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깜짝이야

by 김봄빛




휴대폰 전화기에서 알림 소리가 나기에 들여다봤더니 남편이 카드로 식당에서 거금을 썼다. 그가 미국에서 어디다 얼마를 쓰는지 이 손안에서 다 읽힌다. 여기는 점심시간이지만 거긴 저녁 시간이라 또 아이들과 밥을 먹었겠거니 했지만 세 사람의 식사비로는 좀 과하다 싶었다. 남편은 지금 미국 출장 중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그의 회사가 있으니 매일 저녁 아이들과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부럽다. 그러나 이번엔 고작 일주일 출장에 내가 미국으로 같이 가기엔 비행기표도 비싸고 요즘 좀 바빠서 따라갈 수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남편이 영상 통화를 하자고 했다. 남편은 늘 싱글벙글 세상 사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지만 오늘따라 얼굴이 더 활짝 피어 보였다.

“여보, 아주 좋은 일 있어요.”

“뭔데요? 아들 여자 친구라도 생겼어요?”

“어, 당신, 어떻게 알았어요?”

남편이 전화기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가 싶더니 처음 보는 웬 참한 아가씨가 “Hello” 하는 게 아닌가. 이내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어이쿠, 깜짝이야!’ 준비 없이 얼떨결에 입은 옷 그대로 목에는 손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화장기 하나 없는 내 본연(?)의 모습으로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나도 인사를 건넸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초면에 묻기가 실례라 이름만 물어보았다. 옆에서 딸 소리가 들렸다. “엄마, 오빠 여자 친구 예쁘지요?” 딸아이에게로 전화기가 넘어갔다. 딸아이 옆에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앉아 있었다. 구면인 그와 나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남편은 아들, 딸뿐 아니라 그들의 이성 친구들과도 같이 식사했던 거다. 과한 밥값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아~ 나도 갈래.”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 내 알고 있었지.”

남편의 입은 귀에 걸린 채 내려올 줄을 몰랐다.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오랫동안 이성 친구가 없었다. 일을 하느라 바빠서 여자 친구를 만들 틈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의 미래가 어떻게 그려질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랜만에 생긴 아들의 여자 친구가 반가웠다.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 딸과 그녀의 남자 친구를, 비록 전화기를 통한 만남이긴 했지만 한 자리에서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면서 한편으로 뿌듯한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낯설지만 나도 입이 귀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하나씩 이루어지나 보다. 아들, 딸이 각자의 이성 친구를 데려오고 그러다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가 생기는 자연스럽고도 경이로운 날들이 올 것이다. 손자, 손녀가 생기면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란 이름을 거부할 수 없을 테지. 꼬물거리는 아기들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푼수가 되는 날도 올 테고. 아직 그때의 기분까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때의 설렘은 그때의 새로움으로 아껴두고 싶다.

다 큰 자식들이지만 너희끼리 살아보라고 떨어뜨려 놓고 태평양을 건너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요즘 부쩍 빨리 짝을 지어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어이~, 아들, 딸, 어째 잘들 좀 해보시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산은 산이요, 물은 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