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란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의미

by 김볶밥

아이들은 가끔 두서없는 이야기를 잘한다.
잘 놀다가도 갑자기 내게 와서
누가 밀었다느니, 넘어질 뻔 했다느니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노빠꾸로 쏟아낸다.

상황을 모르는 나로서는
일단 아이에게 하나씩 질문을 던져본다.

무슨 상황인거야?
누가 누굴 어쨌다는 거야?
너는 왜 그런 말을 했고, 그 애는 무슨 말을 했어?
너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이 화가 나고 속상했던거야?

그렇게 질문을 하다보면
어느덧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아, 그래서 니 마음이 그랬었구나.
그래, 너라면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겠다.
니 얘기를 들으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네.'


공감은 경험과 일치하기에
같은 경험이 없는 이들은 서로 공감하기 어렵다.

반려견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반려견을 잃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고,
직장을 다니는 남편은
하루종일 육아에 지친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나와 경험이 다른 이에게
나의 심정을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다.
어쩌면 완전한 공감이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 살아가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만,
내가 너를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불통은 시작된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그게 그 정도로 울 일이야?
이제 그만하면 그 사건 잊을 때도 되지 않았어?

하지만 너와 나는 태생부터 모든 것이 다르기에
그 사람에게는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 것이고,
그 정도로 눈물 뚝뚝 흘리며 오열할 일이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지 못할 상처인 것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나는 지금 너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다면 말해줘' 라는 뜻이고,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완전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거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를 때.

그래서 질문이 없다는 건,
너와 나 사이에 빈 페이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