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강렬한 시작

by bang

2026년의 첫 달이 지났다. 내 감상은 여러모로 1월이 강렬했다는 것.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몇 가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오랜 기간 꿈꾸던 CES에 가기도 했다. 돌이켜봐도 참 다양한 경험을 쌓은 첫 달이었다.


시작이 좋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1월 1일 새벽에 찍은 올해의 첫 사진이다. 시작부터 이렇게 강렬할 수가 있으려나.

부모님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돌아왔더니 도어락이 고장 나있었다. 결국 부엌의 작은 창으로 엄마를 통과시켜서 겨우 집에 들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벽을 기어오를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저 창이 내가 통과하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 정신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자고 일어나서는 부모님과 보령 번개를 떠났다. 목표는 하나, 굴을 먹기 위해서였다.

가는 길에 현지가 추천한 우유창고라는 카페 겸 유가공업체가 있어 방문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커피 하나 받는 데 4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기에 젖소나 보다 왔다. 아빠는 차에 있겠다며 대기...


그리고 천북 굴단지를 찾았다. 날이 몹시 추웠지만 깨끗한 하늘과 바다를 보면서 1월의 운치를 즐겼다.

단순히 굴을 취급하는 식당이 모여있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굴 축제를 본격적으로 여는 곳이어서 놀랐다.


그리고 먹은 굴찜. 수많은 식당 중 내 이름과 비슷한 훈이네 굴 수산으로 결정했다.

본래는 굴구이를 먹고 싶었으나, 담합이라도 한 듯 굴단지에서 굴구이는 취급을 안 한다더라. 추측하기로는 구이는 품도 많이 들고 회전율도 떨어지니 찜만 취급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굴찜으로 굴을 20마리 가까이 먹었던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굴은 비리기에 먹지 않던 나였는데...


뭔가 정초 루틴으로 삼고 싶어진 천북 굴단지였다. 거리가 멀어 그렇게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그리고 돌아와서 현지와 양재에서 만났다. 나는 이발도 하고 CES 참관에 필요한 여권 사진도 찍은 뒤였다(정확히는 참관 중 예정된 드라이빙 프로그램을 위한 국제 운전면허 발급에 필요했는데, 이 얘기는 아래에 있다).

오랜만에 분식을 먹고, 집 앞에 있는 카페임에도 한 번도 안 가봤던 콘 띠오를 찾았다. 새로운 장소를 개발하는 건 설레면서도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다. 콘 띠오는 대성공. 분위기가 조용해 집중하기도 좋고, 콘센트와 넓은 테이블 등이 넉넉히 준비돼 있어 이 뒤로 가끔 들러 작업을 하곤 한다.


동네에서 꽤 맛난 포케집까지 발견했다!


주말에는 현지와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내가 만들어 먹이고), 광교 데이트도 했다.

광교의 압도적인 도서관 사이즈에 한번 놀라고, 그 공간 활용의 비효율성에 또 한 번 놀라고, 광교에 이토록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마지막으로 놀랐다.


이후에는 현지와 카페에 가서 각자 할 일을 했는데, 난 이때 <룩 백> 만화를 완독했다(완독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단편이었지만). 올해 처음 읽은 책, 참 좋았다!!


이 날은 주말이었던 것 같은데, 콘띠오에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먼저 미뤄왔던 bangstudio awards 노션을 제작해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하나의 마일스톤은 이날 프로포즈 영상을 85% 정도 완성했다는 것. 영상에 손 편지를 담는 형태로 만들려다 보니 꽤나 품이 많이 들었다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는다 생각하니 글이 술술 써졌달까.


이어서 동네 정육점에 (처음으로)들러서 고기를 좀 샀다. 집에서 제육볶음을 해 먹었는데, 아 요리가 정말 재밌구나 싶었다. 소스를 만드는 재미에 빠지는 요즘이다.


다음 날인 월요일에는 출근했다가 CES 참관단 출국을 위해 공항을 향했다. 사실 이 날의 의의는 출국보다는 프로포즈 반지 구매에 있던 것 같다.

지난 11월 마르세유 출장 때 티파니 매장에서 결혼반지를 미리 봐두고, 원하는 제품이 들어오면 알려달라 한 상태였다. 출국 일주일 전 즈음에 연락이 와서 구매할 제품을 봐두었고, 이 날 결제와 수령을 한 것.


생애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제대로 보는 거라 넋을 좀 놓았던 것 같다. 정신 차려보니 손을 덜덜 떨면서 결제하고 있더라… 아무튼 그렇게 4박 6일의 CES 참관단 출장(이자 다이아몬드 반지 공수기)이 시작됐다.


출국하는 비행기에서는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을 읽었다. 가족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보다 가족이란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라스 베가스는 정말 화려했다. 낮임에도 마천루들과 베가스 스피어, 햇빛보다 밝은 각종 조명들이 가득해 시선을 빼앗겼다.


첫날에는 택시로 라스 베이거스 일대를 돌아다녔다. 당연히 돌아다니는 게 목표는 아니었고, 미국에 온 만큼 인 앤 아웃 버거를 먹으러 간 것.


도시만큼이나 음식도 화려하구나, 느꼈다. 고기, 치즈, 소금, 감자튀김의 기름기 등등 모든 게 과하다.

웬만한 건 잘 먹는데… 남겼다.


도시 산책도 하고, 카지노 구경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뒤이어 CES 행사장을 참관하러 가기 위해 베가스 루프를 처음 타보는데… 너무나도 듣도보도 못한 유형의 교통수단인지라 평을 내리기조차 어렵다. 확실한 건 그 편리성이 대단하다는 것!


베가스 루프 직캠


아틀라스의 화려한 데뷔!

