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먹은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애완동물 가게로 갔다. 딸은 기니피그를 기르고 싶다고 졸랐다. 마침, 예쁜 털옷을 입고 있는 기니피그 두 마리가 있었다. 그들의 왕성한 번식력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성별은 우리에게 무척 중요했다. 그들이 새끼를 낳아 기니피그의 수가 많아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기니피그들의 성별을 감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다행히도 두 놈 다 수컷이며 한 배에서 동시에 태어난 형제라고 말했다. 딸과 나는 기니피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 유리로 된 널찍하고 예쁜 집을 맞춰주었다.
온 가족의 기니피그 사랑이 시작되었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아이들은 부엌으로 들어와 당근 껍질이며 배추 등을 기니피그의 집으로 날랐다. 우리의 사랑을 먹고 기니피그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들이 다 자랐나 싶어졌을 때 한 녀석이 유독 먹이를 많이 먹고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한 놈만 너무 많이 먹어대는 바람에 다른 한 놈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에 물을 마시러 방을 나갔던 남편이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더니 나를 급히 불렀다.
“여보, 여보, 여기 좀 나와 봐요. 기니피그를 왜 네 마리나 더 샀어요?”
남편은 기니피그 집 앞에서 놀란 얼굴로 그들을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뭔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기니피그 집 앞으로 다가갔다. 웬 회색 털을 가진 조그만 녀석 네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머머머! 얘들은 뭐지? 너네는 누구야?
새끼 기니피그였다. 순간 흘깃 본 뚱뚱이 기니피그의 배가 홀쭉해져 있었다. ‘아…, 이럴 수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기니피그를 사 올 때 둘 다 수컷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황당할 수가!
우리는 에미, 애비 기니피그를 분리시켰다. 에미는 새끼들과 함께 있게 했고, 애비는 혼자 따로 두었다. 이미 여섯 마리로 불어나 버린 기니피그 수가 더 늘어나면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생이별시킨 게 미안해서 가끔씩 우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섯 마리 모두를 같이 있게 해주었다. 아…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미 기니피그의 배가 다시 불러오기 시작하더니 여섯 마리를 또 낳았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여섯 마리가 각각 다른 색, 다른 무늬의 옷을 입고 있었다. 예뻤다. 그런데 궁금한 건 도대체 이번 새끼들의 애비는 누구란 말인가? 새끼를 낳자마자 분리시켰던 에미, 애비 아니었던가. 에미와 그 새끼들을 같이 두었을 뿐인데.... 그럼 근친상간? 동물들의 세계니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맹랑한 녀석들 같으니라구! 이제 이 열두 마리가 두세 배 아니 열 배로 불어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조금만 지나면 우리 집이 기니피그로 꽉 찰 판이었다.
가족회의가 소집되었다. 기니피그의 성별을 감식할 능력이 없는 우리로서는 딱 한 마리만 키우든지, 다 다른 곳으로 보내든지 답은 둘 중 하나였다. 한 마리만 키운다는 것에는 모두가 반대였다. 왜냐면, 한 마리는 너무 외로울 테니까. 그렇다고 성별도 모르는 두 녀석을 같이 두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다음번 기회가 될 때 강아지를 사주겠노라 딸을 달래서 마침내 다 입양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우리 모두 너무나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마리는 젊은 부부가 데려갔고, 네 마리는 여대생 두 명이, 나머지 여섯 마리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 우리가 맞춰주었던 유리 집 및 기니피그 용품까지 다 가져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니피그의 흔적을 기억 속에서만 갖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어젯밤에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내 차 자리는 정해져 있다. 장애인용이라 아무나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차 옆자리를 아주 선호한다. 내 자리의 왼쪽은 주차 자리가 아닌 빈 공간이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주차선보다 조금 더 왼쪽으로 차를 붙여 주차한다. 그러기에 내 오른쪽 자리에 주차하는 사람은 주차하기 쉽고 타고 내리기도 편하다. 그런 내 옆자리가 빈 걸 보더니 남편이 자기 차를 내 차 옆으로 옮길까 내게 물었다. 남편 차를 보니 괜찮은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 자리도 좋은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남편 왈,
“또 알아? 당신 차와 내 차를 나란히 세워 놓으면 둘이서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작은 차가 하나 생겨날지…”
거 참, 싱겁기는……
남편의 그 말에 기니피그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