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studio 2021] 모래 속 진주를 찾아서

내 생애 가장 평범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

by bang

결국 똑같은 하루일 뿐이지만, 12월의 마지막과 1월의 처음은 괜한 설렘과 따뜻함을 불러오곤 한다. 지난 한 해는 이랬노라며 너스레도 떨어보고, 내년은 이럴 것이라며 기대감과 설레발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올해’이기에, 그걸 떠나보내기 싫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즌이다.


그러나 나에게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19로도 모자라, 델타라느니 오미크론이라느니 끊임없는 보스 몬스터, 아니 변이 몬스터들이 등장한 2021년은 ‘코로나 종식이 오기는 할까’라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육군 장교로서 보직 이동 없이 1년 내내 같은 일을 하면서 각종 매너리즘에 휩쓸리기도 했다. 환경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변화가 없던 한 해였기 때문에 단연코 25년의 삶 중에서 가장 평범했던 1년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는 오지 않은 2021년의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하고, 남기고, 또 자랑하기 위해 [bangstudio 2021]이라는 쓸데없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다른 시간을 보낸 당신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공감과 향수를 느끼길 바란다. 그럼 지금부터, [bangstudio 2021]을 시작한다.



올해의 순간

6월 18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올해의 순간은 6월 18일이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날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19의 종식과 동시에 마스크 없는 2022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7월 9일 2차 접종을 맞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무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12월 22일 부스터 샷을 접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Christmask”에 이어, 이제는 마스크 없이 2023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해진 것 같다.

어느덧 2년째, 세상과 우리는 많이 바뀌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도 하나둘씩 발견하고 있다. 비대면으로 친구들과 맥주와 수다를 즐기고, 드물어진 만남 한 번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집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불굴의 노력을 펼치는 사람들도 많고, 가족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이어지고 있다. 여러분들도 이 시기를 그저 ‘코시국’이라는 단어로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늘 그랬듯 순간순간의 즐거움에 함께 웃으며 해답을 찾아나가기를 소망한다.



올해의 영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얼마 만에 느낀 영화 보는 재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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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은 열광으로 인해 비판이 묻혀있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흔히 이야기하는 개연성의 문제 이외에도, 멀티버스의 개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시각효과나 완성도의 희생을 감수한 것은 눈에 띌 정도로 자명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에 오른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즐거움'을 되살렸기 때문이다(완성도를 따졌다면 <듄>을 선정했을 것 같다). 관객석이 가득 찬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 관객들의 탄성과 환호성을 함께 들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즐거움은 한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이기도 하고, <스파이더맨>이 아니고서야 한동안 느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떠나, 팬데믹 속 극장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을 올해의 영화로 선정한다.



올해의 음반

Parcels - Day/Night

: "드디어 돌아온 명불허전 그들"

가장 많은 고민을 한 부문이지만, 덕심에 충실하기로 결정했다. 호주에서 부활한 비틀즈 등의 수식어가 없더라도, 나의 취향과 너무도 가까운 음악을 하는 밴드다. 2018년 <Parcels> 이후 3년 만에 공식 앨범을 출시했다. 각종 티저와 선공개 곡들로 온갖 애간장을 태우더니 보란 듯이 명반을 들려준다. 한 편의 영화를 듣는 듯한 시네마틱한 기승전결이 완벽한 앨범이 아닐까... 하는 평론가적인 원초적 평을 내리고 싶다.

내 최애곡은 8번 트랙, <Daywalk>


마지막까지 엄청난 고민을 하게 한 강력한 경쟁자는 아래와 같다(머릿속에 생각난 순서대로).

1. Adele - 30

2. Coldplay - Music of the Spheres

3. 백예린 - 산책

4. John Mayer - Sob Rock

5. Jade - Hometown



올해의 시리즈

<오징어 게임>

: "이것이 K-드라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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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의 멀티버스를 열어 낸 <로키>냐, K-드라마의 매운맛을 보여준 <오징어 게임>이냐... 고민이 많았으나, 비슷한 이유로 올해의 영화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선정된 만큼 올해의 시리즈는 이렇게 선정했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펼쳐지는 개꿀잼 몰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전례 없는 흥행과 화제를 몰고 왔고, 몰아보기나 정주행과는 거리가 먼 내가 '올해의 시리즈'를 선정할 정도로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직업 특성상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데, <오징어 게임> 덕에 전통놀이를 가지고도 놀라운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혹여나 외국의 친구들과 소통하게 된다면, 단연코 나의 조국을 설명할 "두 유 노" 시리즈에 당당히 합류한 신입이기도 하다.



올해의 지름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 "컴퓨터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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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What's a computer?"라는 카피를 아이패드 광고에 사용했을 때, '그래도 컴퓨터랑 태블릿은 엄연히 다르지'라고 생각했다. 아이패드를 사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태블릿의 가능성은 높았고, 어느 정도(혹은 그 이상)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해있었다. 카메라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바로 불러오고, 뛰어난 <파일> 앱으로 정리하고 편집한 뒤 공유하면서, 동시에 카톡과 데스크톱 수준의 웹서핑도 가능했다. 노트 필기와 독서까지 아이패드가 대체하면서 노트북을 챙기는 날이 적어지기 시작했고, 심심할 때는(이라 쓰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이라 읽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머신의 노릇도 톡톡히 했다. 최근에는 단순한 선 따기에 불과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에도 흥미가 생겼다. 다양한 영화의 명장면들을 그려내는 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비싸지만 애플은 돈값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올해의 지름은, 누가 뭐래도 아이패드 프로에게로!



올해의 공간

망원동 <녹턴사카바>

: "추워지면 내가 생각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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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질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트렌치코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할 시기에 발견한 곳이었다. 유난스레 한적했던 망원동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갔던 <녹턴사카바>는 단연코 올해 방문한 공간 중 가장 선명한 첫인상으로 남아있다. 꽤나 풍부한 음역의 재즈 음악과 티베트에 온 듯한 묘한 인센스 향, 벽에서 재생되는 영화(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와 술의 맛까지. 함께한 친구와 감탄을 멈추지 못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언제든, 특히 추울 때 즈음에는 이곳이 생각날 것 같다.

아, 가장 중요한 내용을 빼먹었다. 추천 메뉴는 미소크림치즈 크래커! 단돈 8,000원에 행복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녹턴사카바>

서울 마포구 동교로 37

17:00 - 02:00 (매주 화, 수 휴무)

instagram: @noxsakaba




"모래 속 진주를 찾아서"


올해를 결산하며 내린 총평이다. 내 삶에서 가장 평범한 한 해라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도 진주와 같은 추억들이 참 많이 남아있었다. 진주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평범했던 올해에도 진주 같은 경험들이 있던걸 보면, 언제나 우리는 진주를 만들어내기 위해 평범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더욱 즐거운 22년을 위해 21년은 조용하게 양보한 것처럼 말이다. 평범했든, 화려했든 상관없이 여러분들의 21년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오래오래 추억되기를 바라본다. 또, 내년만큼은 더 자유롭고 즐거운, 더 화려한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올해 말, 한 친구에게서 들은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의 내년은 한계가 없는 한 해가 되길!

(찾아보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의 발언인데, 친구에게 들은 대로 그리고 조금 더 극적으로 수정해서 적는다)


부정적인 사람은 한 게 없고, 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다.


21년 12월 30일,

bang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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