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내 편이 되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by 해결사

부동산 앱 필터를 바꾼 그날

집을 산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부동산 앱을 켰습니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가격 필터로 향했고, 저는 무심코 '높은 순'을 눌렀습니다.

아, 잠깐.

그 전까지 저는 항상 '낮은 순'을 눌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프를 볼 때도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까"를 먼저 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그래프를 보면서 "언제쯤 다시 오를까"를 찾고 있었습니다.

헛웃음이 났습니다. 저는 변한 게 없었습니다. 상황만 바뀌었을 뿐인데, 제 시선이 통째로 뒤집혀 있었습니다.


집을 사기 전, 저는 세입자였습니다

제가 바라던 건 딱 하나였습니다. 집을 알아보던 6개월 동안, 저는 매일 아침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헤드라인에 "집값 하락세"라는 단어가 보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반대로 "상승 전환 기대감"이라는 문장이 보이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절대 첫 가격에 사지 말자. 무조건 깎아야 해.'

집주인이 호가를 높이면 야속했습니다. 단 한 푼도 내리지 않겠다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저렇게 욕심을 부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집값이 비싸다는 게 전부 집주인들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철저히 '매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제 태도가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싸게 사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는 건 경제적 이성의 영역이니까요. 저는 그저 현명한 소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합리성이 아니라 '포지션'이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제 논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을 산 후, 저는 집주인이 되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날부터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뉴스를 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달라졌습니다. "집값 하락"은 이제 불안으로 읽혔고, "회복세"는 안도로 읽혔습니다. 전에는 집주인들이 왜 가격을 안 낮추는지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부동산 앱을 켜서 '높은 순'을 누른 그 순간, 저는 제 자신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아, 나도 그냥 사람이구나.'

처음엔 스스로가 약간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집값 떨어지길 바라더니, 막상 사고 나니 오르길 바라다니요. 이중적이고 간사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편의 논리를 내면화합니다. 그건 위선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본능입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입니다.


이건 부동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팀원이었을 때, 저는 팀장의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날이 많았습니다. '왜 저렇게 일을 나눠주지? 내가 더 많이 하고 있는데.' 평가 시즌이 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 기준이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팀 리더를 맡게 된 첫 주, 저는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나눠도 누군가는 더 많다고 느낀다는 것을. 공평하다는 기준이 보는 위치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 전까지 제가 '불공평하다'고 느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연애에서는 더 극명합니다.

헤어진 연인을 탓할 때, 우리는 늘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고 기억합니다. 기억이란 게 원래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집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면, 상대방의 단점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행동도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귀엽고,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거슬립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사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이제 집값이 오르길 바랍니다. 솔직하게.

하지만 동시에, 지금 집을 못 사고 있는 분들의 마음도 기억하려고 합니다. 6개월 전의 제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건 결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걸 인정하는 사람이 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편이 되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반대편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제가 이 헛웃음에서 건진 작은 교훈입니다.

"입장 차이는 나쁜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모른 척하는 것이 나쁜 사람을 만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좋은 직장 동료가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