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31화-전화

by 해금이

“삐삐, 삐리리리~!”


새벽 4시 44분. 어김없이 울리는 벨소리.


-여보세요?


“뚝!”


-별~ 미친놈이! 너 누구야! 누군데 오밤중에 장난 전화야!


처음에는 욕설을 진탕 퍼 부으며 한 소리했다. 딱 봐도, 심야에 혼자 사는 여자들을 골라 장난이나 치는 한심한 부류일 터였다. 상대가 남자라는 걸 알면, 다시는 전화를 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밤중의 전화는 하루가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끊임없이 울렸다. 이젠,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이건, 필시 나를 아는 작자의 짓이다. 주변에 악감정을 가질만한 지인들을 떠올렸다. 김 사장? 박 위원장? 최 기자…? 열 손가락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손가락 접기를 관두었다.


“삐삐, 삐리리리~!”


-여보세요?

“뚝!”


또 그 전화다. 오밤중에 열불이 나서 씩씩거리니, 옆에서 자고 있던 접대부가 잠결에 묻는다.


“오빠, 누구야?”

“몰라, 어떤 미친놈이 새벽만 되면 전화를 걸어서 아주 복장을 뒤집어 놔.”

“그러지 말고 번호를 바꿔.”

“미쳤어? 이 번호가 어떤 번호인데!

“싫으면 말지, 왜 소리는 질러~!”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잠을 청하는 여자를 뒤로 하고 담배를 태웠다. 깔깔한 입 속에 담배는 쓴 맛만 맴돌았다. 매번 이런 식으로 잠에서 깬지 어느덧 2년. 이제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쯤 되면 장난을 넘어선 악의적인 공격임에 틀림없다.


안되겠다 싶어 보좌관에게 발신인이 누군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조사 결과, 전화가 걸려온 곳은 공중전화. 그것도 한 두대가 아니라 여러 대. 지역도 수도권 전 지역을 옮겨 다니며 전화를 건다. 이토록 성실하고 집요한 작자라니.


국회의원에 대한 테러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실제로 어떤 위해가 가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전화번호를 바꿔야 해결되는 문제인가? 한창 고민하는 와중에,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의원님, 접니다.

-어, 그래, 윤 본부장.

-‘어머니’께서 지금 뵙자고 하십니다.

-그래? 알겠네.


엄중한 시기에 사소한 일에 신경 쓰다 큰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법. 얼른 채비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당 대표 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당원들과 동료 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충분한 총알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뒷배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하는 법.


그간 무대뽀에 불통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면서도 언론과 정치권, 지역구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천년 교회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새천년 교회 수련원과 예배당을 짓는 과정에서 환경규제와 건축법 위반등의 문제가 터지면 이를 무마해주고 눈감아 주느라 전방위적으로 얼마나 많은 공격을 받아왔던가. 모든 수고에는 값이 따른다. 이제는 그 결실을 거둘 차례.


관용차를 타고 한참 내달린 지 4시간. 외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빽빽한 숲에 둘러싸인 건물은 은둔자 같았다. 정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니,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정원을 관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들을 지나쳐 본당 안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뒤로 꺾어서 봐야 할 정도로 높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교복처럼 입은 청년들은 본당에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내부를 쓸고 닦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많은 인원. 이곳이 진정한 표밭이구나 싶어 내심 흐뭇해졌다.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민원을 청취하는 것은 홍보용 사진을 찍을 때만으로 충분하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큰 조직의 우두머리 하나만 공략하면 된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 선택과 집중인가.


새천년 교회의 ‘어머니’가 사용하는 집무실 앞. 윤 본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실로 나를 안내했다. 한 번도 공개행보를 한 적이 없는 새천년 교회의 실세, ‘어머니’와의 첫만남.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어머니’ 앞으로 나아갔다. 구두와 대리석 바닥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에 긴장이 더해졌다.


육중한 마오가니 책상 너머로 높은 등받이 의자의 뒷면이 보였다. 몸집이 작은 지, ‘어머니’의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어머니’ 앞에 서자, 윤 본부장이 귀엣말을 하려는 듯 허리를 숙여 조심스레 그녀에게 속삭인다. 그러자, 빙그르르 돌아선 의자.


“…!”


당혹스러웠다. 분명, 나이가 지긋하게 든 귀부인을 상상했는데 상대는 젊은 여자였다. 얼핏 보면 30대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50대 같기도 한 여성.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동자는 이내 앞에 나타난 커다란 쇼핑백 2개에 안정을 되찾았다.


“저희 교회를 위해 많이 애써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 드려요.”


세종대왕이 차곡차곡 들어간 쇼핑백은 꽤 묵직해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큰절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의논해 봐야 겠지만 앞으로 의원님이 하시는 만큼 드릴 거예요. 잘하면 1억도 줄 수 있어요.”

“명심하겠습니다.”


환담을 나누고 집무실을 나오는 길. 모나미 교복을 입은 남성 한 명이 다가왔다. 약간은 통통한 몸집에 서글서글해 보이는 남자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의원님, 제가 의원님 팬인데 사진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양 손에 들린 쇼핑백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한 식구인데 거리낄 것은 없었다. 기분 좋게 사진 한방 박아주니, 90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청년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친다. 기분 좋은 날이다.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았던 기분은 새벽 4시 44분에 어김없이 깨졌다.


“삐삐, 삐리리리~!”


