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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알

by 김봄빛



우리집이 대구로 이사 갔을 때부터 우리 동네에는 영아네 가족이 살고 있었다. 영아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란히 1학년 1반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영아 엄마는 이따금 우리 집에 와서 엄마와 얘기도 나누고 돌아갈 때면 들고 온 통에 무언가를 채워가곤 했다. 영아네 적산가옥은 우리 집보다 컸고 우리 집 마당보다도 더 큰 마당에는 봄이면 딸기가 자랐고 아이 네 명이 둘씩 마주 보고 탈 수 있는 철제 그네도 있었다. 영아가 막내였고 언니 둘에 오빠도 하나 있었다. 영아는 조용하고 가녀렸다. 큰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고 안색이 파리한 것이 제 엄마와 똑 닮았었다. 영아 엄마는 늘 무릎과 발목 사이 길이의 긴 치마와 옅은 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파마기 없는 긴 머리는 느슨하게 뒤로 묶어 우아해 보였다.


영아와 나는 항상 같이 걸어서 하교하였다. 하굣길에 영아 엄마는 수가 놓인 예쁜 양산을 들고 딸을 마중 나와 그녀에게 양산을 씌워 집까지 데리고 가곤 했다. 나도 동네에서 꽤 공주(?)였는데 영아는 나보다 더 공주 같았다. 우리 엄마는 양산을 가지고 나를 마중 나오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영아 집에 놀러 갔던 어느 날, 저녁나절이 채 되기 전이었다. “정현아, 저녁 먹고 갈래?” 영아 엄마는 이미 이른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 놓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냉큼 “네”라고 대답했고 그 집 가족들과 한 상에 둘러앉았다. 메뉴는 수제비였는데 우리 집에서는 잘 안 해 먹는 음식인 데다 친한 친구와 그 가족들도 함께 먹어서인지 참 맛있었다. 더 먹고 싶었지만 물어보지도 않는데 더 먹겠다고 할 수도 없어서 어린 나이에도 아쉬웠던 기억이 늘 있었다. 우리 집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 영아네 집에서 수제비를 먹고 왔다고 하자 엄마는 앞으로 그 집에서 뭘 먹고 오지 말라셨다. 왜냐고 묻자 ‘남의 집에서 밥 먹는 거 아니야’라고만 하셨다. 그 뒤로도 영아 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통을 들고 오셨고 어느 날 나는 엄마가 마당에 묻어 둔 독에서 배추김치와 무 섞박지를 꺼내 그 통에 담는 걸 보았다.


내가 3학년이 되자 영아네는 이사 갔다. 엄마는 한동안 영아 엄마랑 연락을 주고받는 듯했다. 내가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우연히 영아네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엄마는 그간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아의 집은 형편이 좋았단다. 그러나 영아 아버지의 정치와 관계된 어떤 사건으로 영아의 집 가세는 점점 기울기 시작했고 영아 아버지는 옥살이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간 공부시켜 장가까지 보낸 시동생들도 영아네를 못 본 체하고 급기야는 먹거리 해결조차도 힘들어진 영아 엄마는 우리 집에서 쌀이며 김치를 얻어가기 시작했던 거였다. 영아 엄마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들고 다니시던 파란 통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영아네 집에서 밥을 먹지 말라시던 엄마의 말씀이며 영아 엄마가 내게 수제비를 더 먹겠느냐고 물어보지 않던 일까지 죄다 이해가 되던 찰나였다.


“니, 와 영아 엄마가 매번 하굣길에 영아한테 양산을 씌아가 덱고 온 줄 아나?”

“모르겠는데요….”

“영아가 잘 먹지도 못하고 햇빛을 보면 자주 쓰러졌다 카더라. 그래가 매번 양산을 씌아가 덱고 온 기라. 한 날은 영아 엄마가 영아를 델러 갔다가 약한 영아가 니 가방까지 들고 오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 카대.”

엄마는 말을 이었다.

“영아한테 와 정혀이 가방까지 들고 오느냐고 물었더이 니가 영아한테 집에까지 가방을 들어다주믄 집에 가가 사과 한 알을 주겠다 캤다네. 영아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매나 가슴이 미어졌겠노….”


아… 내가, 내가 그랬다는데 내게 그 기억은 없었다. 사람은 자기가 유리한 쪽의 기억만 가지고 사는가! 성악설에 무게를 실어주는 순간이었다. 1학년을 거의 다 마칠 무렵 나는 열병을 앓았으니 그 가방 사건은 내 몸이 건강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도 걷기가 힘든 몸이었다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어린아이이고 영아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몰랐다기로서니 사과 한 알을 미끼로 친구에게 그런 짓을….

영아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철이 없었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아직도 내가 내 안의 나와 타협하지 못한 어이없는 사과 한 알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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