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엄마로 산다는 것'
육아 솔직 후기
결혼 생각이 전혀 없던 내가 6살 연상의 남자를 소개받은 게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나는 '결혼을 서두를 나이 아니냐'고 물었고, 그는 '이미 늦었으니 1,2년 더 늦어져도 괜찮다'고 답했다. 성격 급한 나는 그의 느긋함에 조급해졌고, 결국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누군가와 한 집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불편했고 나는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적응하려 노력하다 보니 내 뱃속에는 새 생명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되는 게 이런 건 줄 알았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런 게 엄마의 삶이라고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보다 먼저 애를 낳아 키우고 있는 지인들을 원망했다. 화장품 하나를 골라도 미리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 '솔직 후기'를 꼼꼼히 읽고 선택하던 나였다. 만삭 때는 출산할 일이 걱정되어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출산 후기를 찾아 읽었다. 그런데 왜 '육아 솔직 후기'는 찾아볼 생각을 못 했을까?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솔직히 엄마가 된다고 매일매일 엄청난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배가 고픈데 밥을 먹을 수 없는 것, 잠이 오는데 애가 안 자는 것, 급똥을 참아야 하는 것. 뭐 이런 일은 엄마가 아니어도 겪을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엄마는 이런 일들을 한꺼번에, 매일 겪는다. 먹고 자고 싸고를 못하니 몸은 천근만근에 짜증은 늘어간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허우적대는 내 모습은 마치 짐승 같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해야 될 때면 풀메이크업에 향수 냄새 풍기며 당당하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크서클 내려온 민낯이 부끄러워 고개가 자꾸 내려간다. 그렇게 내 자존감도 함께 낮아진다. 하루 종일 집에 있지만 집안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수대에는 씻지 못한 젖병이 늘어가고 방바닥은 아이가 늘어놓은 장난감과 책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먹지도 자지고 못하고 일하지만 집안일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며칠 전 친한 친구가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인스타그램에 신혼부부의 달달한 일상을 자주 올려 내가 부러워하던 친구였다.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할 말들이 머릿 속에 잔뜩 떠올랐다. '넌 이제 끝이야. 남편이랑 영화 보러 가서 팝콘 들고 사진 찍을 일도 당분간 없어. 둘이 취미로 타던 자전거도 탈 수 없을거야. 이제 한동안 너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한가한휴일 #여유로운하루 이런 해시태그는 없을 거야.' 그런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소중한 생명을 품고 있는 사람한테 할 소리는 아니니까. 그때 깨달았다. 왜 아무도 나한테 육아 솔직 후기를 안 알려줬는지. 나도 남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진심을 듬뿍 담아 축하해줬다. 엄마로서의 삶은 그 전에는 당연하게 누렸던 자유를 포기해야 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에.
참고로 우리 부부는 자녀 계획은 하늘의 뜻에 따르기로 했었다. 생기면 감사히 낳아 잘 키우고 안 생기더라도 너무 애쓰지 않기로. 고맙게도 하늘은 우리에게 소중한 딸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려주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째는 철저히 우리의 뜻으로 낳았다. 첫째가 두 돌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동안 너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임신, 출산, 육아의 고통은 두 번 세 번도 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선배 부모들이 육아의 힘듦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고통보다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둘째를 낳아 5개월째 키우고 있는 지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신생아를 키우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잘 키워야지. 이미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잘 알고 있다. 힘들다 지친다 하는 사이에 아이는 훌쩍 커 있고, 영원할 것 같았던 소중한 시간들은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힘들면 숨 한 번 깊게 쉬고 지치면 바람 한 번 쐬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엄마로 산다는 건 고통과 인내, 기쁨과 행복을 동시에 선물 받는 일인 것 같다. 엄마가 된 이후 내 인생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