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포기
글을 시작하기 앞서 '포기'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정의 짓고자 한다. 필자는 꾸준히 해오던 A를 그만두고 불확실한 미래의 B를 선택하는 것 혹은 그냥 그만두는 것을 '포기'라고 정의한다. 그래도 '포기'라는 말이 애매하다고 느껴진다면, B를 선택했을 때 다시 A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를 추가한다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 함께 비행훈련을 받던 동기생이 조종사가 되는 길을 스스로 떠났다. 비행훈련을 포기하고, 다른 평범한 일반 장교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학생 조종사가 비행훈련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전투기 조종사가 무조건 되는 줄 아는 주위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그에 따른 기대를 벗어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의 군 생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특기(군대에서 전문성을 갖고 도맡아 하는 업무 분야로 조종 외에 방공포병, 항공관제, 보급수송, 정보통신 등이 있다.)도 어떤 것을 배정받을 지도 알 수가 없다. 또한, 비행훈련 기회는 오직 한 번이기 때문에, 새로 부여받은 특기가 조종보다 더 적성에 맞지 않아도 다시 비행훈련을 받으러 되돌아갈 수 없다. 그야말로 불투명한 미래를 알고도 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나도 비행훈련을 포기하는 선택지를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통제되는 피교육생의 삶인데, 코로나로 더더욱 통제되는 삶으로 인한 답답함. 수많은 평가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신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 이런 생각과 감정이 들 때면, 나의 삶에 회의를 품고 '비행훈련을 포기할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포기하면 따라오는 것들을 견딜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나의 생각은 항상 고민으로만 그친다. 그리고 다시 조종사가 되겠다는 열정을 다시 잡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비행훈련을 포기하고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의 삶을 응원한다.
내가 포기를 고민해본 때가 언제 또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너무 힘든 훈련에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와 나가면 재수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훈련을 수료하고,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용기가 없어 그때 포기하지 '못'한 것을 내가 정말 다행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그 순간을 참고 견뎌 생도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만약 포기하고 재수를 한 뒤 다른 대학에 가 일반 대학생의 삶을 살았다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일반 대학생의 삶이 전혀 상상이 안 가서 비교할 수가 없다.)
사소하지만 최근에 포기를 한 경우를 찾으면 주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재테크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치킨 값만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65만 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오늘 매도하니 그 돈이 채 50만 원도 되지가 않았다. 원금은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기다렸지만, 계속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그러다가 더 떨어질 것 같아서 매도했다. 손절이라는 포기 또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초심자 운이라는 것은 나에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