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채원 Jan 22. 2022

내성적인 관종이라면 주목!

우리에겐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다음은 인터넷에 떠도는 내 MBTI 유형 특징 중 나에게 해당하는 것을 골라 적어본 것이다.

조용한 척하는 관종
남한테 속마음 이야기를 잘 안 함
사람 만나는 거 좋은데 싫음
결정 잘 못함
거절 잘 못함
게으른 완벽주의자
감정 기복 심하고 자주 우울함
MBTI에 가장 진심임


여기까지 읽고 내 MBTI유형을 맞췄다면 당신은 나를 아는 사람이거나, 나와 같은 유형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INFP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INFP다. 사실 이 외에도 소름 돋을 정도로 딱 내 얘기 같은 것들이 많았지만,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은 제외했다. (예를 들어, 착한 것 같지만 사실 이기적이라거나 남 얘기를 들어주는 동시에 딴생각을 한다는 것 등등)


나는 내성적인 관종이다. 주목받기는 싫은데 관심은 받고 싶다. 혼자 있는 건 좋은데 외로운 건 싫다. 마음속에 불평, 불만, 할 말을 잔뜩 쌓아놓고 주목받을까 봐, 상처 주게 될까 봐, 분위기를 망칠까 봐 표출은 못한다. 무엇이든 참으면 병이 되는 법. 결국 나는 억지로 삼킨 불만을 스스로 소화하지 못해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토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어려워 휴대폰 메모장에 내 마음을 토하듯 써 내려갔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나니 꽤 후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폰 메모장에 쓰는 글은 이내 지겨워졌다. 왜냐하면 나는 관종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은 많이 외로웠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말하는 게 어렵다. 아마 내성적인 탓이리라. 대화하는 도중에 할 말이 떠올라도 '이 말을 해도 되나?' 혹은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그뿐이랴.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까 이렇게 말할 걸!" 혹은 "아까 그 말은 안 해도 됐는데!" 하는 후회를 거의 매일 다. 왜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그 상황에 떠오르지 않는 걸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 멍청이 빵꾸똥꾸라며 스스로를 구박하던 중, 글쓰기가 이런 내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레카!


말로 하는 대화는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A의 말이 끝나면 B의 말이 이어져야 한다. 가끔은 B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A의 말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우물쭈물하다가 할 말을 못 하거나 잠깐의 정적을 못 참고 헛소리를 늘어놓기 딱 좋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글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 대화를 하다 말문이 막히면 당황스럽지만 글은 쓰다가 막히면 잠시 쉬었다 써도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글을 전송하거나 발행하기 전에는 몇 번이고 글을 다시 읽고 고쳐쓸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 마음의 준비가 가능하다는 점, 모든 준비가 끝나면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점 모두 말 보다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내성적인 관종의 입장에서도 글은 말보다 좋은 수단이다. 10명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를 보는 20개의 눈동자를 감당해야만 한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면 내 이야기를 듣는 관객의 수를 100명, 1000명으로 늘려가며 상상해보자.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이미 100명에서 손에 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하다. 이번에는 내 글을 여러 명이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 내 글의 조회수를 볼 수 있다.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내가 찾아보지 않더라도 조회수 알림이 울린다. 처음으로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라는 알림을 봤을 때, 내성적인 나는 너무 떨려서 기절해버렸을까? 물론 아니다. 그때의 그 기쁨과 반가움과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조회수로 확인하는 관심은 눈빛으로 전해지는 관심에 비해 부담감이 덜하다. 말은 못 하겠고 담아두자니 병이 날 것 같다면 글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사실 글도 뚝딱 써지는 게 아니다. 글을 쓰려면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내 생각을 정리해서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재미있게 써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여기에서 얻는 이득이 또 있다. 글을 쓰면서 자주 내 생각을 정리해 놓으면 말할 때도 도움이 된다.  정리된 방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찾아 쓰기가 쉽듯, 생각을 잘 정리해놓으면 필요한 말을 골라서 하기가 쉽다. 이쯤 되면 글 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2022년에는 더 많은 내성적인 관종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겠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월의 주제는 <글쓰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