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2208 - 그때의 냄새들
자전거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있다. 80년대 후반 서울로 이사 오기 전 어린 시절에는 버스가 하루 서너 번 들어오는 시골에 살았다. 그 시절 자전거는 시골에서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운송수단이었다. 집에는 뒤의 안장까지 튼튼해 보이는 어른용 자전거가 있었다. 아버지는 들의 물 보러 가거나 멀리 장에 갈 때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셨다. 운전하시면서 나를 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버지의 등 뒤에서 나는 땀냄새와 옅은 담배냄새가 기억에 난다. 집에 있던 오래된 자전거는 자주 빵꾸(펑크)가 났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손수 수리를 하셨다. 바퀴 안의 주부(튜브)를 꺼내어 공기를 넣고 물속에 튜브를 넣으면 바람이 새어 나와 작은 거품을 만든다. 그 부위를 말리고 사포로 가볍게 문지른 후 동그랗게 오려낸 고무 조각을 돼지 본드로 붙이고 튜브를 원래 대로 집어넣으면 수리는 끝난다. 나는 아버지 옆에 쪼그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는 자전거를 배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의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 것이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서울 조기 유학생이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막내아들 잘 교육시켜보겠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누이와 함께 서울의 단칸방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을 때는 아마 그때쯤이었으리라. 그때도 내 자전거를 살만한 형편은 안되었다. 그 시절에는 동내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었다. 동년배의 사촌집에 놀러 갔을 때 학생들이 탈만한 적당한 크기의 자전거를 대여해서 처음 제대로 자전거를 배웠다. 크기가 작아서 인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배웠다. 균형 잡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멈추지 않고 앞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향을 제어하는 것은 경험이 없었고 브레이크를 조여 정지하는 법도 익숙지 않았다. 곧장 앞으로 질주하다 멀리서 느릿느릿 오고 있는 계란 장수 리어카를 그대로 받아 버렸다. 나는 꽈당 넘어지고 계란 한 줌이 깨져 내용물이 바닥에 흘렀다. 아저씨는 역정을 냈지만 내가 넘어진 것이 우습고 안타까워서였는지 나에게 계란값을 물어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나의 첫 온전한(?) 자전거 주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점에 누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나는 사촌 집에서 몇 년간 얹혀살게 되었다. 학교가 멀어져서 적당한 통학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처음 내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요즘 나오는 멋진 자전거가 아니었다. 누가 구해주셨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내게 처음 온 자전거는 우체국에서 배달용으로 사용하는 큼지막한 주황색 자전거였다. 그때는 오토바이도 흔하지 않았었고 대부분의 우체부들은 자전거로 우편을 배달했다. 자전거 앞의 가방받이는 제거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어디서 쓰는 용도인지 알 수 있었다. 학교를 통학해야 해서 자전거를 사용했지만 주황색의 투박한 자전거는 창피했다. 아이들한테 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학교랑 먼 건물 상가 뒤편 구석에 세워두고 학교까지 걸어갔다.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집에 올 때는 아이들 멀리 보내고 몰래 혼자 자전거 있는 곳으로 가곤 했다.
그때는 자전거 도둑이 참 많았다. 요즘처럼 CCTV나 튼튼한 잠금장치가 별로 없었기에 큼지막한 절단기를 가지고 아파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허술하게 묶여 있는 장치를 끊고 훔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체부 자전거를 타면서 편했던 점은 잠금장치를 하지 않아도 아무도 내 자전거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체국 소유라고 생각해서도 그렇겠지만 장물로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이 자전거를 돈 주고 사려고 하겠는가? 나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2년간 그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학교로 가는 천변도로의 아침 공기와 나를 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후 고등학교는 가까운 학교로 배정받으면서 자연스레 그 자전거는 고물로 팔려갔다.
과거의 추억은 아마도 그때 함께했던 사람 혹은 물건을 통하여 선명해지는 듯하다. 그때의 화면과 냄새까지도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넓은 마당과 시원한 그늘 처마가 있는 시골집. 땀에 밴 아버지의 넓은 등, 돼지 본드 냄새를 맡으며 자전거 수리를 지켜보는 나의 모습, 주황 자전거의 짙은 페인트 냄새까지 기억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