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32화-포위

by 해금이

‘아니야. 아닐 거다.’


아무리 털어내도 달라붙는 먼지처럼 불길한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10년 넘게 아무일 없다가 왜 하필 지금? 설마, 그 일을 아는 사람이 또 있는 건가?’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며 그날 밤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첫 번째 인간은 조하대. 이복동생인 조하대는 뺑소니 사건을 들먹이며 죽기 전까지 나와 내 어머니의 고혈을 뽑아 먹었다. 원래, 와병 중인 아버지가 돌아 가시면 돈 한푼 없이 내쫓으려 했지만, 녀석이 사사건건 그 일을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었다.


두 번째 인간은 중국집, 만리장성 사장. 큰 돈을 쥐어 주고 입막음을 잘 해 놨다. 내 지역구에 위치한 식당이라 종종 들르며 안부인사도 주고받는 사이다. 명절마다 선물도 보내고 일부러 정치계 인사들과 의원실 직원들을 데려가 회식까지 할 정도로 관계를 잘 맺어두었다. 최근까지도, 별다른 기류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 외에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조차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을 누가 다시 들춰내려 하는가?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운전 기사가 뒷자석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의원님, 도착했습니다.”


영안실에서 이복동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근본도 없는 첩년에게서 낳아온 새끼가 맞았다. 눈앞에 이복동생의 시신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호돌이 티셔츠로 가득 차 가타부타 말할 겨를이 없었다. 이런 속마음을 알리 없는 짜리몽땅 형사는 내가 동생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의원님, 참 송구스럽습니다만… 동생분이 맞으실까요?”

“맞소. 범인은? 잡혔나?”

“네, 이웃에 사는 50대 여성입니다. 살해 동기는 저희가 알아보는 중이고요.”

“듣자 하니, 정신병자라고?”

“확실한 건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그럼, 이제 가도 되나?”

“아!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지금 범인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서 범행동기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이 여자 보신 적 있으십니까? 동생분과 사귀고 있었다든지, 아니면 이전에 알던 사이라든지…”


나와 이복동생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교집합이 있을 리 없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단란주점 전단지를 보듯 형사가 내민 사진을 무심히 훑어보았다. 갸름한 얼굴, 크지 않지만 또렷한 이목구비, 현대적이기보다 전통적인 미인상. 어딘가 익숙하지만 불편한 거부감이 드는…


‘미친년.’


그 여자였다. 그 날의 일을 알고 있는 세 번째 인간. 사건 직후, 이 여자 때문에 전전긍긍했지만, 다방면으로 조사해 본 결과, 동네에 하나쯤 있는 미친년으로 누구도 여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여자. 결국, 목격자나 증인으로서 영향력이 전무할 거라 생각해 잊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여자의 등장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죽었다고?”

“그게…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항문 부위에 심각한 열상이 발생했고 출혈이 많은 것으로 보아 쇼크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공범은 없는 건가?”

아직, 조사 중이라 조금 더 수사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기 곤란한듯 머뭇거리는 형사에게 미간을 좁히며 채근하듯 입가를 이지러뜨리자, 형사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중요부위가 절단됐는데 분실된 신체 부위가… 항문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뭐요? 하! 변태 새끼! 근본도 없는 걸 데려다 키워줬더니 죽어도 꼭 자기같이 죽네. 범인은 언제 잡혔소?”

“오늘 아침입니다.”


그럼, 택배를 보낸 사람은 이 여자가 아닌가? 택배 상자에 송장이 붙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가 직접 가져다 놓았고, 그 말인 즉, 공범이 있다는 얘기다. 그 날의 일을 아는 또 다른 사람.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은밀하게.


“그럼, 범인도 잡혔으니까 부검 뭐 이런 건 그냥 건너 뜁시다. 좋은 일도 아니고 빨리 빨리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 저… 의원님, 그게 절차 상 불가능해서요. 타살인 경우…”


융통성이라고는 빌어 먹을래도 없는 공무원 놈들. 이후에 이어지는 장황하고 뻔한 설명이 듣기 싫어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아, 그건 알았고, 대신, 이 건 아주 조용히 처리하세요. 소속이 어떻게 됩니까?”

“경기 남부 경찰서 장경수 경감입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죠?”

“네.”

“전당대회가 바로 목전인데, 뭐가 됐든 살얼음판 걷듯 조심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서장한테도 말해 둘 거지만, 외부에, 특히! 언론에 안 새 나가게 각별히 주의하세요. 그리고 수사사항은 내 보좌관 통해서 수시로 보고하도록 하고.”

“예, 의원님.”


