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를 보고
★★★★☆
뚝심있는 뇌절은 예술이다
믿음을 배신당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다섯 단계로 정의된다.
부정, 분노, 우울, 타협, 인정.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데미 무어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믿음을 배신당했다. 모든 후보의 연기를 관람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확신이 근거 없는 위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브스턴스>에서 데미 무어의 연기를 이기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쓰고 보니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듯하다.
아래는 분노의 서브스턴스 관람평이다.
<서브스턴스>는 흔히 '뇌절'로 치부되는 이른바 '맥시멀리즘'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도입부가 이랬다. 수많은 시각 요소와 짧은 컷편집이 정신없이 휘몰아친다. 관객을 '바빠 죽을 것 같은' 주인공과 동일한,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뜨린다. '에·에·올'의 맥시멀리즘이 도입부에 적용됐다면,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과한 촬영과 편집, 분장과 미술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게 참 매력적이다.
촬영·편집 측면. 영화 초반부는 창의적인 촬영 구도와 스토리텔링을 담은 편집이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하비가 소변을 누는 장면은 어디서도 못 본 구도다. 과한 클로즈업이 하비의 캐릭터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비가 새우를 먹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짜증 날 정도로 더럽게(진짜 드럽다) 표현된다(이 시퀀스는 감탄하며 봤다). 음소거로 영화를 보더라도 하비의 캐릭터성이 파악 가능할 정도다. 다시 말해 구도와 편집이 과하지만, 그래서인지 그 자체로 스토리를 전달한다.
편집은 시원시원한데, 딱히 관객에게 의구심을 주지 않는 점도 훌륭하다. 한 사람인 걸 망각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스파클과 수의 모습은 자칫하면 의문이 들 법도 한데, 그 갈등에 오히려 공감이 된다.
전개는 시원시원하지만 캐릭터 형성에는 신중한 공을 들인 덕이다.
자존감을 잃은 스파클이 고민 끝에 '예뻐지는 약'을 이용하는 이야기 구조는 특별할 게 없다. 비슷한 스토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특별한 건, 영화가 다양한 장치를 통해 스파클의 불안함에 깊은 공감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가령 스파클과 수의 같은 행동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똑같은 행동을 하는 스파클을 다르게 묘사하는 식이다.
스파클이 서브스턴스 약물을 받으러 위축된 채 걷는 장면과 수가 비슷한 길을 당당하게 걷는 장면이 대비되는 게 둘(이 아닌 하나지만)의 갈등을 잘 상징한다. 또 스파클이 길을 걷는, 그러니까 같은 장면의 반복인데 갈수록 카메라워킹이 달라지고, 똑같이 들리던 경적 소리와 개 짖는 소리 등이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분장을 비롯한 미술도 과하지만 장치로써 역할을 다한다.
나는 '고어' 정도의 단어는 써봤지만 '바디 호러'는 난생처음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왜 호러인지 알았다. 단순히 잔인하고 피가 많이 나오는 걸 넘어서 무섭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긴장한다. '으...'를 연발하며 봤다. 등이 찢어지는 장면은 양반이다. 그걸 다시 꿰매고, 안정제를 뽑기 위해 척수에 주사기를 꼽는 장면은 눈 뜨고 못 봐주겠더라.
그럼에도 이러한 장면들이 좋았던 건 '잔인함을 위한 잔인함'이 아니라서다. 의미 없이 잔인함을 표현하는 장르물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는 잔인함이랄까.
서브스턴스에서 잔인함은 곧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절박함의 수준과 비례한다. 미칠 듯 고통스럽지만 예뻐지기 위해 척수에서 안정제를 뽑고, 무릎이 늙어 부러지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워지기 위해 균형을 무너뜨린다. 3막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몬스트라-엘리자-수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얼굴에 스테이플러를 박는다. 잔인함은 아름다워지고픈 욕망이다. 끝없는 욕망을 표현하려면 끝없이 잔인해져야 한다. 영화 후반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핏물은 곧 폭발하는 욕망이다.
뚝심 있는 뇌절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세상에게 거절당한 사람들의 반응도 다섯 단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정, 분노, 우울, 타협, 인정.
기득권이자 세상의 기준, 하비에게 거절당하고 쫓겨 난 스파클의 반응도 이 과정을 거친다. 왕년의 기억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고 싸워보고도 싶지만,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서브스턴스 광고를 접하고는 타협한다. 세상의 기준에 꼭 맞는 수로 다시 태어나고, 그 삶에 빠져버리고 만다.
"Take care of yourself"를 외쳐댔지만, 본인을 챙기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수의 관점으로 봐도 다섯 가지 단계가 보인다.
스파클과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기 시작하자 이내 아름다움을 유지하지 못하는 스파클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자기 자신인 스파클을 죽도록 패기까지 한다. '예쁜 여자는 웃어야지'라는 세상의 틀에서 자기가 벗어나기 시작하자 또다시 현실을 부정하면서 괴물이 되고야 만다. 그리고는 괴물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쳐버린다. 일종의 타협(혹은 합리화)을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결국 마지막 단계는 인정이다.
내가 세상의 틀에 맞지 않는구나, 인정하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스파클은 본인 왕년의 상징, 명예의 전당 위에서 녹아내리며 결국 그 영광이 왕년의 것일 뿐임을 인정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음악과 함께 무대 위에 등장한 몬스트라-엘리자-수도 인정의 상징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 문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검정 비석처럼, 그녀도 인정하고 살아가는 모습의 시작을 내포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