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채원 Jul 20. 2022

미루는 습관에 데어본 적 있나요?

전 지금 세게 데이는 중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마감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나는 미룰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미루는 습관이 있다. '좀 미뤄도 안 죽어.',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할 거야.'라는 달콤한 말로 나를 유혹한 뒤, 오늘치의 게으름을 최대로 누리는 게 나의 큰 즐거움이다. 아니, 큰 즐거움이었다.


내일의 나를 위해 남겨둔 배려

지난주는 정말 바빴다. 자잘한 일들은 차치하더라도 학기 말 성적 처리와 팀라이트 첫 오프라인 인사이트 나이트 준비, 이 두 가지만으로도 마음이 분주했다. 나는 바쁠수록 머릿속만 복잡한 버릇이 있다. 할 일 목록에 우선순위를 매긴 뒤 하나씩 착착착 해결해나가도 모자랄 판에 '뭐부터 할까?', ' 어떻게 할까?', '다 할 수 있을까?' 쓸데없이 걱정만 많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만 바쁜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끙차!


막상 시작하니 일은 생각보다 술술 잘 풀렸다. 밤을 새워야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어쩌면 마감보다 일찍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안 되는 거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미루는 습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다 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 내가 할 일을 다 해버리면 내일의 내가 얼마나 심심하고 무료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야 할까? 그래! 그럼 안 되지.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 일을 다 마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히 짐을 쌌다. 인사이트 나이트에 참석하러 서울에 가기 위해서였다. 전날부터 기침을 했던 게 조금 마음에 걸려 자가진단키트를 꺼내 검사를 했다. 작가님들께 싸인 받을 책도 챙기고, 보조배터리도 챙기고, 신분증이랑 카드도 챙기고... 짐을 다 싼 것 같아 마지막으로 자가진단키트를 확인했는데,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믿을 수 없어 한 번 더 했다.

두 줄이라니. 내가 왜? 뉴스에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게 나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출퇴근 말고는 특별히 어디 간 적도 없는데. 그나저나 저 싸놓은 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니, 오늘을 위해 미뤄둔 일은 이제 어떻게 하지?


9시가 되길 기다려 병원에 갔다.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역시나 두 줄. 한 손에는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양성판정 환자 안내문", 다른 한 손에는 약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격리에 들어갔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뒤로 몸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심한 두통과 몸살, 그리고 오한. 아픈 와중에도 머릿속엔 미뤄둔 일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아파도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제의 내가 나를 위해 남겨둔 배려, 아니 남겨둔 똥을 이를 악물고 치워야 했다.


일을 다 끝냈다고 생각할 때쯤, 까먹고 있던 또 다른 일이 생각났다. OMG. 신이시여, 저는 왜 이다지도 허술한 인간입니까. 흐르는 눈물을 닦을 시간도 없었다. 코로나나 두통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것도 사치였다. 시간 안에 일을 끝내는 게 먼저였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어떤 일도 미루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내일의 나는 안녕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앞서 나는 내일의 내가 심심할까 봐 지나친 배려를 했다. 그런 결정을 할 당시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일의 내가 안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내일의 나는 느닷없이 생긴 새로운 일을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 내일의 나는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거나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 어쩌면 내일의 나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내일의 내가 어떤 상태일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습관은 불확실한 미래에 도박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내일 내가 건강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오늘 미뤄둔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을 테고, 건강하지 않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나처럼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니까. 반대로 현재는 확실하다. 지금의 내가 건강한지 아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러니 확실히 건강하고 여유가 있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전부 처리해야 한다.


해야하는 일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그렇다. <유열의 음악 여행>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미수(김고은)가 오랜만에 만난 현우(정해인)에게 내일 수제비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을 들은 현우(정해인)는 쭈뼛거리다 어렵게 입을 뗀다.

"내일..? 나... 내일 군대 가는데..."

미수(김고은)가 현우(정해인)와 수제비를 꼭 먹고 싶었다면 내일이 아니라 지금 먹으러 가자고 해야 했다.


'돈 좀 모아', '여유가 좀 생기면', '나중에 성공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룰 때 다는 단서들이다. 물론 지금 당장 불가능한 일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음에도 뒤로 미뤄놓은 일들은 나중에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일이다.  


팀라이트에서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글을 쓴다. 이번 달 주제는 "습관"이다. 나는 7월 20일에 글을 발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7월 19일이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마감일 보다 일찍 글을 쓸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루는 습관에 크게 덴 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내일의 나는 내일의 인생을 살게 내버려 두고,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약 내일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여유가 있다면 내일의 내가 할 일을 미리 해 놓을 것이다. 미리 해 놓고 나니 이렇게 여유로울 수 없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 7월 20일에 발행하기로 했으니 글 발행 버튼은 내일의 나에게 넘기겠다.이건 절대로 미루는 게 아니다. 내일의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해준 것일 뿐.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습관> 입니다.


▶ 팀라이트가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다면

☞ 팀라이트 소개

▶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따뜻한 작가님들의 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레터링 서비스 정기 구독 신청

▶ 팀라이트와 소통하기 원한다면

☞ 팀라이트 인스타그램

▶ 팀라이트 작가님들의 다양한 글을 모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공동 매거진 구독하기

▶놀면 뭐쓰니, 인사이트 나이트 오픈 채팅방!

☞ 팀라이트 인나 놀아방









매거진의 이전글 습관을 바꾸는 것의 불편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