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끌 Jan 26. 2024

6. 리더로서의 첫 보고

서른 살 대기업 초짜 팀장의 고군분투기

오늘 굉장히 중요한 보고 자리가 있었다. 


한 해 동안 협업을 하게 될 유관부서와 각자 어떤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안을 준비해 오기로 했다.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모호하게 돌려 말하면 2030 고객을 유입할 수 있는 신규 서비스 기획. 


팀원 분들과 일주일 내내 아이디에이션 미팅을 진행하고, 안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서 다른 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시장 조사도 해보고, 영감을 얻으려 전시회까지 갔다. 


다행히 뭔가 나왔다. 


결론이 저녁 6시에 나서 다음날 오후 1시까지 자료를 만들어서 보내야 했다. 

마지막 회사 셔틀을 타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자기 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 공용 폴더에 자료를 올려놓고 잠들었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팀원분들이 대체 몇 시까지 한 거냐며 혹시 밤샌 것은 아니냐며 걱정해 주셨다. 

알면 다쳐요. 


팀원분들 중 PPT 장인이 많아 내가 만든 자료를 기깔나게 꾸며주셨다. 너무 든든하다. 


오후 4시. 대회의실에 긴장감이 돈다. 잘 해내고야 말겠다. 


상대가 먼저 준비한 카드를 꺼냈다. 

아 저거 아닌데. 저걸로는 2030의 심장이 반응하지 않을 텐데. 

놀랍게도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을 텐데. 


상대의 공유가 끝나자마자 질문을 쏟아냈다. 

"OOO 플랫폼을 메인으로 선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OOO 플랫폼은 쌍방향 소통 창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일방향적 소통 창구입니다." 

"2030 세대가 이 콘텐츠를 선호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근거가 있나요? 관련 게시물 몇 개가 올라온 거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걸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나요?" 

발표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헉 다그치려는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당황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내 차례다. 내향형의 에너지를 쥐어짜 두성 발성을 또 한 번 쏟아내 본다. 


유관부서 쪽 상무님이 중간에 "저런 거 괜찮다, " "저 아이디어 괜찮다, " "이거 해보자"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다른 팀 담당자분들도 내 말을 받아 적으시는 모습을 보고 내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정말 다행이다. 


물론 2030에게 어필하기 위한 B급 감성의 아이디어 일부는 본부장님께서 기겁하실 거라며 정중한 거절을 당했다. 본부장님은 2030이 아니잖아요! 50대 본부장님이 2030에 대해 뭘 알아 흥.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현실에 순응하고 넘어간다. 나중에 또다시 슬쩍 들이밀어 봐야지.


보고는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내 이야기가 어느 정도 먹힌 것 같다. 


보고가 끝나고 우리 조직 임원분 & 팀원분들과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 팀원분이 "오늘 발성 장난 아니던데? 기선제압도 할 줄 알고?" 

"헉 저 너무 세게 나갔나요?" 했지만 속으로는 

히히

임원 분이 "OO님 오늘 너무 잘했어요. OO이가 하는 말이 다 맞아. 자료 정리도 잘했고 설명도 잘했어요. 저쪽에서 우리 팀 진짜 잘한다고 생각할 거야."라고 칭찬해 주셨다. 

이번 한 주도 고생한 나에게 3만 원짜리 와인이라는 큰 보상을 주겠다. 

이제부터 주말을 즐겨보자! 

작가의 이전글 5. 신임 리더 교육 (feat. 지각하는 MZ 신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