CES 행사장에서는 단연코 올해 볼 것이 가장 많았던 우리 회사 부스도 구경했다. 코르티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SPOT들부터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실용적일 것 같은 아틀라스의 움직임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출장 직원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베가스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타코스 엘 고르도’의 타코.

압도적인 스케일로 숯불에 고기를 굽고, 또르띠아도 직접 반죽해 현장에서 굽는 모습에 군침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넓은 철판에 마지막 고기를 올린 뒤 처음 올린 고기를 뒤집으면 이미 한쪽 면이 다 익어있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올리는 게 감동적이었다.


출장 중 최고의 경험은 단연코 ‘드림 레이싱’.

내가 살면서 언제 페라리를 몰아보겠는가? 꿈만 같던 경험을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했다.

트랙에서 전문 인스트럭터의 지시를 받으며 GT 차량을 운전했고, 포디움에도 올랐다!


지금도 트랙에서의 기억과 배기음이 생생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드라이빙이 올해의 콘텐츠가 되는 거 아닌가 심히 우려될 정도다.


그리고 시내도 돌아보며 찍은 사진들! 많이 걷고, 돈도 많이 썼다.


무엇보다 내 높은 기대감을 완벽하게 충족해 준 스피어에서의 경험이 참 좋았다. 라스 베가스 그랑프리의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외관만 봐도 감동적이었는데, 내부에서 보니 그야말로 콘텐츠에 압도되는 경험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일 하고 윤환이 형에게 맛있는 음식도 얻어먹고…


쇼핑도 하고(뽁뽁이 신발도 샀다) 호텔 바에서 시간도 보내고…


다시 전시장 투어도 돌았다. 이 날은 관람객이 많이 빠진 상태라 조금 더 여유 있게 전시장들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으로 간 센트럴 전시장에서 맥라렌 F1팀의 차도 봤다! 때마침 주황색 옷을 입고 있었네…


돌아와서는 가장 당기던 라면을 기깔나게(파기름 내고 등등…) 끓여 먹었다.

그리고 사 온 뽁뽁이 기념품들!


귀여운 애도 한번 자랑해고.


그리고 보고 싶던 사람 만나기!

이때부터는 내 머릿속이 ‘프로포즈를 들키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꽤나 가득했다.

문제는 이 뒤부터 갑자기 현지가 내 노트북을 빌려달라거나, 핸드폰 앨범을 본다거나(프로포즈 영상 있는데...) 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날들이 간혹 있었다는 것.


일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기도 했고(지구야... 진짜로 미안해)...


직모 현지 씨를 만나기도 했는데...

이 날은 좀 황당한 이유로 싸우고 두쫀쿠를 만들러 가기도 했다. 시각차, 관점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날.


망원동 핫플레이스 <이세상괜한걱정>도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대화를 하고 싶다면 이곳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지와 와인 한 병을 나누며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아마도 프로포즈를 안 들키기 위한 병훈의 눈물겨운 대화쇼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노워리살롱> 브런치: https://brunch.co.kr/@conan65/7


이제 아마 프로포즈 주간이었던 것 같다. 현지의 친구인 은주 님께 밥을 얻어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 그래서 진지하게 만나는 거예요? 얼마나 진지하게 만나는 거예요?'라는 단도직입 질문. 프로포즈 직전이라 당황하며 '네...'라고 했던 것 같다.


새해 기념 전자제품 지름, 전자책 오닉스 포크6도 도착했다.

지금까지 한 달여 써보며 느낀 건 확실히 책을 읽게 된다는 것.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가볍게 책을 읽게 된다. 독서의 접근성이 낮아진달까. 근데 묘하게 집중이 안된다. 숏폼 영상에 뇌가 절여진 것 같기도 한데... 독서량 늘리기가 올해의 목표 중 하나인만큼 계속 노력을 해봐야지.


그리고 1월에 하이라이트, 프로포즈 디데이가 밝았다.

망원으로 현지를 데리러 가는 픽업 서비스를 제공했다. 내 모습이 여유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글보다는 사진으로 대체하려 한다.


짧은 결론은, "She said YES!" 하얏트 데판에서 정말 맛있게 밥 먹고 프로포즈에 성공했다.

데판의 와인 페어링은 정말 기가 막혔다. 풍부한 맛의 샴페인부터 흙냄새나는 와인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 높은 와인들을 마실 수 있어 참 좋았다.


집에 있는 바질 재배를 포기하고 루꼴라를 심기도 했다.

바질은 향도 좋고 잘 자랐는데, 결정적으로 활용도가 부족했다. 내 요리 습관을 생각했을 때 루꼴라 재배가 더 합리적인 것 같아 노선을 틀었다.

글을 쓰는 2월 말 기준 아직까지 떡잎 상태라 조금 아쉬운데, 첫 수확을 하게 되면 지면을 할애해 봐야겠다.


서강대-현대차·기아 향우회와 유즈유를 찾기도 하고(와인을 너무 마셨다)

신수동 친구들과 강남에서 밤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프로포즈 혐오론자 김병훈의 프로포즈 후기, 결혼이란 뭘까 등등에 대한 종합 고찰을 나웠다.


현지와 본격적으로 결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게 아마 올해를 가득 채우는 콘텐츠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즐거운 콘텐츠와 논의가 많이 진행됐는데, 앞으로는 또 얼마나 재미있을는지 기대된다! 화이팅!


네... 뭐 일도 했구요...

(사실 일보다 두쫀쿠 먹기에 집중했던 날)


현지 집에 인사를 가기도 했다. 현지 말대로 이날 마석에서 가장 긴장한 사람은 나였을 거다.

구두를 반딱반딱 닦고, 잔뜩 긴장해 눈도 굴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기도 했지만 따뜻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가족 만들지 장기 프로젝트를 더 재미있게 잘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1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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