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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Feb 03. 2023

밥 먹으면서 TV 보지 말라면서요.

그럴 거면 TV를 치워 주세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거실에 큰 상을 차려놓고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여럿이 모인 식사자리가 늘 그렇듯 분위기는 시끌벅적했다. 며칠 전 다녀온 여행 이야기, 치솟는 집 값 이야기, 조만간 결혼을 한다는 친구 이야기 등을 오가며 즐거웠다가 속상했다가 안타까웠다가 하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중간중간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었다. 

TV 그만 보고 밥 먹으라고!

그 집에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어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여행 이야기, 집 값 이야기, 결혼 이야기를 하기에는 많이 어렸다. 아이의 눈은 밥상 앞에 놓인 TV에 고정되어 있었고, 잔뜩 집중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손은 숟가락을 든 채로 허공에 멈춰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엄마는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도 "TV 보지 마라.",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도 "밥 좀 먹어라."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잔소리를 했다. 아이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내 마음이 불편했다. 


공교롭게도 아이는 TV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내가 저 아이의 자리에 앉았다면 TV를 안 보고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가능하긴 하겠지만, 만약 TV에 아주 재미있는 게 나오는 중이라면 힘들 것 같았다. 다시 아이의 표정을 바라봤다. 엄마의 잔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TV에서 아주 재미있는 게 나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직 엄마가 되기 전이었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나중에 엄마가 된다면 밥 먹을 때는 꼭 TV를 끄겠다고. 만약 TV를 켜놓았다면 밥 먹으면서 TV 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행히 그때의 그 결심은 잘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자주 그날의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할 일이 있고, 마감이 코 앞이며, 머릿속으로는 당장 해야 하는 걸 알겠는데, 자꾸만 딴짓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다. 그럴 때면 TV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밥상 앞에 앉아있는 그 아이가 된 기분이다. TV를 끄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으로 리모컨을 잡는 게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이것까지만, 하는 마음에 아쉬워서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눈앞에 있는 TV를 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못 끄는 평범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꺼져 있는 TV도 굳이 켜서 뭐가 나오나 확인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나약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환경설정이 중요하다. 아마도 나는 TV를 내다 버려야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방학 계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건 학생 때나 선생님이 되어서나 마찬가지다. 이번 방학 때는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방학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동안 뭘 했나 되돌아보면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나마 매일 글쓰기 프로젝트 '글루틴'에 참여하면서 글쓰기 하나는 제대로 했다. 혼자서는 절대로 못했을 일인데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1기, 2기 모두 100% 인증을 기록했다. 역시 환경설정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내가 계획한 것을 모두 해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스마트폰에서는 쉴 새 없이 카톡 알림이 뜨고, 카톡을 하다가 자연스레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겠다고 물을 마시러 가면 바로 옆 침실에서 침대가 나를 유혹한다. 이런 식으로라면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내 다짐의 반도 이루지 못할 게 분명하다.       


 요즘 들어 유독 성장에 목마르다. 머릿속에 계획은 다 있는데, 실천만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실천이 어렵다. 이제라도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무엇도 나를 유혹하지 않을, 오직 나만을 위한 성장의 공간을 만들어 봐야겠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탐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중입니다. 제가 받은 문장은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 작가님께 드릴 문장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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