 딱 봐도 당혹스러운 표정의 녀석이 다시금 사과를 했다.


“누나, 정말 죄송해요.”

“후~, 그래, 이 새끼야. 너 진짜 나빠.”

“…”

“그래도 고마워. 솔직히 말해줘서.”


녀석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모습에 그 일은 흔쾌히 잊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조귀언을 죽이려 자동차로 돌진한 날, 마지막 순간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만으로 녀석은 용서받을 자격이 있었다.


“아저씨한테도 꼭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이 사과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빠 또한 연준이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떳떳할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오히려, 아빠가 연준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너무 늦더라도, 진심을 담은 사과는 상대의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어, 전해 줄게. 근데, 나중에 네가 직접 말씀드려. 더 좋아하실 거야.”

“네. 그리고… 연두 누나 잘 쉴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세요”


연두의 부검 후, 연준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 연두의 장례식을 치렀다. 비록, 교도관의 감시 하에 제한적으로 치른 상이지만, 연준이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누나를 꺼내 아버지 옆에 묻어 줄 수 있었다. 장례식 내내, 소리 내어 울던 연준이는 어린 시절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이 같았다. 나 또한 그런 연준이를 따라 아홉살 허진희로 돌아가 꺼이꺼이 울었다. 장례식 내내 이어진 통곡과 흐느낌 후에, 스물 다섯 허진희는, 16년 동안 가슴 한 켠에 쓰라린 상처마냥 자리잡고 있던 아홉살 연두를 비로소 놓아줄 수 있었다.


“그것도 네가 직접 나와서 말씀드려.”

“네.”


면회시간이 끝날 때쯤, 연준이가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누나, 제가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어요. 이 일은 누나가 꼭 해 줬으면 해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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