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글향 Feb 08. 2023

걱정 사용법

흘러넘치는 계란찜에 담긴 사색


저녁을 먹고 집 주변을 산책했다. 남편과 걸으며 나누던 대화 중 "왜, 예전에 계란찜 하다가 홀라당 태워 먹은 뚝배기 있잖아."라는 말에 갑자기 그날의 한 장면으로 들어갔다. 뚝배기는 어지간해서 태우기 힘든데, 그 어려운 걸 해낸 날이었다.


작은 뚝배기에 계란 3~4개쯤을 탁탁 깨어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후, 정수기 물과 비율을 맞춰 중불 위에 올렸다. 약간의 새우젓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잔파를 송송 올린 다음, 곧바로 다른 요리에 돌입했다. 적당한 시간에 불 조절을 해야 했는데, 지 알아 맛있게 만들어주겠거니 하며 방치했던 게 화근.


열받은 뚝배기는 달그락달그락 요란하게 들끓더니, 손쓸 겨를도 없이 거품을 토해내며 촤라락 흘러넘쳐 버렸다. 낭패감이 들어야 할 타이밍이었건만. 어째서인지 그날따라 흘러넘치는 모습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오히려 속이 후련한 느낌이랄까.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꽉 들어찬 걱정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예전의 나는 걱정들과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고, 그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불러오는 식으로. 그렇게 하나둘 함께 살다 보니 대가족을 이룬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무슨 걱정을 그리도 했던 걸까. 그때 당시엔 업무에 대한 피로감, 꿈에 대한 막연함, 가정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발길 닿는 곳마다 불만투성이였고, 어디 하나 손끝만 닿아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행여 터지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며, 걱정 죄다 불러 모아 조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쪼아대고 있었다. "평생 일만 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이렇게 뜬구름만 잡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면 어쩌지?",  "이대로 영영 자유가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끝도 없이 어쩌지라는 이름의 걱정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하루빨리 터트렸어야 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하나하나 펑! 펑! 펑!


지금은 모두 다 터트린 셈이다. 직장에서는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했고, 꿈은 뜬구름이 아닌 실체를 잡기 위해 나아가고 있으며, 가정은 시어머니와 분가하여 자유를 회복했으니 말이다. 불과 5년도 안 된 사이 모든 걱정거리와 평화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나름 행복하게.


계란찜이 흘러넘치던 그날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속이 후련했던 징조를 심상치 않은 신호로 여기며, 번뜩 떠올렸던 생각 '질문을 바꿔 보자'는 것이었다. 어쩌지를 "어쩔 수 없지?"가 아닌, "어쩔 수 있지?"로! 

어쭙잖은 말장난 같겠지만, 모든 걱정거리를 잘 다룰 수 있는 기특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걱정 앞에서 "어쩌지?"를 떠올린다. 그 어쩌지를 또 파고들면 둘로 나뉜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들과

어쩌면 어쩔 수 있는 것들로

놀랍게도 내가 하는 걱정 대부분은 어쩔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걱정이라는 놈을 잘 활용해서 어쩔 수 있게 만들면 된다.


나에게 찾아온 걱정이라는 녀석은

내가 좀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신호' 같은 거였다.

문제에서 해결로 가는 과정에서 깜빡깜빡 위험을 감지해 주었던 신호!

그 신호 덕분에 지금은 적당히,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는 밋밋한 일상이 아닌

곳곳에 박혀있는 행복을 발견하며 철철 흘러넘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흘러넘치는 계란찜처럼,

"때로는 과하거나 부족한 것이 오히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결과를 부른다고."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받은 문장은 <질문을 바꿔 보아요>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 작가님께 드릴 문장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입니다.


 팀라이트 글쓰기 클래스 & 공저 출판 정보

 팀라이트 소개 및 클래스 정보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따뜻한 작가님들의 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팀라이트 레터링 서비스 정기 구독 신청

 팀라이트와 소통하기 원한다면

 팀라이트 인스타그램

 팀라이트 작가님들의 다양한 글을 모아보고 싶다면

 팀라이트 공동 매거진 구독하기

 놀면 뭐쓰니, 인사이트 나이트 오픈 채팅방!

 팀라이트 인나 놀아방


매거진의 이전글 밥 먹으면서 TV 보지 말라면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