병원을 나와 차를 타고 국회로 가는 길. 주변이 심상치 않게 요동친다는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복동생을 죽인 살인범이, 하필, 그 미친년이라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은데, 이른 아침, 호돌이 티셔츠까지 배달되었다. 모든 일이 계획된 것 마냥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일어나고 있다는 걸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차 좀 돌리지. 만리장성으로.”


두 번째 관계자인 만리장성 허 사장은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 주방에서 손을 떼더니 술에 찌들어 살았다.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에 설마했던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절대, 이런 대담한 일을 저지를 위인이 못 된다.


‘누구지?’


홀로 적의 시야에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했다. 그런 와중에 걸려온 새천년 교회의 윤본부장 전화는 더욱 화를 돋우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 날, 그 시간, 본당 안에 있던 저희 청년들 중에 의원님과 사진을 찍었던 남자 신도는 찾지 못했습니다.

-뭐요? 있는데 못 찾았다는 겁니까? 아니면 외부인이 들어왔는데 몰랐단 말입니까?

-그게… 후자 같습니다.

-교회가 신도 관리를 왜 그렇게 합니까? 무엇보다 철저하게 해야 되는 거 잘 아시는 분이!


지금도 어디선가 놈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결국,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2년 동안, 새벽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의문의 상대는 교회 본당안에서 나와 함께 사진을 찍은 남자인가?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남자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좀 더 얼굴을 자세히 봐 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당 대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중요한 시기. 동생의 사망뿐 아니라 그 미친년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새 나가면 곤란했다. 언론 매체, 경찰서, 기관 등등 전방위적으로 애쓰며 사건을 수면 아래로 감추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삐삐, 삐리리리~!”


새벽 4시 44분.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벨소리.


-여보세요?

-…

-너냐? 네가 택배 보낸 놈이야?

-…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다 해 줄 수 있어. 돈? 아니면 집 한 채 해 줘?

-….

-대답을 하라고! 이 미친 새끼야!!! 헉!헉!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나서 한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이쪽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상대는 반응이 없었다. 계속되는 침묵이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이 제 자리를 찾았다. 지난 2년간, 그토록 성실하고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그 사건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는 분명 원한 때문일 것이다. 그 원한은 단순히 돈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터. 현실을 인식시켜 주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몰랐다.


-이러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았어? 헛수고야. 아무것도 증명 못 하잖아. 네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 일은 이미 끝났고 공소시효도 지났어. 들춰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

-계속 이런 짓 하면 역추적해서 경찰에 넘길 거야.

-…


여전히 답이 없는 상대를 두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공허함과 자괴감이 들었다. 원맨쇼는 그만두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작고 미약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랬어요?


힘겹게 쥐어짜는 가냘픈 목소리가 수화기상으로 흘러나왔다. 얼핏 들어도 남자는 아니었다.


-너 누구야!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집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중간중간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원치 않게 그 날의 현장으로 나를 소환했다. 어두운 밤, 아이를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가 지하실 창고에 숨겨 두었다. 다음 날,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가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미칠 것 같았다.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할지, 아니면 마저 숨을 끊어야 할지 고민했다. 부모가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한 채 하루를 더 보냈다.


결국, 숨이 끊어진 아이를 비닐에 둘둘 말아 회사 물류창고 냉동실에 처 박았다. 부패를 막기위해 선택한 방법이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이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언제나 살펴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시신을 묻어야 했다. 고심 끝에 완벽한 방법으로 시신을 처리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왜요? 내가 살아있으니까 무서워요?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무… 무슨… 네가 어떻게… 넌 분명 죽었는데…

-아니요. 난 살아있어요. 아이들은 의외로 생명력이 강해요. 아저씨가 너무 허술하게 뒤처리를 했더라고요. 물론, 제가 살 수 있게 도와준 사람도 있었고요.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뚝!”


한밤 중의 전화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쿵쿵 요동쳤다. 전화기를 쥔 손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함정이야. 함정. 그래. 죽은 사람이 살아날 리 없지. 맞아.”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혼자 중얼거리며 거실의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가 한 말에 설득당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혹시?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니야, 그래도 만약…”


수많은 가설과 만약들이 뒤엉키며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티끌도 되지 않는 희박한 가능성을 떠올리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해도 사람들의 인기와 지지로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음주 운전 뺑소니 및 시신 유기는 치명적이다.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살아나 증언을 하면 그 자체로 증거가 된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손 안에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이건 함정이야. 덫이라고.”


여러 번 되뇌었지만, 매일 밤 걸려오는 여자의 전화는 매번 합리적인 이성을 갉아먹고 나를 신경쇠약으로 몰아넣었다. 말도 안 되는 걸 알지만, 진짜 죽었던 꼬마가 살아나 전화를 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된 바에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다.


결심이 선 이른 아침,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업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자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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