-너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아? 잡히기만 하면 아주 가만 안 둬!


“뚝!”


신경을 갉아먹는 전화에 머리 뚜껑이 열리며 온 몸이 불같이 달아올랐으나, 이른 아침 무기명으로 배달된 우편 봉투에는 피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봉투 안에는 어제, 새천년 교회 본당 안에서 돈봉투 쇼핑백을 들고 있던 내가 찍혀 있었다. 교묘하게 같이 찍은 청년의 얼굴은 지워지고 나와 쇼핑백안의 돈만 부각된 사진. 입이 말랐다. 곧장, 윤 본부장에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전송해 주며 내부에 첩자가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윤 본부장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옷차림을 보니, 저희 교회 사람이 맞기는 한데… 혹시, 이름은 모르세요?

-내가 어떻게 압니까? 팬이라고 하면서 사진 한 장 찍자길래 찍어준 게 다요!

-하… 참, 내부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없는데…


나와 달리, 여유로운 윤 본부장의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다. 행여나, 나를 길들이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어 확실히 해 둘 요량으로 경고하듯 말했다.


-윤 본부장, 그 동안, 내가 새천년 도와준 거 밝혀지면 나만 죽는 거 아닙니다?

-일단, 그 신도가 누구인지 조사해 보겠습니다.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 드릴 테니 심려 마십시오.


고지가 눈 앞인데 이딴 일로 무너질 수 없다. 아침 식탁,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가며 분노를 삭이고 있는 중에 마누라가 한심한 눈초리로 묻는다.


“또 어떤 년이 협박했어? 이번엔 뭐야? 임신? 아니면 잠자리 사진?”

“그런 거 아니야!”

“설마, 또 여비서 추행했어?”

“거참! 아니라니까!”

“마지막이야. 더 이상 추잡한 소문 나면, 당신… 목숨으로 책임져야 할 거야.”


오뉴월 서리보다 매서운 마누라의 경고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한다면 하는 여자. 고위직 공무원을 지낸 장인의 위세를 등지고 오랜 세월 나를 쥐락펴락 했다. 무엇보다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이 여자는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내 명의로 된 재산을 그녀의 명의로 차곡차곡 이전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이전하다 보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청렴한 국회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이다. 제 아무리 고매한 집안 딸이라도 당대표를 거머 쥐면 나에게 뭐라고는 못할 것이다. 사회적 지위 또한 그녀가 중시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할말은 많지만, 아직은 일렀다. 조용히 국에 밥을 말아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가정부가 택배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의원님 앞으로 왔는데 보낸 사람 이름이 안 적혀 있네요?”


송장도 붙어있지 않은 상자. 불길한 예감에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뭐야? 이게.”


상자 안에 든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념으로 만들어진 호돌이 티셔츠였다.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유행 지난 티셔츠. 그것도, 성인용도 아닌 아동용이다. 상자 안에 티셔츠를 제외하고 그 어떤 메시지도 들어있지 않았다. 발신인 불명의 불쾌한 택배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의원님, 지금 바로 경기 병원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동생 분이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유가족의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통화를 종료하자, 눈치 빠른 마누라가 물었다.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봐?”

“애물단지가 죽었어.”

“축하해, 오늘은 넥타이 없이 어두운 계열의 양복이 어울리겠네.”


갑작스러운 비보 덕분에, 우리 부부는 기분 좋게 아침 식탁을 마무리했다. 관용차 뒷좌석에 앉아 병원으로 가는 길.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경찰서에 있던 보좌관으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았다.


-어떻게 뒈졌다고?

-타살입니다. 이웃 주민한테 살해당했는데 정신이 좀 이상한 여자랍니다.

-그래? 그럼, 정신질환자 안전관리, 피해방지법 있잖아, 그런 비슷한 걸로 법안 하나 만들어 봐. 동정표 좀 나오겠네. 내일까지 초안 작성해 놔.

-알겠습니다.


오밤중의 장난 전화, 새벽에 도착한 돈다발 수수 사진, 발신인 불명의 호돌이 티셔츠 택배 그리고 이복 동생의 사망. 연이어 몰아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니,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스르르 눈이 감기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가늘고 연약한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로 짐작컨대 어린 소녀 같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하며,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 뭘 하고 있지? 불안하다. 왜지? 쫓기고 있나? 금방이라도 다른 사람이 나타날까 작은 소리에도 선뜩선뜩 놀라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는 사이,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 댔다. 무언가를 제 시간에 완수해야 하는 사람처럼 초조함에 시달리는 나.


꿈이라는 걸 알지만, 조여 드는 압박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누군가 목을 틀어쥔 듯 숨이 막힌다. 정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하자,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두려움의 대상을 직면했다.


-너 누구야!

-크크크크.


웃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저 완벽에 가까운 어둠만이 있었다. 마치, 우주 한 가운데를 유영하듯 밑도 끝도 없는 공간에 버려진 기분. 원초적인 두려움에 압도되어 공황상태에 빠지려는 찰나,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한 치 앞에 보였다. 천천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손에 닿은 익숙한 감촉에 서서히 안정감을 찾으며 수중의 물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호돌이 티셔츠…


“헉!”


발작하듯 꿈에서 깨 두 눈을 부릅떴다. 생각났다. 호돌이 티셔츠.


‘과거... 죽 아이가 입었던 옷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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